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오랜만에 띄운다. 그동안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입을 열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지금도 마찬가지다. 별로 즐거운 이야기가 없기도 하려니와 설령 즐거운 것이라 하더라도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내가 네게 해두고 싶은 말은 나를 '불행한 형'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독방은 강한 개인이 창조되는 영토이다. 방 하나 가득한 중압, 그 한복판에 정좌하여 호흡을 조섭(調攝)하면 둥실 몸이 뜨는 무중력의 순간이 있다. 무중력 상태……, 이것은 10원짜리 만원버스에서도 쉽게 얻던 체험이지만 불시에 달려드는 비감도 부력을 받으면 흡사 월면보행(月面步行)처럼 희극적이다.
연말이, 새해가 다가왔다. 유장한 시간의 대하(大河) 위에 팻말을 박아 연월을 정분(定分)하는 것은 아마 그 표적 앞에서 스스로의 옷깃을 여미어 바로 하자는 하나의 작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 약속의 유역을 향하여 너도 나도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네게 새로운 진경(進境)이 열리리라 믿는다.
형님의 결혼에 대하여 네가 몇 가지 객관적 조건에 있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旣成)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관계는 상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동태관계(動態關係)인 만큼 이제부터는 그것의 순화를 위하여 네 쪽에서 긍정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될 것이다.
197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