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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2
미디어 여성신문

시대의 큰 별 지다… 신영복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사람 키워내야… 석과불식(碩果不食)은 희망의 언어”


시대의 큰 별 지다… 신영복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인간적 사회로 만드는 일

관계와 연대 중요성 강조

“내가 경계인? 좌우 공존해야”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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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신영복 교수가 여성신문에 보낸 서화 ‘여성이 희망이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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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이 여성신문 창간 23주년을 기념해 보낸 서화 ‘아름다운 세상을 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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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은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다”며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신문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감옥 밖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향년 75세.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중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이날 오후 10시경 서울 목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철저하게 주류에서 벗어나 변방의 삶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큰 별이었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재직하던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20일 후인 1988년 8·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고인은 여성신문을 통해 여성들에게 격려와 응원, 사랑을 전했다. 지난 2012년 1월 ‘제10회 미래를 이끌 여성지도자상’ 수상자에게 ‘여성이 희망이다’라는 축하 서화를 건넸고, 여성신문 창간 23주년인 2011년 10월 서화 ‘아름다운 세상을 품다’를 보내 여성계에 메시지를 전했다. 고인이 남긴 선이 굵고 담백한 서예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고인은 궁체에 대비되는 민체, 또는 연대체, 어깨동무체라 불리는 서체를 창안해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담아내는 독특한 경지를 이뤘다”고 상찬하기도 했다.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유산으로 남았다. 생전의 그는 감옥의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 받지 못했지만 많은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눈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012년 6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서도 “내일의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죽지 않았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손해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이 내 생명을 살렸다”고 했다.


고인을 ‘좌파 지식인’ ‘경계인’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이 같은 규정을 거북살스러워 하며 좌우의 공존을 강조했다. ‘좌’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뭔가 현 단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가치 지향을 하자는 것, ‘우’라는 것은 현재의 모든 생명을 따뜻하게 지키자는 것으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일침이다.


고인은 생전에 늘 관계와 연대를 강조해왔다. 한 시민운동가는 2000년대 초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에 초청된 그가 “자기 운동영역 중심의 사고는 편협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연대는 물처럼 자기보다 약한 쪽과 해야 한다. 강한 쪽과의 연대는 연대가 아니라 추종”이라고 일침을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또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는 우리 시대의 삶이 서로 만나서 선(線)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點)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얼굴 없는 인간관계, 만남이 없는 인간관계란 사실 관계없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고인은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다”며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라고 했다.


그는 특히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말 그대로 풀면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담론』 중에서)


고인은 또 “주류에서 떨어진 변방은 저항과 창조의 공간”이라며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깰 수 있게 해주는 변방 의식을 새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脫走)에 비유했다. “보수권력은 보수 구조를 유지하려고만 하기에 변화와 개혁이 어렵습니다. 중심부 속에 들어가면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아요. 이제 근대 패러다임의 질곡이 서서히 와해될 것이고 이 빈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꿔나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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