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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언덕
형수님께


서화반 작업장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우리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완만한 능선을 가진 보리밭 언덕이 있습니다. 이 언덕은 출소자들이 저마다의 얼룩진 청춘을 묻어둔 교도소를 한번쯤 굽어보는 '만기(滿期) 동산'이기도 하며, 접견을 마친 어느 가족이 차마 발길 떼지 못해 아픈 입술 씹으며 잠시 망부석이 되는 언덕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용이, 주용이 또래의 어린이가 란도셀을 메고 이 '보리밭 사잇길'로 뛰놀며 학교 가는 모습이 가장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자동차와 소음 대신에 보리밭을 질러서 등하교한다는 것은, 도회지를 사는 어린이들에게는 또 한 사람의 어머니를 갖는 것과 맞먹는 행운입니다.
교회와 몇 개의 지붕을 등에 얹고 있는 이 언덕에 요즈음은 가뭄 때문에 자라지 못한 채 지레 익어버린 보리가 애타게 단비를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음 편지에는 우용이와 주용이가 함께 찍은 사진 두어 장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도 가족사진을 가질 수 있습니다.

 

 

198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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