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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신자
형수님께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기독교, 천주교 신자가 늘고 초파일이 가까워오면 불교신도가 늡니다. 그외에도 떡이나 위문품이 곁들여진 종교집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신자 수가 부쩍 늘어납니다.
보통 때는 신자가 아니다가 이런 특별한 때에만 집회에 나오는 신자를 '떡신자' 또는 '기천불' (基天佛) 종합신자라 부릅니다. 저도 떡신자의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번에는 떡 가지고 온다는 소문 듣고 기독교 집회에 참석했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신자도 아니면서 떡을 위해 참석한다는 것이 사실 상당히 '쪽팔리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가끔 끼이는 까닭은 물론 떡도 떡이지만 제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떡 한 봉지 받자고 청하지도 않는 자리에 끼어든다는 것이 어지간히 징역때 묻은 소행이 아닐 수 없지만, 그곳에는 떡신자끼리만 나눌 수 있는 걸직한 공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징역때 묻었다는 것은 징역을 오래 살거나 자주 살아서 비위 좋고 염치없다는 뜻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량한 체면이나 구차스런 변명 따위 코에 걸지 않는다는 솔직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떡신자끼리의 공감이란 것도 무슨 가치공감일 리도 없습니다. 그저 동류라는 편안함입니다.
그런 때묻고 하찮은 공감에 불과하지만 삭막한 징역살이에서 이것은 여간 마음 훈훈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안도감입니다. 밥처럼 믿음직하고 떡처럼 반가운 것입니다. 헌 옷 걸치고 양지 쪽에 앉아 있는 편안함입니다.
어쨌든 떡신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마디로 제사보다 젯밥에 생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교라든가 미사, 설법 등에는 처음부터 마음이 없고 참신자(?)들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교회당 무대 한쪽 가생이에 쟁여놓은 보루박스의 높이에 줄창 신경을 쓰거나 외부에서 온 여신도들을 힐끔거리기 일쑤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떡신자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알아차린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모르는 사이이면서도 멋쩍은 미소까지 교환합니다. 서로가 들킨 셈이면서도 마음 흐뭇해합니다.
집회 끝나고 한 줄로 서서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떡봉지 하나씩 받아들면, 사실 이때가 가장 쪽팔리는 순간이긴 하지만, "이 보리밥촌에서 떡 한 봉지가 어디냐." 마치 처자식 벌어다 먹이기나 하듯, 남의 눈치 아랑곳없이 '연잎 뜬 듯' 얼굴 들고 걸어나옵니다.
"목사는 뭐 지돈 디려서 사오남!"
"아무렴 살아야 밍(命)인께, 먹어야 뵉(福)인께."

 

벽에 12월 달력 한 장, 그도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반밖에 남지 않은 날들에 담긴 무게는 실로 육중하기 그지없습니다. 한 시대를 획(劃)하는 역사적인 날들입니다. 옥중에 앉아 이를 맞는 저희들의 심정도 결코 범상한 것일 수 없습니다만 역사의 대하에 낚시 드리운 태공의 유장(悠長)함을 아울러 간직하려 합니다.
오늘 임시 공휴일, 형수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의 소망과 긴장이 눈에 선하여 편지 드립니다.

 

198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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