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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6.12.19 06:53

자랑하고 싶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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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눈이 와서 고립되진 않았니?”
오늘따라 유난히 살뜰스러운 언니의 안부다.
“당연히 고립되었지.”
“그러고 어떻게 사니? 난 어제 산에 갔다 왔더니
눈 온 산이 너무 예쁘더라.”
걱정을 해주겠다는 건지 아니면 염장을 지르겠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좋았겠네........ 난, 오히려 고립되니 편하고 좋아.”
나의 대답은 무심하고 심드렁했다.
“너도 팔자다! 그건 그렇고, 얘, 어제 나 선 봤잖아!”
몇 년 전에 형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된 언니의 목소리가 유난히 살뜰스러운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럼 그렇지, 언니 목소리에 리듬이 실렸다, 했었다.
“선을 산에서 봐?”
“얘는, 요즘 누가 촌스럽게 커피숍에서 애꿎은 손수건 빙빙 돌리며 보니?
요즘은 서로 다 자기 취미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본다.”
“그렇구나........”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얘, 그런데, 이번에 선 본 남자 참 괜찮은 것 같아!”
“괜찮은 남자가 아직도 지구에 남아있나........”
“너는 남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탈이야. 아직도 좋은 남자들 찾아보면 많아.”
“그래, 잘 해 봐.”
“얘, 그런데 어제 만난 남자에게 너의 얘기를 했더니 자기 후배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라.”
“언니! 제발 그만 해! 그리고 선을 보던, 말 던, 언니만 봐. 쌍과부 자매가 쎄-트로
쪽 팔릴 일 있어?”
“그게 왜 쪽 팔릴 일이니? 요즘 나가면 과부들과 홀아비들이 꽉 찼다.”
“꽉 찼던지 덜 찼던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 언니나 잘해 봐!”
“그러지 말고 너도 한 번 소개 받아 봐. 자기 후배인데 50이 갓 넘었고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부인은 몇 년 전에 사별해서 딸만 셋인데, 전부 미국에 유학가 있고 재산도 좀 있다더라.”
“언니, 난 내 자식 기르는 것만 해도 벅차. 그리고 그 사람 돈이 있으면 도우미 아줌마
부르고 침모 부르고 찬모에게 돈 주고 불러서 살라고 해.”
“얘, 능력 있는 사람이 재혼하지, 미쳤다고 도우미 아줌마를 부르고, 침모를 부르니?”
“능력 있으니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랑이라는 그럴싸한 빌미로 재혼해서
공짜로 여자 부리고 데리고 살겠다는 도둑 심뽀 아니야?  재산 있다며? 그럼, 사람을
부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네.”
“능력 있으니 재혼을 하려고 하지, 능력 없는 사람들은 요새 재혼도 못해.”
“그냥 살라고 해. 살만하고, 자식들 다 있는데, 새삼스럽게 왜 또 재혼을
하려고 발광을 한데? 그보다 멀쩡한 처녀총각들도 가만 있는데.”
“자식하고 능력가지고 사니? 사랑도 있어야지.”
“그 넘의 얼어 죽을 사랑인지 오랑인지, 내가 보기엔 도우미 아줌마에게 주는 돈 아까우니까,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공짜로 여자 부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여.”
“너는 어떻게 모든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니?”
“생각해 봐. 한 번 결혼도  했고, 자식 있고, 살만한데 왜 또 여자가 필요하데?
그 나이에 순수와 낭만을 말할 거야? 아니면 프라토닉인지 플라스틱 러브인지를
읖을 거야?  멀쩡한 처녀총각도  결혼 못 한 사람도 많은데 두 번이나 결혼을 하려고 하다니, 뻔뻔한 건지, 용감한 건지........그거야말로 밥해 줄 여자, 빨래 해 줄
여자 필요한 거 아니야? 일부일처제의 결혼이라는 풍습도 사유재산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기 혈통인 자기 자식에게 자기 재산을 넘겨주기 위해서 생긴 거야. 그런데, 그 재산 넘겨 줄 자식 있는데 왜 또 결혼을 해야 하냐고? 그 자식 가지고 안 될 만큼 넘겨 줄 재산이 그렇게 많아?"
“사람이 돈벌레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고 사니? 의지하고 기댈
사람도 필요하지. 홀로는 외로우니까........”
“결혼하면 안 외롭데?”
“둘이면 당연 안 외롭지. 사람 ‘인’자가 왜 그렇게 생긴 건데? 혼자면 쓰러져. 서로
의지하고 살라고 그렇게 생긴 거야.”
“사람은 원래 근원적으로 외로운 거야. 그리고, 외롭지 않으려면 그게 왜 꼭 ‘부부’여야만  해? 자식 있잖아? 그리고 세상에는 다 좋은 것은 없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돼. 외롭지 않은 대신 괴로움을 얻겠지. 괴로우니까, 외로움을 느낄 여유도 없는 것이고,”
“너는 아직 뭘 몰라.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죽네 사네 해도 자식보다는 부부가 훨씬 나은 거야. 너 당장 남편 없으니 눈도 못 치우고 갇혀서 그게 무슨 꼴이니?”
“돈만 있으면 눈은 사람 불러서 얼마든지 치워.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야. 눈 치우기 위해서 남자를 얻나? 그리고 언니, 난 이제야 겨우 자유를 찾았어. 물론 소윤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홀로’라는 자유를 지금에야 찾았어. 난 세상에게 외치고 싶어.너무 좋아서, ‘난 혼자다.’ 이렇게 막 자랑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내가 읽고 싶은 책 맘대로 읽고, 천국이 따로 없어. 이렇게 내가 왕처럼 살고 싶지, 또 왕을 모시고 살고 싶진 않아.”
“그 천국에서 잘 살아 봐. 여자는 왕보다 왕비가 좋은 거다.”
“그게 언니와 내가 틀린 점이야. 난, 왕비보다 백번 천 번 왕을 택하겠어. 그리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함께 살면 서로 원수가 돼. 그 원수를 넘어서는 질긴 인연들이 부부겠지만, 그런 질긴 인연을 한 번 가져 자식까지 있는데, 왜 힘들게 새삼스럽게 또
다시 질긴 인연을 만들어야 하지?”
“넌 자식, 자식 하지만, 늙으면 부부 뿐이야. 자식하고 천 년 만년 살 것도 아니고,
너 늙으면 어떻게 할래?”
“난, 늙으면 실버타운 갈 거야. 단지, 나의 노후를 함께 하기 위해서 다시 원수라는
질긴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아.”
“넌, 왜 부부를 원수라고 생각하니? 정말 좋은 인연도 많아.”
“함께 살면 다 원수야.”
“그럼, 남자면 다 원수겠구나. 너 교통사고까지 났어도 네가 좋아하는 신 선생님을 보러 용인까지 갔다 온 애가 그걸 말이라고 하니? 신 선생님은 남자 아니 던?”
“응, 나에게 남자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 원수야. 그리고 신 선생님은 나에게 남자 아니야, 존경하는 선생님이지. 그리고 신 선생님도 남자로 만나 살면 다 원수 돼. 같이 살면 다 똑 같아. 그러니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100미터 밖에 두고 보는 거야. 내 삶의 반경 안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 원수 되는 거야.  생활이, 삶이 그렇게 만들거든.”
“잘 났다! 넌 누굴 닮아 그 모양이니?”
“한 가지는 확실해. 적어도 사랑지상주의 자인 엄마를 닮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야 말로 속박에서 벗어 나 '불행 끝 행복 시작'인데 또 다시 '남자'라는
'쇠밧줄'로 내 스스로 내 목을 칭칭 감으라고? 미쳤어? 난 내 세계에서 여왕으로,
왕으로 이제부터 자유스럽고 행복하게 살 거야."
"그래, 눈구덩이에 파 묻혀  혼자 왕으로, 여왕으로 잘 살아 봐라."
"응. 그럴거야. 그러니까 언니는, 언니대로 왕 모시고 눈 쌓인 산에나  
올라가며 살아. 그리고 제발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전화 하지 마.
나 이런 전화 받고 얘기 들어 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어련하시겠어. 쌀쌀맞고 독한 년........"
"뚜...뚜...뚜"
갑자기 전화가 뚝 끊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언니는 또 몇 칠이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치지 않고
'얘, 어제 나 괜찮은 남자 만났어!'하고 전화를 걸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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