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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곳은 중앙박물관의 길목이다.
박물관이 생기기 전에는 지하철역 중 한산한 역으로 꼽혀 역무원들이라면 한 번씩은 근무하고픈 역 중 하나였다. 직장에 대해 애초부터 아무런 희망이 없던 나로서는 이촌역으로 가게 된 것을 월급받으면서 책 읽을 수 있는 귀한 행운으로 여겼다. 그러나 신림역에서 고생고생하다고 온 이촌역에서 좋은 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개관하고서 무료로 입장할 때의 그 난리를 보면서 우리에게 박물관은 너도 가면 나도 가는 하나의 관광코스였다. 어떤 교육적 열망과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너무 추운날에도 유모차에 애들을 중무장시켜 태우고 오는 젊은 엄마들의 극성에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박물관하고는 무엇을 갔다가 들이대더라도 나의 상상력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는, 박물관에서 자동코스처럼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관람객들의 문화적인 취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애용할 정도로 문화적인 코드가 형성된 사람이라면 심정적으로 청계천은 웬지 가고싶지 않고 보고싶지 않는 부수고 건설하는 근대화 지상주의의 유산일 뿐이었던 것이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 그들의 취향이니까.

여하간 나는 그 몹쓸 박물관 가기 경쟁대열의 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여태 가지 않았다. 다만 올해 초 얼 쇼리스 선생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을 듣기 위해 부속건물에 가본적은 있었다. 설사 내가 박물관에 가더라도 유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는 나로서는 따분해서 금새 나왔을 것이다.

요즘은 연일 중 고등학교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학교로서는 아마 입시를 끝낸 아이들에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현장학습일 것이다. 지도교사의 인솔 없이 온 아이들은 흡사 무엇으로 돌변할 지 모를 '군중'일 따름이지, 그들 하나 하나가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교실만 나오면 모든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어떤 기분에 휩쓸려가는 몽매상태의 '개인'이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전에 어떤 교육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데나 휴지며 음료수병을 버리고, 지하철을 이용할 줄도, 줄을 설 줄도 모르고, 자기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을 꼬깃 꼬깃해서 돈을 밀어넣고, 게이트를 훌쩍 훌쩍 뛰어넘는 아이들, 자기가 집에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니 매표창구를 막아서서 "야! 우리가 어디가지?"하면서 친구들과 얘기나누느라 정신파니 금새 대합실은  북새통이 되어버린다.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화장실에 두 셋씩 몰려 들어가 담배들을 피우느라 화장실은 연기로 자욱하고, 물과 휴지들을 아무데나 버리니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들로서는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오는 요즘이 여간 곤역이 아니다. 몇 놈을 잡아다가 역무실에서 담임선생을 부른다. 교장선생에 연락한다. 그들의 잘못에 대해 못 볼 수 없어서 역무원으로서, 아니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종의 '훈육'은 도통 씨가 먹히지 않는다. 거개가 억울하다거나, 자기가 왜 역무실에 와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거나, "졸라 씨바 재수없다"는 것이 아이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우리반 부역장 한마디 "세상에 이렇게 기초도 모르고, 말도 안들으니, 내가 선생이라면 느들 같은 놈들 때문에 복장터져서 실컷 두드려 패고 사표쓰겠다"

우리 조카들의 교과서를 보면 내가 학교다닐 때와 너무도 훌륭한 내용들을 공부하고 있던데, 중학교 교과서에 윤흥길 선생님의 "장마"도 실렸고, 신경림의 시며, 뒤르케임과 베버, 맑스같은 사상가도 교과서로 접하고 세상이 좋은 쪽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민교육과 시민도덕이란 내용도 상당한 분량으로 있었던 것 같았고, 또한 교육방식도 일방적인 암기가 아닌 체험학습과 장기적으로 좋은 시민됨을 목표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교육의 10여년이 지난 오늘 도통 애들은 변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을 위치짓지도 못하고 더 이기적이고 보수화되었으며, 너무도 소비자본주의 심성에 길들여져서 이러다가 우리 사회가 혹시 유사 파시스트 사회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는 한다.

가끔 교사들도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역무실에 오는데, 그들은 교사일 뿐이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참 많다. 적어도 교사는 사회적 의식이나 책임의식은 차치하고라도 역무원이나 일반 노동자들 보다는, 더 엄격한 직업적 소명의식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게 점점 엷어지는 듯하다. 어디 이게 학교만의 책임이랴만 그런 결과가 오늘 이촌역에서 만나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아이들이 한 바탕 지나가고 나면 대합실은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모습이다. 쓰레기와 음료수병으로 나뒹굴고, 역의 시설물 어디가 깨지거나 떨어진다. 엊그제는 아이들이 뒤에서 밀어대는 바람에 매표실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교사라면 컴퓨터 게임과 도시가 주는 안락에 익숙한 아이들을 무턱대고 박물관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박물관에 오려면 어떤 마음의 준비, 아이들의 안목과 의미를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소양교육, 혹은 박물관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교사가 안내할 수 있는 여러 절차와 준비들이 충족되었을 때 보내야 되지 않나 싶다. 그러한 예비 지식이나 교육이 없는 아이들은 아침 아홉시가 되기전 부터 밀려들었다가 박물관으로 우루루 몰려간 지 20분도 채 안되어 다시 역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오늘 하루는 자유인 것이다. "얘들아, 명동으로 갈까? 강남으로 갈까"로 신이 나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지만 분명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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