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1-12-14
-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7) 서울특별시 시장실
- 신영복 | 성공회대 석좌교수
ㆍ‘서’는 권력의 산, ‘울’은 민초의 물처럼 더불어 가라는 뜻
1994년은 조선조 태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지 600년 되는 해였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는 서예전이 기획되었고 나는 주최 측으로부터 출품 요청을 받았다.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서예가가 아니고, 저명인사도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그랬음에도 나는 출품과 관계없이 나 혼자서 서울을 주제로 한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당시 서예전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동국 차장의 청탁이 간곡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수지리를 갖추고 있고 그 위에 600년 역사가 켜켜이 누적된 땅이다. 서울의 60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더욱 감개가 깊다. 다시 한번 땅과 역사를 돌이켜보게 된다. 북한산에 오르면 서울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너무 많은 건물들이 들어차서 산수의 아름다움보다는 땅이 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북악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낙산과 인왕산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거느리고 있는 지세는 단연 명당의 전범(典範)이다. 그 한가운데를 청계천이 명당수(明堂水)로 흐르고, 명당수 건너 안산(案山)으로 남산을 놓고, 그 너머 객수인 한강이 명당수와는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멀리 남천에는 객산인 관악산이 반공(半空)을 가르고 있다.
신영복 교수가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서예전에 출품한 작품. ‘서울’이라는 글자를 산과 강으로 형상화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삼재(三才)라 하지만 그 중에서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리다. 땅이 곧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구속력이 컸던 옛날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서울을 주제로 한다면 단연 산천을 중심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서울의 산천이라면 역시 북악과 한강이었다. 나로서는 출품 약속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었다. 나는 아예 ‘서울’이라는 글자를 북악과 한강으로 형상화하기로 하고 시필(試筆)했다. 한자(漢字)의 경우 ‘山’은 전서체로 ‘’으로 쓴다. 문자와 그 문자가 지시하는 대상이 같다. 한글은 한자와 달라서 상형문자가 아니라 기호이다. 그래서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서’자를 산처럼, 그리고 ‘울’자를 강물처럼 나름대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시 한 구절을 지어 방서(傍書)했다.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가 그것이다. 북악산은 오천년을 무심하지만 한강수는 칠백리 유정하구나. 작품과 함께 주최 측에 제출한 작품 해설에는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한다. 북악은 오천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칠백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썼다. 산천에 더하여 천시와 인화의 역사를 담은 셈이다.
생각하면 600년 서울의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북악산 성곽 길을 따라 걸어가면 경복궁을 비롯한 왕궁들이 아래로 굽어보인다. 북악의 품에 안긴 왕궁은 화려한 문물의 전당이면서 동시에 권좌를 에워싼 권력투쟁의 장이다. 정변과 사화가 끊이지 않고, 숱한 사람들이 형틀에 묶여 국문(鞠問)을 당하기도 하고 뒤주 속에서 세자가 죽어가기도 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면 한강이 보인다. 북악의 비정한 정치와는 상관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애환이 강물처럼 흐른다. 백성들은 마치 한강이 서울을 안고 흘러가듯이 나라를 걱정하며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눈물겨운 삶을 이어오기도 했다.
이동국 차장은 작품을 받고 대단히 기뻐했다. 오늘(지난달 23일) 시청사를 찾아가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당시를 회고하면서 디자인과 문화의 화룡점정이 글씨인데도 글씨문화, 서예문화가 변방으로 밀려난 현실을 개탄했다. 오늘날의 서예는 그 형식은 기교에 갇혀 있고 내용은 복고적 메시지를 답습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서예의 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서여야(書如也)’란 금언이 있다. 무릇 글씨는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다’는 것은 물론 글씨의 형식과 내용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그러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뿐만 아니라 서예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고민을 담아야 하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이 그 속에 담겨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옳다. ‘서울’이라는 작품이 물론 그러한 법을 충실하게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기호에 불과한 ‘서’와 ‘울’을 산과 강으로 형상화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지인들이 일정하게 평가해준다. 이 외에도 서울을 북악과 한강으로 추상했다는 점, 북악과 한강을 다시 왕조권력과 민초의 애환으로 대비함으로써 조선조 역사의 일단을 담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역사가 오늘의 정치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초대 민선시장인 조순 전 시장 취임 초였다. 북한산 산행에 동참한 적이 있다. 뜻밖에 조순 전 시장으로부터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시장 취임 이후에는 방명록에 이 방서의 시구를 쓰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서울시에 기증하기로 약속한다. 그 글씨가 있을 곳이 서울시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서울’ 작품은 계속 시장실에 걸려 있으면서 벌써 여러분의 시장을 맞이하고 보내고 있다.
오늘 이 글씨가 걸려 있는 시장실을 찾아가면서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걱정이 없지 않았다. ‘변방을 찾아서’라는 기획연재의 제목 때문이다. 서울시청을 변방으로 여긴다는 것이 결례이기도 하고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박원순 시장을 만나자 이러한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시청이 변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변방의 애환을 시정에 담는 것이 자신의 시정철학이라는 것이었다. 소외된 이웃과 소통하고 사회적 약자의 애환에 귀기울이는 시정을 꾸려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나는 오늘 시장실을 찾아오는 동안 생각했다. 경복궁과 청와대로 상징되는 북악이 정치권력의 상징이라면 서울시청은 민초들의 애환이 흘러드는 칠백리 한강수였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신 교수가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오른쪽)와 환담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청의 이러한 위상에 흔쾌하게 공감했다. 뿐만 아니라 변방이 중심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라는 자신의 역사관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번 시장선거만 하더라도 변방인 시민운동이 중심으로 진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글의 취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요. 중심은 쇠퇴를 향해서 가게 되고 변방은 늘 중심으로 되는 것이 역사의 큰 법칙이잖아요. 제가 서울시장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중심으로 온 것이지만 그동안 변방에서 일했던 경험들을 중심에 적용하고 그럼으로써 퇴행된 것을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지요. 변방과 중심의 순환이 있어야 합니다. 변방정신을 여기에 접목시켜야 서울이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 시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도의 관계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 획, 한 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돕고 의지함으로써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서도의 철학이라는 논지였다. 박 시장은 서도의 이야기에 이어서 사람의 능력도 서도와 같아서 장단점이 서로 보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능력평가나 채용방식에 있어서도 생각해야 할 점이 많고, 특히 복지정책의 경우에도 노인복지와 보육시설을 서로 조화시켜서 노인과 어린이가 함께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복지효과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짧은 접견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론처럼 이야기했다.
“제가 북악에 더 가까이 왔잖아요. 북악과 한수를 잘 연결할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것이 바로 조화와 소통이 아닐까. 산수(山水)는 대우(大友)라고 한다. 산과 물은 오래된 친구라는 뜻이다. 물 없이 어떻게 산이 수목을 키울 수 있으며 산 없이 어찌 물이 흐를 수 있으랴. 북악과 한강이 서로 환포(環抱)하듯이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어루만져야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는 한강수이기를 바란다.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 유정하게 흘러가는 칠백리 도도한 강물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공감과 소통의 다정한 공간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