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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눈을 감은 10월에 마지막 날이 들어있는 달을 넘기며,
나는 '프로작'의 함량을 높이며 툴툴대었어.
'가을은 엄마가 눈을 감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계절인데 엄마까지 가세를 하여
끔찍한 계절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매년 되풀이 되다보니 심드렁해지지만 내가 이렇게 엄마를 찾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어느 날,
무심코 TV 체널을 돌리다 어느 연속극에서
나이들어 할머니가 된 엄마와 늙은 딸이 엄마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있었어.
그러다 딸이 이긴 판에 마침 전화가 왔어.
엄마는 딸이 전화를 받는 틈에 딸 몰래 화투장을 바꾸어 놓자
딸은 자신이 이긴 판이였다며 속상해하며 엄마에게 화를 냈어.
그러자 엄마는 늙은 딸을 다독여주며 할머니가 된 엄마와 늙은 딸이
서로 달래고 얼르고 함께 싸워가며 밥 먹으라는 아줌마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치열하게 목숨을 걸 듯 화투를 치고 있더라.

나의 아들은 재밌다고 낄낄대며 웃는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어.
왜냐구....
나는 결코 엄마에게 좋은 딸이 아니였다는 생각 때문에.....
정말 좋은 딸은 나이들은 엄마와 함께
화투를 쳐주며 같이 싸워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딸이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가지색 치마와 흰 모시 저고리를 즐겨 입고 책과 그림과 음악을 좋아한
단아한 엄마는 내 기억에 결코 화투를 치는 엄마가 아니였어.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엄마는 넓은 방에 조그맣게
홀로 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지.
나는 놀라 엄마도 화투를 치나, 하는 생각에 물었어.
"엄마,혼자 뭐하는 거야?"
"화투패 땐다."
"엄마도 그런 걸 할 줄 알아?"
나의 말에 엄마는 대답없이 가만히 웃고만 있었지.
그 때 왜 나는 몰랐을까.....
엄마가 그 때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엄마에게 화투를 쳐 줄 자식이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는 왜 그렇게 자식에게까지 지나치게 자존심이 세었던거지...
그 때 왜 나에게 '화투 치자'고 말해 주지 않았던거야.....

형제가 없어 외로운 엄마는 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나는 많은 형제들에게 숨막히고 지긋지긋해 하며 살았지.
그 많은 자식들 중에,
외로운 엄마를 끝까지 외롭지 않게 해 준 자식은 누구였을까.....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
외로움의 해결이 결코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엄마는 왜
끝내 몰랐을까.

젊은 여자를 택해 엄마를 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저고리를 뜯었다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며 보낸 엄마의 시간들...
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와도 결코 화 한 번 내지않고
함께 겸상을 차려주는 엄마에게 난 분노했지.
그런데 그 것조차 엄마의 자존심이였을까....
아니면 사랑이였을까.....

어쨋든 난 모든 것들이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는 엄마도 아버지도 다 지겹고 싫었지.
아니,
엄마를 그렇게 만든 '사랑'까지도 증오스럽고 끔찍했어.

그 많은 여자들을 울린 아버지는 지금은 국립묘지 명당자리에
아내의 자리를 비어둔 체 홀로 누워있어.
살아 생전에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 울린 아버지가 죽어서는
홀로 누워 있다는 것에 나는 '쌤통이다'고 고소해 해야 할까, 아니면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씁쓰레해야 할까.....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야.
난 다만 엄마에게 결코 좋은 딸이 아니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이였지....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엄마는 나를 밀어냈고
나는 엄마를 밀어냈어.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에 너무 겁을 집어먹었던 것은 아닐까....

그 잘난 공부 한다고 어려서부터 엄마 곁을 떠나 있던 내가
엄마를 찾은 어느 날,자다 답답하여 잠을 깨어 눈을 떠보니
중학생이던 나를 엄마는 꼭 품에 끌어안고 자고 있었지.
결코 한 번도 드러내놓고 자식들에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던
엄마의 그런 모습이 너무 낮설고 당황스러워 나는 엄마가 깨지않게
살그머니 엄마의 팔을 풀고 엄마의 품을 벗어났어.
예민한 엄마가 그 것을 몰랐을까....
내가 엄마의 품을 빠져 나올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
눈물을 흘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이유가 많은 가을이야.
엄마가 좋아하는 가지색 들꽃들을 매 년 가을마다 나의
부엌 창 밖에 심어줘서 고마워.
올 해는 보라빛의 물 봉숭아를 잔뜩 심어주었지....

언젠가 내가 만일 엄마를 만나게 되면 엄마에게 꼭 화투를 쳐 줄께.
엄마와 함께 화투를 치다 화를내고 토라지고 달래주는 그런 시간들을
갖자.

사실은 처음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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