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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4-01-08
미디어 문화일보

감옥에서 피어난 `사람의 향기`


문화일보 2004.1.8 김종락 기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지음·돌베개)이란 책이 있다.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90년대의 베스트 셀러다. 위의 구절은 그 책에서 뽑은 가장 유명한 글 가운데 일부다. 수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기자도 그 옥중 편지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 그후 신영복 교수가 썼거나 번역한 책이 있으면 내용도 보지 않고 무조건 샀다. 그래도 하나같이 참 잘한 책 선택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이에게 ‘신영복의 엽서’를 설명하기는 쉽다. 그 책에 소개된 옥중 서신의 육필원본을 영인한 것이라고 하면 ‘설명 끝’이다. 문제는 이런 설명으로는 충격처럼 다가온 책의 감동을 거의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육필 엽서를 두고 “우리들의 정수리를 찌르는 뼈 아픈 일침이면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기 성찰의 맑은거울”이라고 했다지만 이는 정말 과장이 아니다. 내용도 그러 려니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깨알같은 글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기듯 한자 한자 쓸 수 있었을까. 아, 옛사람들이 신언서판(身言
書判)이라 하여 글씨를 인격의 일부로 대접한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 같은 책이라도 인쇄한 것과 손으로 쓴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북리뷰팀이 올해부터 시작한 ‘출판사 사람들과 더불어’읽는 책의 첫 책으로 ‘신영복의 엽서’를 선택하는데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책을 만든 돌베개 출판사의 한철희 사장, 김혜형 편집장, 김수영 문화예술팀장, 이은정 본문디자이너, 민진기 장정디자이너 등도 생각이 비슷했다.

―육필 영인본의 감동과 울림이 인쇄한 책과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런 책이 나왔는가.

“90년대 초반 신영복 선생의 여러 친구들이 우연히 선생의 엽서원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화장지며 엽서에 한자한자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가 마치 선생이 인고해온 수많은 날인듯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고뇌와 양심을 나누어 받는 심정으로 한두장씩 엽서를 얻었던 친구들이 이를 모아 ‘엽서’라는 제목의 영인본을 만들어 나눠가졌다. 1993년이었다. 하지만 당시 영인본은 자비로 이루어진 한정판이었고 곧 애서가들의 수집목록 1호가 될 정도로 희귀본이 되었다. 독자의 재출간 요청이 쇄도했고, 이 책은 ‘엽서’출간 10년 만에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옛 ‘엽서’와 ‘신영복의 엽서’는 무엇이 다른가.

“지난책과 달리 이번책은 선생이 직접 엽서를 선별하고 배치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새로 넣거나 뺀 것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차이나는 것은 고화질 컬러 촬영과 정밀 인쇄로 육필 원본이 가진 그 향취를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영인본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세월의 깊이와 감동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정말 그랬다.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시절부터 1988년 전주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20년20일. 남한산성 시절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는 화장실용 누런 갱지에 연필과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와 그림은, 전주교도소의 참새집에서 참새 새끼를 내려놓고 어머니를 그리며 쓴 편지는…, “경황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정수리를 찌르는 뼈아픈 일침”이었다. 그래서 책이기도 하고, 화집이기도 한 ‘신영복의 엽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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