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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靜香) 선생님
부모님께


2월 19일자, 3월 2일자로 부치신 하서와 {석봉천자}(石峰千字), 교무과로 보내신 {비문척촌도}(碑文尺寸圖), 그리고 {선현인영첩}(先賢印影帖) 모두 잘 받았습니다.
갈문(喝文)은 며칠 전에 끝마쳐서 교무과에 우송을 부탁드렸습니다. 곧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한글은 몇 군데 고쳐 썼습니다. 해서(楷書)는 역시 정서(正書)라 할 만큼, 자획의 균제(均齊)가 쉽지 않음을 절감하였습니다.
벌써 3주째 매주 금요일에 서예 선생님이 오셔서 지도해주십니다. 지도해 주시는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 선생님은 김완당(金阮堂) → 김소당(金小堂) → 현백당(玄白堂) → 우하(又荷) 민형식(閔衡植)을 잇는 서도의 정통에 계신 분으로 위창(葦滄)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신 분입니다.
제1회 선전(鮮展)과 흥아전(興亞展) 이후 줄곧 초야에 계시다가 작년 11월에, 아버님께서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지신 분입니다. 철저한 중봉(中鋒)과 현완현비(懸腕懸臂), 신운완운(身運腕運)의 엄정한 필법에서 새삼 깨닫는 바가 여간 크지 않습니다. 칠순의 고령에도 정정한 기력 하며, 꾸밈 없고 겸허한 인품이 글씨보다 돋보입니다. 앞으로 얼마 동안 지도해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서도의 진수(眞髓)에 접한 깨우침이 긴요한 것이고 보면 기일의 장단(長短)은 다음의 일이라 생각됩니다.
날씨 풀리면 어머님께서도 어디 힘들지 않는 나들이를 가끔 하시는 편이 좋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이만 각필합니다.

 

 

198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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