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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약속한 병원으로 들어섰다.
병원의 실내 장식이 또 달라져 있었다.
“돈 많이 벌었구나!”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는 제쳐 둔  삐딱한 나의 첫마디에, 중학교 때부터 푸근하고
속 좋던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나의 말을 받았다.
“또 왜 그래? 너 온지 벌써 일 년 전이야.”
“일년에 한 번씩 실내장식 바꾸는 거, 쉬운 일 아니잖아.”
까칠한 나의 대답에도 친구는 계속 미소를 잃지 않았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는 거야. 성형외과는 실내장식에 신경을 써야 해.”
“왜?”
“음....일단, 성형외과는 다른 병원처럼 목숨이 위태로워서 찾아오는 사람은 없잖아.
목숨과 관계없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는 신체의 치료를 위해 찾는 병원이기
때문에 다른 병원과 달리 실내장식이 고급스럽고 깔끔해야 해. 그래야 의사에 대한
신뢰도 더 가게 되고 병원이 고급스럽고 깔끔해야 자신이 고치려고 하는 부분도 그렇게 고급스럽고 깔끔해 진다는 인상을 주게 되는 거지. 대부분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타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여 지는 병원의 첫 인상은 무척 중요해. 직업의 속성상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엄살을 피우니 먹고 살기가 아주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실내장식으로라도
사기를 쳐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응. 어려워. 어려워 죽겠어. 그러니 오늘 네가 밥 사라.”
친구는 나의 비아냥에도 아랑곳 않는다.
“밥은 부르조아인 의사가 사지, 프로레타리아인 백수가 사니?”
“의사들 요즘 부르조아 아니야.”
“성형외과 의사들은 다 부르조아야.”
“그것도 잘 나가는 의사들이나 그렇지, 대부분 힘들어.”
“또 왜 이러실까, 비싼 걸로 먹지 않을 것이니 어서 일어서!”
“너 술 마실 거잖아.”
“내가 술을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그렇게 엄살이니? 그리고 이제 술 못 마셔, 늙어서!”
“어이구, 천하의 박명아가 술을 다 마다하시고? 정말 늙었나보다.”
“이제 늙을 나이지........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 해? 왜? 내가 늙으니 그렇게 좋니?”
즐겁게 웃음까지 흘리는 친구가 미욱스러워 한 마디 던졌다.
“응. 즐거워. 즐거워 죽겠어.”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 활짝 웃는다.
“그래, 나를 보고 즐거우니 난 밥값 했다. 그건 그렇고, 어서 나가자. 배고프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얘, 너 정말 늙었다. 어머! 이마의 주름은 왜 이렇게 많아졌니?”
친구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이마의 주름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 그리고 새삼스럽게 갑자기 뭐가 늙었다는 거니?”
“아니야, 얘, 너 정말 주름 많고 무지 늙었어.”
“점점.......”
나는 눈을 흘겼다.
“어머! 이거 심각하다! 얘, 이리 좀 앉아 봐.”
“왜? 나 가지고 장사하려고?”
“얘, 아무렴 내가 친구가지고 장사하겠니? 어서 앉아 봐.”
나는 손해 날 것 없다는 생각에 친구 가까이 엉덩이를 붙였다.
“얘, 이거 보톡스 몇 대만 맞으면 되겠다.”
나의 얼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 친구는 드디어 대안을 찾았다는 듯
목소리가 밝았다.
“됐거든! 이제 보니 이게 아주 친구 가지고 돈 벌려고 하네. 됐어!”
“얘, 내가 아무리 형편이 안 좋아도 친구가지고 돈 벌려고 하겠니?
내가 그냥 새해 선물로 치고 몇 대 놓아줄게.”
“정말?”
이게 웬 일인가. 공짜면 양잿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내가 언제 헛튼 소리 하는 것 봤니?”
“그런데........수상하다.......너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아무래도........ 이상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하던데
너 혹시 죽을 때 된 거 아니니? 솔직히 말해.”
“아이구, 이 여우, 내가 정말 못 살아. 그게 아니라 실은 보톡스 약은 한 병을 따면
일주일 안에는 다  써야 하는데 한 병 따놓고 남은 것이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서 그래.”
“뭐! 유통기한!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이려고!
그러니까 지금 유통기한이 지난 주사약을 버리기는 아까우니 선심 쓰는 척하며
나에게 놓겠다?”
“얘는, 사람 잡겠네! 누가 유통기간이 지났데? 내일이면 지난다는 얘기지!”
“그러지 말고 그럼, 이여사! 댁이나 맞어!”
“얘, 너도 보다시피 내가 주름이 어디 있니? 이건 너처럼 늙고 주름이 많은
사람이 맞는 거야.”
“뭐야? 너 죽을래!”
“얘, 가만히 생각해 봐. 내가 친구니까 이러지, 누가 이 비싼
주사를 공짜로 놓아 주니? 이거 한 대에 돈이 얼만데?”
“그래? 그거 한 대에 얼만데?”
나는 비싸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거 한 번 찌르는데 4-50만원씩 받아.”
“헉! 그렇게 비싸?”
“그럼, 웬만한 사람은 이거 맞고 싶어도 못 맞아.”
“그래? 그럼, 이거 부작용 없을까?”
“잘 맞으면 부작용 없어. 그러고 6개월 후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니 부작용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마.”
“뭐? 어떤 부작용이 있는데?”
“응.......뭐........이게 일종의 독약이니까 근육이 아니라 다른 부위에 놓으면 살이
썩어 들어간다던지 아니면 근육이 뒤집힌다던지 뭐, 그런 거겠지.”
“뭐야? 독약! 살이 썩어 들어가? 근육이 뒤집혀?”
“아니, 일테면 그렇다 이거지. 그렇지만 염려하지 마. 난 능숙한 의사니까,
절대 그런 일 없어.”
“싫어! 나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괜히 주름 피려다 근육이나 뒤집혀지면
어쩌겠니? 그러다 살이나 썩으면.....아이구....생각만 해도 끔찍해. 싫다, 싫어.”
“아니라니까. 그냥 너 겁주려고 그런 거지, 절대 그런 일 안 일어난다니까.”
“정말?”
나는 공짜와 비싸다는 말에 이미 약해져있었다.
“그래, 염려 마. 그렇게 위험한 거면 얼굴이 생명인 탈렌트들이 밥 먹 듯 맞겠니?”
“탈렌트들은 이걸 밥 먹 듯 맞아?”
“그럼, 그 사람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수시로 맞아”
“그래........?”
탈렌트들이 밥 먹듯 맞는다는 말은 나를 현혹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럼, 이거 맞으면 나도 탈렌트처럼 되니?"
"탈렌트들은 개나 소나 다 되는 줄 아니? 어서 눕기나 해! 마취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나처럼 생긴 개와 소는 한 번도 못 봤다!그리고, 뭐? 마취도 해?”
“그럼, 얼굴에 주사를 놓는데 마취를 해야 지.”
“전신마취를 한단 말이야?”
“아니, 그냥 얼굴에 주사 들어갈 때 따끔하니까, 그 부위에 마취연고를 바르는 거야.”
“마취를 할 정도면 아프다는 얘기 아니니?”
“얘, 노무현도 맞았는데 뭐가 아파. 여기 오는 환자들 보면 찍소리도 없이 맞고 가더라.”
“노무현이야 대통령이 되려니까 맞았지만 난 대통령 될 생각 없는데........”
“어이구! 누가 너 보고 나오래? 그리고 나오면 누가 찍어 주기나 하고? 헛소리 말고
어서 눕기나 해!”
“정말 안 아픈 거지?”
“그렇다니까! 애도 낳은 애가 벌벌 떨고 왜 이래! 마취연고 바르고 연고가 스며들기까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해. 그러니 어서 누워! 배고프다며? 어서 맞고 밥 먹자.”
“그래....... 알았어. 정말 아프지 않을까?”
“아이구! 대 수술을 3번이니 받고 항암치료까지 받은 박명아가 이 까지 주사 하나에 왜 이렇게 벌벌 떨고 이래!”
“그거야, 생명에 관계 된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한 거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미친 짓 같다. 안 해도 될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지.... 단지 유통기한이 넘으면 폐기 될 친구의 주사약이 아까워서, 친구를 위해.... 이건 아니다......아무래도 미친 짓이야.”
“말은 똑바로 해라. 왜 나를 위한 거야? 너를 위한 거지? 그리고 왜, 미친 짓이야?
젊게 되는데?”
“얘, 이 나이에 젊어서 뭐하니? 그냥 자연스럽게 늙는 게 좋은 거야.”
“넌 자연스럽지가 않으니 하는 말 아니야? 넌 심각해! 어서 누워!”
“아주 비싼 약 폐기처분 될 까봐 안달이 났구나! 내가 폐기처분장도 아니고.......”
“궁시렁거리지 말고 어서 누워. 다 친구 잘 두어서 이런 것도 맞는 것인 줄 알고.
이런 폐기처분장 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여자들도 많아.”
나는 친구가 발라주는 마취연고를 바르고 불안 속에서 30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친구가 주사기를 들고 다가왔다.
“얘, 정말 부작용 없는 거지?”
“얘가 왜 이래? 정말! 부작용이 있으면 노무현이 대통령 됐겠어?”
“알았어. 알았어. 6개월 후면 다시 돌아 온 다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악!!!!!!!!사람 살려!!!!!!!!!!!”
“왜? 왜 그래?”
나의 비명에 주사를 놓던 친구가 놀라 손을 멈췄다.
나는 아픔에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머, 얘, 일어나면 어떻게 해? 아직 반 밖에 안 들어갔어!”
주사기를 든 친구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야!!!됐거든!!!! 차라리 내가 애를 한 명 더 낳고 말지. 이 건 못 맞겠다.
눈알이 빠지는 것 같고 생으로 얼굴 가죽을 뜯어내는 것처럼 너무 아파!”
나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태어나서 그런 아픔은 처음이었다.
“너 처럼 늙은 애가 무슨 애를 낳아? 망측스럽게, 꿈도 야무져. 얘, 조금만 더 맞자. 이 것 까지만, 지금 반도 못 들어갔어. 그럼 너 이마의 주름 반 밖에 안 펴져.”
“반 밖에 안 펴져도 상관없어. 죽어도 안 맞아! 대통령을 시켜준다고 해도
안 맞아! 독한 사람들 같으니! 어떻게 이런 것을 밥 먹 듯 맞고 사니?”
“그 정도로 아프니?”
친구는 정말 그렇게 아프냐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본다.
“정말이야. 내가 왠만하면 참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정말 이건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어떻게 이런 것을 맞으며 사니?”
“그  정도야? 내 환자들은 찍소리 하지 않고 맞던데........처음보다 그 다음에
맞을 때가 더 아프다고 하면서도 아무 소리 안하고 참던데......정말, 그 정도로 아파?”
“혹시, 이 주사약   유통기한이 지나서 이렇게 아픈 것 아니니? 너, 나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약 주사 한 것 아니야?"
"얘, 죄 받을 소리 하지도 마라. 아무려면 내가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없는 줄 아니?"
"그렇다면 아무소리 없이 맞고 있는 그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사람이니? 어떻게 아무소리 없이 참을 수 있니? 난 대수술을 3번씩이나 하고 항암제를 맞고 아픈 것에는 이력이 난 사람이지만 이건 못 참겠다.”
“그러게.......내가 주사를 놓아도 그 정도인 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자들은 찍소리 한 번 하지 않고 항상 그렇게 맞고 가지........”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무섭다는 것 아니니? 정말 사람 맞니? 아무리 여자들이 독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것을 단지 예뻐지기 위해서 참고 맞니? 그 것도 수시로? 맞으면 맞을수록 더 아프다면서? 생명이 걸린 일도 아니고........”
“그러게.....그런데, 너 정말 이거 안 맞을 거야? 그럼 너 주름 반 밖에 안 펴져. 이왕 아픈 거 조금 참고 마저 맞자. 생각 해 봐. 이마에 주름이 반은 펴지고 반은 안 펴지면 얼마나 꼴이 가관이겠니?”
“아니야, 죽으면 죽었지 절대 안 맞아. 반만 펴져도 상관없어. 누가 나 보는 사람도 없고, 또 봐도 상관없어. 내가 미쳤지! 공짜에 눈이 멀어서.....”
“그럼 이 주사약 버리야겠네....아깝다.....”
친구는 아픈 나보다 아깝게 버려야 하는 주사약을 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여사! 넌   지금 친구 걱정보다 아까운 주사약  타령이니? 그렇게 아까우면 댁이나 맞아.”
“난 너처럼 주름 없잖니?”
친구는 생글거리며 약을 올린다.


얼마나 아픈지 배고픔도 달아나버려 그날 저녁 먹는 것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름이 반 만 펴진 내 이마에 밤새도록 얼음주머니를 대고 투덜거려야했다.
'공짜에 눈이 뒤집혀 덥석 맞은 내가 미친년이지...
아무리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정말 세상에 독한 사람들은 여자라고.....
그대, 독한 자의 이름은 여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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