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찾아왔습니다. 가까이 있는 아티쿠스 극장이나 나프플리온의 숲속에 있는 에피다브로스 극장은 말끔히 복원되어 지금도 연극과 음악이 공연되고 있지만 디오니소스 극장은 반쯤 무너져내린 채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디오니소스 극장은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는 그리스 비극의 대부분이 상연된 곳입니다.
오늘 제가 띄우는 엽서의 내용은 ‘극장과 TV'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관광객들이 없는 이른 아침에 다시 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어제는 사람들 때문에 못했지만 오늘은 거리낌없이 금줄을 넘어 무대 위에 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비극의 주인공처럼 무대 위를 걸으며 객석을 휘 둘러보았습니다. 텅 빈 객석이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무대 위에는 수많은 배우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절규하였고, 그 절규를 통해 아테네 사람들은 무엇을 교감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는가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시시포스(Sisyphos)의 비극과 카뮈의 실존주의를 밤새워 토론하며 그것을 그리스 노예제를 위한 변명이라고 질타했던 20대의 설익은 담론들이 아득한 추억의 저편에서 다가옵니다. 피투성이가 된 손발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올리면 다시 평지로 굴러내리고 마는 절망의 무한궤도. 이것이 시시포스의 비극적 상황입니다. 이러한 절망의 무한궤도 속에서 과연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수긍할 수 있는가. 그러한 자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한 폭력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초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초인적인 초상을 들어보이는 것은 환상을 강요하는 것이며 환상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언했던 당시의 열정이 떠오릅니다.
그리스 비극은 부단히 재창작되고 재해석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카뮈의 작품들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스 비극은 오히려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난 이후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전성기였던 시기에 함께 개화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은 플롯이라는 극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담보하고 있는 사회성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의 비극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뛰어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사실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그렇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에 결박된 채 매일매일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가지 절대 권력에 대한 굴종을 거부하는 데모스(人民)의 저항 의지를 장렬하게 보여줍니다. 제우스의 심복인 크라토스(힘)를 데모스가 쟁취하는 것, 이것이 데모크라시 입니다. 절대 권력에 대한 인민의 도전, 귀족에 대한 평민의 저항, 이 도전과 저항이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던지는 메시지이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라는 선언입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의미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생각한다(fore thought)’는 뜻입니다.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건설해야 하며 또 그것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사(豫思), 즉 ‘미래에 대한 선취’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보다 열등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더 이상 남자들의 횡포에 질식할 수 없다는 확고한 선언입니다. 성 차별과 억압에 대한 항거입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형식보다는 민주주의의 내용에 관한 보다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국법을 어긴 오라버니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크레온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안티고네는 오라버니의 시신을 매장합니다. 오라버니의 시체가 썩어가고 들짐승들에게 뜯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티고네는 동굴에 갇히고 결국 자살에 이릅니다.
국법을 민주주의로, 인륜을 혈연주의와 귀족주의로 해석하여 소포클레스를 비난하는 견해도 없지 않지만, 안티고네의 비극은 사람이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 선언입니다. 법이 인간적 진실을 지키지 못하는 한 크레온 왕은 그의 운명이 보여주듯이 안티고네보다 더 참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희극이 인간을 무대 위에 세워 그 우매함을 반성하는 것이라면, 그리스 비극은 신과 영웅과 왕들에 대한 저항 의지를 결의하는 ‘시민철학의 대장간’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에 구조화되어 있는 빈부와 성과 계급간의 갈등이 키워온 갖가지 소이(小異)를 대동화(大同化)하는 용광로가 바로 이곳 디오니소스 극장이었습니다.
반원형으로 된 무대 앞줄에는 등받이를 댄 고급 좌석이 있습니다. 디오니소스 왕과 귀족들의 좌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줄에 배치되어 있고 등받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조금도 다른 점이 없습니다. 특히 반원형으로 된 극장 구조는 어느 좌석에서나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좌석의 평등성입니다. 이곳에서 아테네 사람들이 교감하고 달구어낸 사상이 바로 인권과 평등과 민주적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나는 무대 위를 걸어보았습니다. 지름 25m. 무대로서는 매우 큰 것이지만 삶의 현장으로선 매우 작은 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무대 공동체’ ‘극장 공동체’입니다. 생활의 실체가 아닌 가상공간(cyber space)에 불과합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극장의 가상 공간으로부터 저마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그 달구어진 열기가 냉각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무대와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연극은 그것이 아무리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해도 삶의 현장에서 부단히 직면하는 현실과는 역시 아득한 거리가 있습니다. 연극의 한계이며 무대의 환(幻)입니다.
나는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커다란 TV를 놓아보았습니다. TV는 배우들의 육성과 코러스가 울려퍼지는 무대보다 훨씬 왜소하고 감동도 미미합니다. 그러나 TV는 오늘날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의 실상입니다. TV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원리가 와해되면서 추락해갑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30년전쟁은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 표면으로 드러난 전쟁이며, 이러한 대립이 다시 외세와 결탁함으로써 결국 그리스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이 조락의 세월 속에서 독배를 들게 됩니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독배를 들었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그러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합법적 교살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면서 나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었던 감방을 찾았습니다. 석벽을 파서 만든 감방에는 싸늘한 겨울이 고여 있었습니다. 창살을 잡고 감방을 한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감방한가운데에는 조용히 독배를 들고 앉아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메데이아의 절규와 성문 밖에서 들려오는 안티고네의 목소리,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부릅뜬 시선도 함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