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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09:39

마적단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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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너의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친 독립투사다.
너희들은 바로 그 훌륭한 투사의 자식들이다.’라는 말로 우리들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소리를 막아버리곤 하셨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인간인지라, 우리들이 당신의 속을 썩일 때는 의지의 한계를 벗어나 머리뚜껑이 열릴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는 우리들보고 훌륭한 투사의 자식들이란 말은 간곳이 없고 ‘이 마적단 자식들아!!!’ 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에게 훌륭한 ‘독립투사의 자식’과 ‘마적단 자식’이라는 소리를 거의 비슷하게 듣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독립투사'는 '마적단'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하고 얌전한 엄마에게 ‘마적단 자식’이라는 소리와 ‘독립투사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거의 비슷한 횟수로 듣고 자란 이유는 우리들의 거센 성격이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흘 굶으면 담 안 넘는 놈이 없다’는 옛말처럼 아버지가 만주에서 말을 타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종종 식량이 떨어졌을 때 살짝살짝 부업으로 '마적질'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한 때 떠돌던,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북한의 ‘김일성’이 ‘장군’이 아니라 ‘마적단 두목’이였다는 말은,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독립운동’이 주업이라면 ‘마적단’은 부업으로,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했겠지, 라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열렬한 추종자인 엄마가 우리들에게 ‘마적단 자식’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과거를 엄마에게 얘기하며, 자신이 살기위해 종종 마적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고백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얌전하고 음전한 엄마가 머리뚜껑이 열려 우리에게 ‘마적단 자식’이라는 악을 쓰도록 만든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들에게 원인이 있다.
딸 여덟에 아들 한 명,
이것이 우리 형제수다.
아버지의 뜨거운 피를 이어받은 아홉 명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엄마를 속 썩이는데 아무리 얌전하고 음전한 엄마라도 머리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자들이 더 거센 우리 집에서, 내가 그나마 제일 얌전한 정도라면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거센 여자 여덟 명 중에서 그나마 겨우 한 명 건진 남자는, 우리 거친 여자들에게 동화돼, 여성화 되어버려, 어렸을 때도 우리들과 함께 앉아서 오줌을 누곤 했다.
그런 우리의 거센 기질들은 자라면서도 더하면 더했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무늬만 여자인 우리 자매들은 살아가면서 아주 손해를 보고 있다.
남자들보다 더 용감하고, 더 씩씩하고, 더 터프하고, 더 거센 여자들에게 누가 매력을 느끼고 보호를 해 주겠는가.
각자 개성이 강해 제 목소리가 크고, 타협을 싫어하며 자신을 굽힐 줄 모르는, 비굴하고 비겁한 것은 눈뜨고 못 보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하는, 돌아가는 풍차를 보고
칼을 빼어들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처럼, 성급하고, 무모한 객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우리자매들은 서로 함께 만나도 각자 불편하고 논쟁이 잦다.
그래서 천방지축 앞뒤 생각 없이 급한 성격에 칼을 빼들다가, 후회하고, 안 해도 될 고민을 하고, 곤혹을 치루기도 한다.


나는 마약보다 더 무서운 중독성을 가진 권력을 탐하는 정치인을 체질적으로 혐오한다.
권력이란, 상대방에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의지대로 상대방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 권력은, 부림을 당하는 상대방에게는 신체적 고통만 없다 뿐이지, 정신적으로는 고문의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잔인한 정신적 고문을 즐기며 중독까지 된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 정치인들에게 얼굴 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처량하다는 서글픈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방선거가 한참이던 지난 오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산 속 깊은 곳, 맨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집배원도 오기 힘든 곳이다.
그런 우리 집에 종종 중요한 편지가 오면, 힘들게 우리 집까지 가져오지 말고 아래 동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인테리어 집에 맡겨 놓으라고 집배원에게 부탁을 한다.
그 인테리어 집을 하는 부부는 나보다 나이는 어린데, 사람들이 참 착실하고, 더구나 남편 되는 사람은 항상 책을 즐겨 읽고, 정태춘의 노래를 좋아하는, 시골에 살면서도 고여 있지 않고 깨어있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 날도 인테리어 집에서, 집배원이 가져다 놓은, 일본에서 온 편지를, 인테리어 가게 쇼파에 앉아, 짧은 한문 실력과 일본어 실력으로 머리털 빠져가며 골똘히 읽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아 있던 인테리어 집 남자가, 놀란 사람처럼 부동자세로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옆에 앉아 있던 부인도,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꽁지 빠진 닭처럼 바로 앞에 슈퍼로 부리나케 뛰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다 말고 두 부부가 하는 폼새를 보고 ‘나라님이라도 행차하셨나,’ 하는 생각으로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러자 예의 그 권력에 맛을 본, 약간의 중독성을 띤 정치인이, 특유의 유들유들한 개기름이 낀 얼굴과 폼으로 수행비서와 추종자들을 쭉 거느리고 들어서고 있었다.
선거 때에, 출마자들의 얼굴들을 보면, 지금 권력에 맛을 보고 있는 정치인인지, 아니면 권력에 맛을 보기 위해 초조하게 줄을 선 정치인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옛말에, 물개 가죽을 뒤집어 써야 정치를 한다고, 물개 가죽을 뒤집어 쓴 사람의 얼굴은 금방 판명이 나는 것이다.
약간의 개기름이 흐리고 뱃살이 나온, 나중에 동맥경화에 걸릴 높은 확률을 가진 유들유들한 얼굴이‘ 너는 뭔데 건방지게 내가 들어 왔는데도 일어서지 않고, 다리도 펴지 않고 앉아 있어?’ 하는 표정으로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수행비서와 추종자들은 ‘이 년 봐라!’ 하는 표정으로 역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인테리어 사장은, 건방진 여자를 자신의 가게에 들인 것에, 어쩔줄 몰라하며 죄 지은 듯이 두 손을 비비고 있었고, 사장 부인은 슈퍼로 달려가 사온 음료수를, 출마자와 추종자들에게 공손하게 받치며 나와  정치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사상 내 것도 한 병 사왔는지 나에게도 내밀었다.
나는 내밀어 준 음료수를 마시고, 나라님이 나오던지, 대통령이 나오던지, 내가 나라님과 대통령 덕에 먹고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님과 대통령이 내 생활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 생활비를 주던 사람은 이미 죽어, 나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용감하다.) 계속 편지에만 골똘하고 있었다.
그러자 앞에 앉았던 출마자가 못 참겠다는 듯, ‘나를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난 이런 사람이야.’ 하듯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나는 무심히 명함을 건네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 번에 출마한 의원이었다.
지금 출마하려는 놈이, 메뚜기도 한 철인,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유세를 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내 머리에 스팀이 나기시작했다.
“00고등학교라....그 때는 고등학교 시험 쳐서 들어갈 때였지요? 참 공부 안 하셨네요.”
명함에 쭉 적힌 이력을 읽어보며 내가 한 마디 던지자, 앞에 앉아있던 출마자의 얼굴이 벌개 졌다.
“그건 그렇고, 전에도 의원으로 계셨고, 이번에도 또 출마하셔서 드리는 말인데, 제가 감악산 꼭대기에 사는데, 왜 저의 집 길은 포장을 안 해 주시는지요?”
출마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아~바로 그 꼭대기에 사시는 분이군요. 누구신가, 했더니...저, 사실은 그 집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왜 항상 차가 못 올라가게 길을 막아 놓지요?”
“출마하시는 분이 주민이 길을 막아 놓는 이유도 모르시나요?”
“그 곳은 등산로라 길을 막을 수 없을 터인데요.”
“등산로는 따로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는 사람만 우리 집을 통해 산을 올라가려고
우리 집 길을 이용하는 거지요. 그래도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게 올라가게 해 두고 차만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두었습니다. 주차해 놓은 차들로 정작 몸이 아파 급히 병원에 가려고 해도 제 차가 움직일 수 없는 일도 있고, 여름만 되면 차에 음식을 잔뜩 싣고 와 계곡에서 놀다, 음식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버리고 가는 통에, 악취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저의 차만 올라 다니도록 길을 막은 것입니다.”
“길을 막는 것은 위법인지 모르십니까?”
“그럼, 법으로 해보시지요. 그 길은, 나라 재산이 아니라, 저의 사유지입니다. 저의 개인 땅에 단지 제가 살기 편하게 길을 만든 거지요. 오히려 사유지에 길을 만들어 함께 쓰도록 한  저에게 나라에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유지에 집을 짓든 막던 무슨 상관이지요?
도민을 위해 출마를 하셨으면, 제가 길을 포장해 달라고 여러 번 신청을 했는데, 적어도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에 지적도 한 장은 띠어보는 성의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사유재산이니, 사유재산으로 포장하시지요.”
“그래요? 그럼, 이제 제가 그 곳을 완전히 막아 절대로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해도 상관이 없으십니까?”
“아무리 사유재산이라도, 감악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길은 내어 주셔야지요.”
“그러게, 길을 내어주는 대신 포장을 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글쎄.... 포장은 저와 상관이 없는 부서라서요.”
“상관이 있건, 없건, 도민을 위해 출마를 결심하셨다면, 도민들의 고충을 성의있게
들어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글쎄, 저와는 상관이 없는 부서라니까요.”
“그럼,출마는 왜 하셨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출마를 왜 했는지도 모르는 분에게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군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가 말하는 중에 수행비서들이 나를 쏘아보아, 나의 얼굴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 해줄까, 생각했지만 그냥 일어섰다.
중간에 선 인테리어 부부는 어쩔 줄 몰라 난감해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처형, 미안해요.”
평소 자신의 부인이 나를 ‘언니’라고 불러 나를 처형이라고 부르고 있는 인테리어 집 사장은 나를 따라 나오며 미안해했다.
“자네도 알아서 해! 자기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지! 저 사람은 지금 우리들에게 오히려 굽신거리며 한 표를 구걸해야 할 때야! 자기 권리도 모르고 정치인이라니 마냥 굽신거리고, 이러니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안 돼! 내가 이런저런 꼴들이 보기 싫어 산속으로 들어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또 이런 꼴을 봐야하다니...이나라를 떠나야 이 꼴을 안 보려나!”
나는 거칠게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와 다툰 사람이 당선이 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만일 떨어진다면....그래도 나와 싸운 것을 보니 정치에 완전 중독이 된 사람보다는 아직 순수하다는 얘긴데...
‘아이구! 그러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피켓을 들고 시위라도 하면 어쩌나....’
나는 갑자기 그런 고민이 되며 그 때부터 걱정이 되기시작했다.
‘으...미친년..그만 참고 있지...난 몰라....’
나는 그 때부터 그 출마자의 지지도를 관찰하며 유세에 나선 추종자들보다 더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표장에 가서 나와 싸운 출마자를 기도하듯 찍었다.
그리고 결과는,
내가 찍은 출마자가 당선되었다.
만세!!!
나는 당선자보다 더 기뻐하였다.

선거가 끝나고 우연히 그 인테리어 집에서 다시 나와 싸운 당선자를 만나게 되었다.
싸움을 하고나서 오히려 치매끼가 있는 내 기억에 확실히 자리 잡게 된 당선자와 난 반갑게 악수를 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제가 찍어서 당선 되신 것 아시지요?”
상대방도 당선이 되어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제가 덕택에 당선이 된 거군요. 감사합니다.”
그 후로 그 정치인의 추종자 클럽에 들어와 산에도 함께 가자, 식사를 대접하겠다, 여러 번 권유가 왔으나, 체질상 정치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호랑이가 없어, 토끼가 왕이 된 산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오늘도 단순무식한, 마적단 딸은, 좌충우돌 사오정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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