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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나는 ‘남자’라는 동물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 어렸을 때부터 내가 보아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런 ‘남자’에게 목을 매고 사랑한다고 주절거리는 ‘여자’를 ‘혐오’했다.
그건 아버지에게 목을 매는 엄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은 '남자'와 '여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놀이터'라는 생각이 든
다음 부터였을까.
아니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 중에 가장 잔인하고 탐욕스럽고 쾌락을 추구하고 악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다음 부터였을까.
아니면, 아무리 지식인이고 지성인이고 고매한 인격자라할지라도 한 꺼풀만 벗으면 다 똑같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안 다음 부터였을까.
어떤 것이던지 상관은 없다.
세상이 다 그런 거니까.

‘남자와 여자'라는 동물은 ‘남자와 여자'를 떠난 그냥 같은 동등한 동물로 지낸다면
참 괜찮은 동물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일단 ‘남자’가 되어버린 동물들에게서는 도통 매력은 커녕 분노만 느낄 뿐이다.
나는 남자의 벗은 몸을 보아도 '벗었구나' 남자와 한 자리에 누워 있어도 '누웠구나' 할 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이다.
아마 남자가 나를 강간하려고 달려든다면(우리딸 말처럼 다 늙은 여자에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덤벼! 어디 실력 좀 보자! 확실하고 자세히 못하면 죽을 줄 알아!"라며 남자의
기를 꺽어 놓을 여자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면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남자에게 '여자'로 궂이 잘 보일 필요도 없다.
남자라고 궂이 여자 앞에서 '남자'일체 할 필요도 없다.
남녀를 떠난 가식없는 그런 동등하고 진솔한 '인간 관계'가 좋다.
어쩌면 내 의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다른 남자들은 아버지와 다를 것이라는 의식이 처절히 박살 난 다음부터 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을 벗어 버렸다.
세상 모든 평범한 남자들은 남자의 속성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나와 살고 있던 남자가 지방에 내려가면 사업의 연결이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여자를 품는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세상에는 순수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남자보다 음침하고 음탕한, 동물이 사냥을 하기 직전에 먹이를 노리는 눈빛을 가진 남자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고 난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남자는 여자보다 염색체 수가 하나가 모자란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남자' 또는 '여자'는, 그 속성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 안 좋은 일은 남자보다 더 한심한 ‘여자’라는 동물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끔찍한 일은 그런 동물들 속에 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더 비극적인 사실은, 내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동물인'여자'가 나란 것이다.
세상에는, 남자라는 동물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여자라는 동물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사는 것이 이렇게 끔찍해 졌을까.
아니면, 그 여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단순하고 순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난 다음부터였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궂이 알고 싶지도 않다.
인간이라는 동물들에 대해서 이렇게 냉소적인 것에 대해 의사의 권유대로 치료를
받아야 할까.
인간이란 것에 대해 가끔은 내 자신조차 이렇게 역겹고 증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까.
치료를 받아 인간이란 모든 동물들에 대해 차별없이 용감하게 한계선 없는 희망들을 품으며 단지 '인간이'란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을 차별없이 사랑하고, 또 다시 상처를 입어 어쩔 줄 모르고 신음하며 쩔쩔매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아니,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다.
사는 것은 상처를 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라지만 그 것은 내가 존경하는 20년 감옥 생활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강하고 용감한 신 선생님이 하실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나는 더 상처받지 않게 선생님 뒤에 안전하게 몸을 숨겨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일이다.
비겁하다는 것을 알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 겁 없이 희망을 품고 더 이상 상처입고
싶지가 않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인간세상을 염탐하며 살고있다.
교활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세상의 '여자'라는 틀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몸을 가지고 말이다.
악몽이다.

내가 세상에 아직 살고 있는 것은,
"엄마, 우울증이 좋아질 때가 제일 무섭대. 절대로 자살하면 안 돼."
내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 아직 여린 딸의 염려스러운 당부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는 너희들을 놓아두고 절대로 안 죽어. 엄마는 책임감이 강하니까."
그렇게 딸에게 다짐한 나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세상에 대한 미련들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때문일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죽는 것이 두려워,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 스스로 나를 죽일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것 때문일까.
이왕이면 후자가 가장 마음에 들기는 하다.

비겁한 선택이였지만 인간에 대해 넌덜머리가 나서 이 산속으로 숨었다.
살기위해 산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산 속에서도 역시 인간과의 관계는 계속 되고 있다.
비극이다.

내가 신 선생님과 더불어 숲의 사람들을 찾게 된 것은 그 사람들이 이악한 세상을 사는 교활하고 영악한 동물들의 눈빛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신 선생님과 신 선생님의 사고를 흠모하고 추구하는 숲의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했다.
나는 절실하게 신선한 희망이 필요했다.
딸과의 약속 때문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라도 나는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하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에 영원과 완전이란 없고, 희망은 곧 절망이란 단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희망'이란 자신이 세상에서 퍼 올리는 '노력'이다.
'절망'이라는 세상의 우물에서 '소망'의 두레박을 내려 '희망'의 샘물을 퍼 올리는 노력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더불어 숲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겸손 속에 오만과 ‘나는 너와 다르다’는 ‘차이’와 '벽'의 긍지를 가진 오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보스러운 나 역시 차별화 된 인간을 선호하여 거기 모였듯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나와 똑같이 그렇듯이........
어쩌면 이모든 것들은 바보스러운 나의 자격지심일까........

하지만, 나의 바보스러움 덕분에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다.
내가 바라던 인연들도 만났다.
그래서 나는 감사한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의 바보스러움에도.
지금 내가 여기에 있고, 살고 있는 이유를 만들어 준
실망을 안겨준 나와 같은 모두 바보스러운 사람들에게까지도.
세상은,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골고루 섞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감하게 살아가야하는 '장'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추구한다.
‘동물’의 눈빛도 벗어 버리고 ‘오만’의 눈빛도 벗어버린 단순한 눈빛은 없는 것일까.
배반을 모르고 거짓을 모르고 속임수를 모르고 충실하고 순수하고 무구한 강아지들의 빛나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우물 같은 눈빛을 닮은 ‘사람’이라는 ‘동물’은 세상에는 없는 것일까........
세상의 색은 검은색과 흰색만 존재 할 뿐이다.
그 검은색과 흰색만 보이는 눈빛은 없는 것일까.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여러가지 빛을 내지 않는 눈빛 말이다.
그 눈빛을 보고 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의 이중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나는 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내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항상 푼수처럼 허허거리며 웃는다.
이기기 위한 논쟁도 싫어한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하고 무조건 져준다.
조금 듣기 싫은 말도 농담으로 돌리고 바보처럼 못 알아들은 척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니,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 아니, 무시한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정해두지 않았으므로,
나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내가 정한 선을 벗어나지 않을 때까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무시할 수 있을 때까지.....
모순이다.
기대치를 정해 두지 않았다고 하고, 내가 정한 선을 벗어나지 않을 때까지라니,
하지만 내 자신 자체도 모순 덩어리지 않는가.
그 모순 덩어리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할 때는 나도 나를 제어하지 못한다.
어제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여기 감악산에 와서 만든 소중한 인연 하나를 버렸다.
아니, 무시하지 않고 인연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탈락해 버렸다.

물론 우리는 ‘성숙한 어른’이라는 핑계로 평소처럼 말은 하고 웃겠지.
하지만 그 웃음과 말은, 이미 내 가슴을 떠난 공허한 웃음과 헛된 말 일 것이다.
‘성숙’을 빙자한 가식적인 관계다.
'의미'가 없는 관계다.
그런 관계들이 싫다.
그래서 떠나왔다.
하지만 완전히 떠날 수는 없나보다.
한 발은 세상에 어정쩡하게 걸쳐두고 서투른 곡예를 하며 세상을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슬픈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일 것이다.
잘난 척하는 나의 한계가 겨우 여기까지였나, 하는 절망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괴감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당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인간'이라는 '비늘'을 덮고
'인간'의 형상을 한 '허물'을 쓰고 사는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다가 보고 싶다.
동터오는 새벽의 태양을 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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