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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힌 방학
형수님께


보내주신 서한과 돈 잘 받았습니다.
형수님의 손 기다리는 일들도 많고, 헝클어진 일 못본 체 못하시는 형수님의 단정함으로 해서 더욱 부대끼고 심로(心勞)해 하시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옛날부터 맏며느리 몸이 열이라도 모자란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에도 맏며느리나 시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차지했던 그 당당한 지위와 역할에 비견할 만한 여성의 사회적 직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형수님께서는 맡겨진 가내외 대소사 지혜롭고 명쾌하게 다듬어내시리라 믿습니다.
삼저호재(三低好材)라는 푸짐한 소문과는 아무런 인연 없이 내수 중소기업이라는 우리 경제의 가장 어려운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형님의 고충, 다는 아니더라도 대충은 짐작이 됩니다. 힘든 자리 훌쩍 떠나지 않는 고집이 곧 형님의 사회적 양심과 용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임을 압니다.
방학이라도 책가방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나 아닌지 우용이, 주용이 여름방학도 궁금합니다. 제게는 도회지의 아이들이 어떤 방학을 보내는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지난번 귀휴 때 학교운동장 구석에서 우용, 주용이와 공 차던 기억이 지금도 흐뭇합니다. 시골 고향에 할아버님 댁이 있었더라면 우용, 주용이의 방학이 훨씬 더 풍성하고 생기 있는 것이 될 텐데…….
고향에서 뿌리뽑힌 도회지의 삶이 어린이의 방학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그 삭막한 모습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곳의 저희들은 말복마저 보내놓고 이제 느긋하게 가을 생각으로 잔서(殘暑)를 벗하고 있습니다.

 

1987.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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