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창문 가득히 아버님께
어머님을 비롯하여 가내 두루 춘안(春安)하시리라 믿습니다.
얼마 전 개항기 이후를 다룬 이선근(李瑄根) 씨의 저서를 읽었습니다. 물론 연구논문이 아니고 사실(史實)의 선택에 사관(史觀)이, 나열에 체계가, 그리고 저술에 심도가 불비(不備)된 채 사담(史談)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풍부한 소재를 담고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박진(迫眞)하게 알도록 해줍니다. 역사에 있어서 소재는 평가에 앞서 충분히 섭렵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였습니다. {개항기의 상업연구}는 그 상업적 성격, 외생적(外生的) 동인(動因) 및 식민지적 특질이 한국자본주의 발달과정에 어떠한 왜곡을 주는가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효과적인 접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오늘 흩뿌리는 우각(雨脚)에는 아직도 춘한(春寒)이 스산하게 느껴집니다만 이내 줄기를 타고 올라 유록빛 잎새로 빛날 생명 같은 것이 번뜩입니다. 아무튼 봄은 창문 가득히 다가왔습니다.
1977.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