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4-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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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북데일리 |
신영복 "갇혀 있는 생각의 틀 망치로 깨야"
고양아람누리에서 모처럼 강연
2014년 07월 09일
[북데일리] “나라는 존재는 내가 겪고 만난 사람들의 총화가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불변의 존재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요. 나는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나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내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려질 겁니다.”
우리시대의 ‘큰 어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지난 5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신영복 교수 초청 강연이 있었다. 이날 300백 규모의 극장은 강연 시작 전에 이미 관객들로 꽉 채워졌다. 그간 건강상의 이유로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는 신 교수의 모습은 활달해 보였다.
먼저 그는 “오늘은 교실이 아니어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편안함이 묻어나는 첫 인사말로 인해 관객들 또한 열린 마음으로 긴장을 풀고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그의 강연은 한 마디도 흘려버릴 수 없는 주옥같은 내용이었다.
그는 20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과 그 시간의 이야기를 그만의 독특한 그림과 서체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한 점씩 보여주며 그에 얽힌 이야기와 진정한 의미의 공부에 대해 들려줬다.
"공부를 한자로 ‘工夫’라고 써요. 글자를 풀어보면 하늘 ‘천’과 따 ‘지’,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게 공부예요. 즉 이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게 공부죠. 그런데 하늘과 땅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해서 천天, 지地, 인人, 이걸 다 아우르는 게 공부고, 사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공부의 가장 핵심이고 정점입니다.”
이어 그는 교도소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의大義‘라는 이름과 달리 절도전과가 있는 30대의 제소자, 가진 것도 면회 올 사람도 없이 각색된 인생을 살고 싶어하던 70대의 노인,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사형을 언도받은 젊은 제소자 이야기 등 가슴 저리고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삶이라는 게 참 잔혹하면서도 엄청난 걸 가지고 있다”며, 자신이 교도에서 ’사는 게 뭔가, 죽는 게 뭔가’는 인사체험을 했던 기억도 들려줬다
“추운 겨울 독방에 제가 앉아 있었던 모습입니다. 교도소에서는 자기가 사람을 죽였던 바로 그 날에 자살을 많이 합니다. 바로 우리 방에서 혹은 옆방에서 자살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심각하게 자문자답을 했죠. ‘무기징역이면서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그에 따르면, 햇볕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다. 찬 겨울, 독방에 신문지 크기만한 햇볕이 벽을 타고 비뚜름히 들어왔다가 나간다. 하루 두 시간 동안 그 햇볕을 무릎에 얹고 책을 봤을 때의 그 행복감. 그는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고 전한다.
“놀라운 건 참혹한 비극도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신비롭게도 작은 기쁨이 엄청난 비극을 견디게도 합니다. 해서 자살하고 싶은 큰 비극에 대해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작고 자잘한 우연과 기쁨들로 늘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기가 그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없을 따름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지금 여기 앉아있긴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내가 자살한다면 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아픔과 기쁨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으로, 관계야 말로 아픔과 기쁨의 근원이라는 것. 그는 바로 ‘햇볕과 관계’ 때문에 죽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는 공부라는 것은 인간과 세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며, 그를 위해 우리가 포획되고 갇혀 있는 문맥이나 인식, 생각을 ‘망치’로 깨뜨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공부하는 ‘문사철文史哲’도 엄청나게 완고한 문맥이라며,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중세의 기사를 온당하게 표현하지 않고 희극화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150명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적어도 백 이 삼십 명은 사마천 자기 자신을 닮은 사람들이다. 사기를 읽으면 중국고대사를 읽는 게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다. 역사가들도 자기가 선택해서 역사를 서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런 이유로, 문사철이란 불충분한 세계 인식의 틀이고 작은 그릇이며, 이 엄청난 세계를 인간의 언어와 개념, 논리로 설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해서 독서는 ‘서삼독書三讀’, 즉 세 번 해야 한다고 권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돈키호테를 읽으면 세르반테스가 ‘왜 그렇게 썼는가, 자신은 왜 읽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 특히 시서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앎에 도달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리 제비만 보고도 천하의 봄을 상상하거든요. 시서화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언어를 뛰어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해서 문사철을 뛰어넘는 것이 시서화입니다.“
그에 따르면, 추상과 상상의 유연한 인식 능력을 키우는 게 공부의 핵심이다. 머리에 갇혀있는 문맥을 깨뜨리고, 공감과 애정으로 삶의 현장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변화와 창조다. 열려있는 인식을 키우는 게 대단히 중요한데 우리는 갇혀있다. 공부는 자기 변화다. 중심부는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이제 변방으로 가야 한다. 꽃은 변방에서 피는 것이다.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세월호가 왜 넘어졌어요? 아래쪽에 평형수가 없어서 넘어졌어요. 하부에 무게중심이 있어야 돼요. 상부를 증축하고 강화하면 할수록 훨씬 더 복원력이 없어지고 전복됩니다. 세월호 이후 강한 국가 기강을 만들고 국정과 국격을 개혁하겠다고 하는데, 전부 상층을 바꾸겠다는 얘깁니다. 그거 안 됩니다. 평형수로 하부를 가득 채워서 중심을 채워야 합니다. 변방과 중심을 만들어 나가는 게 우리들 공부의 지향점이 아닐까 합니다. 단 변방은 중심부에 대한 가망없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공부는 엄마의 이유가 아닌 ‘자기의 이유’로 해야 한다며, 프레데리크 반 에덴이라는 네델란드의 작가가 쓴 동화 시에 소개된 ‘버섯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버섯군락을 발견하고는 “얘야, 이 버섯이 독버섯이란다”라며, 스틱으로 버섯을 지목하면서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독버섯이라고 지목받은 버섯이 쓰러진다. 옆에 있던 버섯 친구가 “너는 결코 독버섯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래도 위로가 안 된다. 이 동화시의 마지막 구절. “너를 독버섯이라고 하는 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야.”
“이 말은 버섯이니까 버섯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가 말한 건 ‘식탁의 논리다. 버섯이 왜 식탁의 논리로 생각하느냐’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도 자기의 이유로 해야 합니다. 물론 멀고 험한 길을 가야합니다. (중략) 이때 ‘자기의 이유’를 줄이면 바로 ‘자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특별한 논리 없이 말씀드렸지만,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골목에서 꽃처럼 피워내길 바란다”며 아래 글을 보여줬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그가 차분하게 들려주는 강연 중간 중간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안타까움에 탄식을 쏟기도 했다.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후 성공회대 교수 세 명으로 구성된 ‘더 숲 트리오’의 공연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강연과 공연에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행사가 마무리 된 후에도 긴 시간을 기다려 신 교수의 싸인을 받기도 했다. 버거운 현실로 인해 무뎌져 있던 감성을 자극받은 신선한 행사였다. 책이나 강연을 통한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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