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야! 이 개 같은 것들아!! 너희들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야 말을 알아듣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지! 허허하면 병신이고 바보인줄 아는 이 사람 볼 줄 모르는 촌무지렁이들아! 내가 촌무지렁이들을 사람취급 해주었더니 어디서 사람 무시하고 난리야!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남자 없이 혼자사니 너도 내가 우습니? 왜 구렁이를 독사로 만들어! 너희같은 남자새끼들 백 명이 줄줄이 덤벼도 나를 이길 수 없고 눈 하나 깜빡 안 해! 그 독종들의 쪽바리 나라에서도 싸우고 이긴 나야!”
“처형! 고정하세요. 저는 처형 무시한 적 없어요.”
“그 주둥이 못 닥쳐! 난, 네가 데리고 사는 그런 기본이 안 된 도둑같은 년을 동생으로 둔적 없어! 주둥이로만 무시 안 한다고 하면 무시를 안 하는 거냐! 너희들이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행동들이 뭐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이 개 쌍 것 같으니! 너희들 지금 당장 기어오지 않으면 내가 집으로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을 줄 알아! 꼭 이렇게 해야만 말을 알아듣는 이 무식한 촌무지렁이들아!”
“알았어요. 애엄마 들어오면 전화 하라고 할게요.”
“애엄마 어디 갔는데?”
“친정 할아버지 제사라고 친정에 갔어요.”
“야! 사람구실을 하면서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는 거야! 이런 식으로 기본도 안 지키고 막 살면서 무슨 복을 달라고 조상에게 빌고 자빠졌어! 기어오면 당장 전화하라고 해! 한 번만 이따위 식으로 사람 무시하면 내가 너희 집 앞에서 할복을 할 거야!!”

아이들은 엄마의 성질이 드디어 터졌구나, 하고 슬슬 내 눈치를 보며 아들은, 하던 컴퓨터를 끄고, 딸은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한다.

내가 이렇게 머리뚜껑이 열리게 화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드문 일이지만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평소에 조용하고 허허 웃으며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날은
잘하면 사건이 터지는 날이다.
나도 정말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고상하게 살도록 놓아두지를 않는다.
꼭 이렇게 무식한 마적단 딸로 나와야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인테리어 부부집의 인연은 내가 여기 감악산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평소에 쌀쌀맞고 차가운 내 인상 덕분에 나는 어디를 가나 처음에는 늘 경계를 받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도 새 학기가 시작되어 내 짝이 바뀌면, 짝은 지우개를 빌려도 짝인 나에게 빌려달라고 하지 않고 건너편 모르는 아이에게 지우개를 빌리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나를 알게 되면 “명아야, 나는 네가 이렇게 재밌고 마음이 넓은
아이인 줄 몰랐어. 나는 네가 처음에 되게 도도하고 깍쟁이고 건방진 아이인 줄 알았어.” 그렇게 고백하며 마음을 터놓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김새에 대해 강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있다.
어디 곳, 어느 장소를 가나  그런 소리를 듣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 태어 난 것을 어쩌랴.
그렇다고 차갑게 보이지 않기 위해 바보처럼 항상 입을 헤 벌리고 웃고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이렇게 수다스럽고 말이 많아 진 것은 어쩌면 나의 그런 인상을 지우기 위해
애쓴 덕분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화나 난 줄 알고 슬금슬금 나를 피하니 내가 어찌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모이면 말을 해야 된다는 강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 그때서야 사람들이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화기애애해 진다.
덕분에 사람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피곤에 곤죽이 되어 그대로 쓰러진다.
그래서 사람만 있으면 으레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이제 성격이 되고 버릇이 되었다.
내가 말을 하고 입을 열어야 “나는 처음에 되게 무섭고 쌀쌀맞게 봐서 말도 시키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재밌고 인간적인 사람이네.” 하는 것이다.
이러니 내가 어찌 입을 닫고 있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 내가 감악산에 들어 왔을 때 도도하고 건방진 여자가 들어 왔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상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도도한 적이 없다. 그냥 평범하게 내 할 일하며 다녔을 뿐이다.
도도한 척 할 데가 없어 이 산속까지 와서 내가 도도한 척하겠는가.
하지만 한 해 두해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그들과 안면을 트고 말을 하고 지내기 시작하자 그들이 서로 지켜야 할 ‘기본선’을 마구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일례로 우리 집 밑에 살고 있는 이장 부인은,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나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연락도 없이 불쑥 쳐들어온다.
“내가 와 주지 않으면 누가 찾아오겠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해!”
그러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쳐들어오는 데는 환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쓸쓸한 것은 이장부인인 것 같았다.
심지어는 너무 귀찮아 이불을 들러쓰고 누워 문을 안 열어주기도 하다, 어쩔 때는
할 수 없이 아파 누워있었다며 문을 열어주면 "그래! 많이 아퍼?"하고 나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쳐들어와서 둘이 마주 앉아도 할 얘기도 없고, 대화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장 부인은 나를 붙잡고 동네 사람들 흉을 보기 시작하는데 나는 정말 취미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고 미칠 노릇이다.
‘이 시간에 내가 이 사람 흉보는 얘기를 들어줘야 하나, 생각하면 골이 아파진다.
감방에 들어가면 심심하고 할일 없는 여자들이 어느 한 사람이 면회를 와서 불려 나가면  무료한 여자들은 심심한데 잘 됐다, 는 식으로 면회를 와서 호출당한 여자의 흉들을 입에 침을 튀겨가며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 여자가 면회를 마치고 들어오고, 다른 여자가 면회의 호출을 당해 나가면 이번에는 면회를 마치고 들어 온 여자까지 합세하여 이 번에 면회를 나간 여자의 흉들을 보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온 감방에 여자들이 돌아가며 흉을 보고 자신들도 도마위에 올려진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흉을 잡힐 것이 일도 아닌, 말도 되지 않는 웃기고 소소한 일들로 열을 올려가며 상대방을 죽일 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들으면 입에 개거품을 물고 쓰러질 말들을 태연스럽게 앉아서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흉들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그들을 보고 나는 진저리를 친 기억이 있어서 누구의 흉을 보면 나는 기분이 나빠지고 안 좋은 기억부터 떠오르는 것이다.

흉도 같이 맞장구를 쳐야 흥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시시한 법이다. 맞장구를 치지 않는 나를 상대로 한참 동네 사람들 흉을 보다 제풀에 꺽여 돌아가기를 몇 번 한 다음부터는 이장부인이 나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나를 찾아봐야 별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동네사람들 상대 안하고 홀로 독불장군으로 산다는 소리를 들어, 어느 날은 마음먹고 마을 회의에 참석을 했다.
가보니 회의가 아니라 그건 회의를 빙자한 술좌석이었다.
바로 나오면 또 무슨 뒷소리들을 들을 줄 몰라 이왕 간 김에 자리에 앉아 잠자코 꼬락서니들을 보려고 앉아 있으려니 아래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며 내 옆에 앉는 것이었다.
평소에 제대로 안면도 없던 이 할아버지(요새는 세상이 좋아 70이 가까운 할아버지라도 겉보기에는 청년처럼 피둥피둥하다)가 내 옆에 앉아, 술을 한잔 두잔 들이키더니
“나는 재홍이 엄마가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 줄 몰랐어.”하며 그 불결한 ‘더듬이표’ ‘파리채’로 이 늙은 여자의 얼굴을 귀엽다고 마구 쓰다듬는 것이었다.
“웩!!”
구토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앉아 화를 낼 수도 없고, 나이들은 사람에게 무어라 할 수도 없고, 이건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더 가관은 거기에 모인 50대 아줌마 아저씨,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미 그런 습관에 익숙한지 서로 그런 농지거리들을 쏟아내며 서로 친밀하게 쓰다듬으며 명목상 마을 회의를 즐기고 있었다.
‘이것이 시골문화구나. 이런 문화에 어울리지 않아서 욕을 먹는 거구나.’나는 그 때 깨달았다.
겨우 아이들 올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 지옥을 빠져 나오 듯 황급히 도망치다 시피 빠져나왔던 후로, 독불 장군이 아니라 더 심한 욕을 먹어도 절대로 두 번 다시는 마을 사람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중에 인테리어 부부는 책도 읽으려고 하고 제 딴에는 의식있게 산다고 자부하고 또 그렇게 노력하고 사는 사람들이라 나는 시골에서 그렇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이 기특하고 가상해 동네에서 그 부부만 안면을 두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인테리어 부인이 나를 ‘언니’라고 불러 그 남편은 나를 ‘처형’이라 부르고 지냈다.
딸이 쓰고 있는 작업실이 장마가 끝나자 곰팡이가 피어올라, 인테리어 집에 도배를 부탁한 지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딸이 춘천에서 학교를 다녀 급히 도배를 재촉할 필요를 못 느껴 ‘그럼 다른 급한 집일들 다 해주고 내 일은 천천히 하라”고 편리를 봐 주었다.
집을 고치고 손을 보는 모든 일들을 일부러 그 부부들에게 맡기며 나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부부를 내 딴에는 도와주고자 애썼다.

“난 이 집의 문턱이 정말 높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렇게 좋은 분인 줄 몰랐어요.”
인테리어 남편은 그런 말로 슬쩍슬쩍 나를 치며 우리는 정말 좋은 이웃이 되고 있었다.
집의 페인트색을 다른 색을 칠해 놓아도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하며 돌려버렸고,
벽지를 내가 고른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발라 놓아도 ‘그래, 이 벽지가 가게에 남아 돌았나보다.’하고 이해했고, 도배를 엉망으로 해 놓아 벽지가 다 갈라져도‘ 먹고 살기 위해서 바빴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내 성격에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불벼락이 떨어 졌을 터지만, 한 번 좋게 보기로 한 사람들이고, 몸으로 노동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이라 나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약속한 날짜를 6개월이나 넘겨 집으로 돌아 온 나의 딸의 짐을 집에 들여놓지 못해도 나는 최대한 이해하고 ‘살기위해 그러려니....’나라도 이해해 주자, 하고 참았다.
그렇게 참고 있으니 사람을 점점 바보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 부부도 어느새 야금야금 서로 지켜 야 할 ‘기본선’을 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 부인이 전화를 걸어 “언니, 어제 산 그 등산복, 앞 집 슈퍼의 00엄마가
동두천까지 나갈 시간이 없어,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들면 그 때 나가 산다고 좀 보여
달라고 하는데....”
‘디자인을 보러 갈 시간은 없고, 사러 나갈 시간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란 것을 알았으나, 잠자코 나의 등산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더니 그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 00엄마가 한 번만 입으면 된다고 그 등산복 하루만 빌려 입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그렇게 얍싹하게 머리를 쓰니? 남이 처음사서 입지도 않은 옷을 빌려 달라는 것이 말이 돼? 그리고 땀투성이가 될 옷을 어떻게 빌려 입을 생각을 하니? 아예 줄게. 그냥 가져.”
‘헉! 바보같은 이 언니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상대방은 놀랐는지 수화기가 잠잠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한참 후에 모기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로 조심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을 가장 경멸한다.
아니,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욱! 하는 성격과 약속과 책임에 단호한 것이 나의 단점인 줄을 알지만, 욱! 하는 성격도 서로 지켜야 할 한계선인 ‘기본선’만 지켜주면 나오지 않는 성격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과 약속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기본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단점이라도 나는 그것을 고칠 생각도 없고, 고쳐지지도 않는다.
나는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도배를 하러 온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부지기수고, 도배하러 떠났다고 말해, 자고 있는 딸을 두들겨 깨워 짐을 다 옮겨 놓고, 떠났으니 곧 도착하겠지, 하며 남을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해 놓고 전화 한 통 없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러고서도 얼렁둥땅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일이 셀 수가 없었다.
이 때부터 ‘어디 꼴들을 보자’ 하며 나는 슬슬 벼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몇 일전에는 딸을 데리고 교수를 만나러 춘천을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언니, 나 언니에게 부탁 할 일이 있는데, 실은 00아빠와 함께 일을 다니는 사람이 300만원을 꿨는데 한 달에 이자를 45만원씩 내고 있대, 그렇게 노동으로 버는 속 아픈 돈을 가지고 45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는 것이 안 되어서, 우리가 꿔 주려고 하는데, 우리 돈은 일주일 후에나 나와, 그러서 언니에게 일주일만 돈을 빌리려고 하는데 될 수 있을까?”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지만, 나는 돈거래는 안한다. 차라리 주면 주었지. 돈 잃고 사람 잃는 것이 돈이니, 그리고 꿔 줄만한 돈도 없고.”
“언니, 나를 믿고 일주일만 융통해주면 안 될까?”
‘너야 믿지만, 그러다 혹 네가 그 사람에게 받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래?”
“언니, 믿을 만한 사람이야. 그리고 00아빠와 함께 일을 하니 못 받으면 인권비에서 제하면 돼. 함께 일을 해서 안 해 줄 수도 없고 사정이 딱해서 그래.”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평소에 그렇게 착해서 남의 사정을 봐주는 여자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갑자기 ‘천사들의 집합’이 되어버린 그 여자에게 무슨 사업상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의 신용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데, 어디 이 번 기회에 한 번 너의 인간성과 정확성을 보자, 하는 심산이 되었다.
“자동차의 번호판 달 돈은 있는데, 지금 내가 달고 있는 임시번호판은 일주일이 기한이라, 일주일안에는 꼭 해주어야 해.”
“언니, 염려 마. 일주일 안에는 나올 거야, 나를 믿어 줘.”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해서 돈을 부쳐주고 나온 다는 돈은 나오지 않고 일주일이 지났다.
“처형, 애기 엄마가 친정의 땅이 수용되는 바람에 자기 몫으로 친정에서 어제 2억을 받았어요. 그런데 애기 엄마가 아무에게도 말 하지 말라고 했으니 모른 척 하세요.”
인테리어 남자는 자랑삼아 나에게 말을 했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보다 단순하다.
그렇게 돈이 들어 왔는데도 300만원을 안 갚았단 말이지, 어디 두고 보자.

“00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번호판을 달아야 하는데, 오늘까지는 돈을 해 주어야 해.
안 그러면 내일부터 기한이 지난 저 임시번호 판 달고 차를 몰고 다닐 수 없어, 아이들 학교도 못 데려다 주고, 나 여기서 고립된다.”
“네, 언니. 알았어요. 내가 이따 전화 드릴게요.”
그렇게 오전에 통화를 하고 밤 10시가 된 것이다.
돈이 없으면 내가 말을 안 한다.
2억이 들어 온 것을 알고 있는데 돈 300을 안 갚는다는 것은 갚을 마음이 없는 도둑년 심뽀 아닌가.
딱 걸렸다.
어디 마적단 딸에게 한 번 당해봐라.

“뭐 늦은 밤! 이 개같은 것들아! 내숭 좀 그만 떨어! 너희같은 고상한 것들은 지금이 늦은 밤인 줄 몰라도 나 같은 마적단 딸은 지금이 활동시간이다! 이렇게 늦은 밤에 활동하게 해 주어서 아주 고맙다! 이렇게 늦은 밤에 왜 이런 전화를 하게 만드니! 내가 너희같은 촌무지랭이들을 사람취급 한 것이 잘못이다! 그 도둑년 바꿔! 내가 돈이 없으면 말을 안 해! 2억을 받아 놓고 약속한 300만원 돈을 안 갚아! 이 도둑들아! 너희들 돈은 아깝고 내 돈은 한강에서 퍼온 돈 인 줄 알아! 내 돈 안 갚으면 내가 지금부터 너의 집 방에 가서 누울거야! 그렇게 해도 안 되면 너의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할복해서 신문에 낼 줄 알아!"
“처형! 제발 애 엄마에게 내가 친정에서 돈 받았다는 말을 했다는 소리는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정말 저는 처형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애기 엄마에게 내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전, 그러면 쫓겨나요. 제가 책임지고 내일까지 처형 돈은 갚도록 할게요.”
“이 바보 같은 놈아, 잘났다! 알았으니 어서 네가 데리고 살고 있는 그 도둑년한테 전화 빨리 하라고 해!”
"네, 제가 빨리 오라고 전화 했으니 올 거에요."
처음에 내가 전화를 거니 "이 늦은 밤에 왠 일이세요?"하고 아주 시간을 앞세워 짐짓 일침을 놓으며 예의를 따져 고상을 떨던 놈이 내가 고함을 지르자 꼬리에 불이 붙은 듯 허둥거렸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 듣는 모양이구나. 내가 이러기 전에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전화가 득달같이 왔다.
“언니, 미안해요.”
이미 고함은 인테리어집 남편에게 다 질러서 목도 아프고, 더 이상 고함을 지를 힘이 없었다.
“전화 한 번 빨리 거는구나! 오늘 전화 한다며 지금 한 시간만 지나면 내일이 된다!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말은 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전화를 하겠다고 했으면, 살아서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전화라고 해 주고, 죽은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가도, 가야 하지 않겠니?”
“죄송해요, 언니, 나는 또 약속을 어긴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전화를 못했어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하는 일이니 틀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약속대로 된다, 안 된다, 전화는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니?”
“죄송해요.”
“언제까지 해 줄 거야?”
“내일까지요.”
“내일, 몇 시?”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해 드릴게요.”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너무 흥분해 거실 창문을 닫는 것도 잊고 한참 때 구호 외치던 실력으로 한 밤중에 산이 쩌렁쩌렁 울리게 인테리어 남편에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아래집에 애기 아토피 피부병 때문에 지난 여름부터 주말마다 와서 요양 중이던 애기 엄마가 놀라 달려왔다.
고요한 밤이라 소리가 더 크게 들렸을 것이다.
"아니야, 놀랬구나. 나 때문에 잠 깬거야? 미안해,00엄마."
"아니요, 00아빠가 뭐 사러 잠깐 아래 내려간다고 갔는데 아직 안 와서
나왔다가 선생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올라왔어요.
제 정신이 들자 300만원에 할복까지 하겠다고 방방 떴던 이성을 잃은 내가 부끄러웠다. 만일 할복을 한다면 머리 꼬리 다 잘려나가 단지 돈 300에 새끼들 놓아두고 할복한 나는 미친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직하고 순진하게 덤비지 말고 판을 잘 읽고 적당히 교묘하게 머리를 굴려야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응, 심심해서 발성연습 좀 했어. 놀래켜서 미안해."
"아니에요....."
아래집 애기 엄마는 드닷없이 한 밤중에 갑자기 무슨 발성연습인가, 하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돌아갔다.

그렇게 무식하게 막가파 식으로 화를 내고, 마적단 딸로 나가니 약속대로 돈이 들어왔다.
세상이 이렇게 나를 이렇게 마적단 딸로 살기를 원하는데, 내가 어떻게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띠르릉~
“여보세요”
“무슨 운전을 그렇게 하고 다녀요. 그러니 사고가 나지요.”
“누구세요?”
“나 소장이에요.”
“아~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더니, 차 사고가 나서 짭새라도 약으로 좀 쓸까, 하고 찾았더니 없던 그 짭새!”
“뭐요? 어제 2시경에 상수 사거리 나갔어요? 안 나갔어요?”
“나갔지요.”
“그런데, 무슨 운전을 그렇게 급하게 해요. 운전 조작도 미숙하고, 게다가 운전하면서 핸드폰까지하고. 내가 스티커 한 장 날리려다 말았네.”
“꼴값을 떨어요! 그 것도 권력이라고 시골 파출소 소장 주제에 스티커 운운은....하긴 날릴 권력이 스티커 밖에 없겠지.”
"뭐요? 내가 정말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내가 운전하는 것은 어떻게 봤어요?”
“그 날, 내가 뒤에 따라가며 보니, 옆에 덤프차가 끼어드니까, 내 차 선으로 들어오려고 하기에 내가 빵~했잖아요.”
“스토커처럼 남의 뒤는 왜 따라 다니슈! 근무나 잘 할 것이지! 아~ 어제, 내 뒤를 줄줄 따라오던 그 썩어무레한 고물차가 소장님 차였수? 운전은 인격이라고, 역시 운전을 해도 짭새티를 내고 다니는 구먼.”
“뭐요? 박명아씨야말로 운전하는 것을 보니 사고 나게 운전하더만,”
“옆에 덤프차가 끼어들며 앞에 오는 차를 위협하면 다른 차선에서 뒤에 따라 오던 차는 속력을 늦추어 주며 자기 차선으로 피하라는 것이 예의지, 덤프차를 피해 옆 차선으로 들어가려 하니 뒤에 따라오다 더 속력을 내고 자기 차선으로 끼어들지 말라고 빵~하고 크락션을 울려요? 누가 짭새 아니랄까봐, 아주 야비한 티를 줄줄 내고 다녀요.”
“허허, 참, 내가 다른 사람 버릇은 다 고쳐놓았는데, 박명아씨는 못 고치겠어. 그건 그렇고, 새해 아침에는 뭐 할 거요. 해 맞으러 감악산이나 올라갑시다.”
“꿈도 야무져! 감악산은 개나 소나 다 올라가는 곳인 줄 아세요? 그리고 내가 미쳤다고 새해 아침부터 재수 없는 짭새와 해맞이를 해요? 일년 내내 재수 없으라고? 헛튼 생각하지 말고 늙어서 마누라한테 쫒겨나지 않으려면 마누라나  잘 모시고 살아요.”
“아~ 쫒겨 나면 박 명아씨 사는 곳에다 콘테이너 하나 갖다 두고 살면 되지요.”
“주둥이는 살아서 말은 잘해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쫒겨난 사람들이 사는 폐품처리장인 줄 아세요? 쓸데없는 말 말고 상부에 민원 넣기 전에 제 때에 정년퇴직 하려면 행동 조심해요. 늦둥이도 있으면서. 그 아이 키울 때까지는 그 자리 보존해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소문이 자자하던데.”
“주둥이가 뭡니까. 좀 올려주시지. 오빠뻘 되는 사람에게, 그러고 무슨 소문?”
“난 짭새오빠 둔 적 없어요! 소장님이 참 좋은 짭새라는 소문이요.”
“아~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줘요.”
“아 됐어요! 뒤는 구린지, 소문에는 민감하네. 그러니 평소에 청렴결백하게 살지, 그건 그렇고, 근무 시간에 이렇게 쓸데없는 전화 하는 것도 민중의 지팡이로서 하고 있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오늘 쉬는 날이라 장 집사님 댁에 있어요.”
“굼벵이도 기는 재주는 있다고, 장집사님 아들, 취직에 힘써 주었으면 그걸로 깨끗하게 끝내지, 주야장창 왜, 장집사님 댁에 늘러 붙어 살아요? 누가 짭새 아니랄까봐 저렇게 꼭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고 짭새티를 내요.”
“내가 점심 사러 나왔어요!”
“그래요? 그럼 점심 맛있게 드시고 장집사님 부부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점심 먹게 나와요.”
“다이어트 중입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이번에 땅을 사온 사람이 길을 내는 것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래 호숫가에 이번에 조립주택을 짓고 들어와 살고 있는, 전에 우리 땅을 산다고 한참 보고 다녔던 적이 있는, 61학번이라며 번번이 시골동네에서 학번을 내세우며 배운티를 팍팍 내는 다니는 재수 없는 사람과 맞닥뜨렸다.
“아~ 이 땅을 왜 팔았어?”
자신이 61학번이라고 말한 다음부터 무조건 반말이다.
“먹고 살 것이 없으니 팔았지요.”
“지금은 땅을 팔 때가 아닌데, 땅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서운하고 가슴이 아프더라구!”
“그래요? 그렇게 가슴이 아프셨어요? 그러시면 저에게 먹고 살 생활비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땅을 안 팔았을 턴데요.”
“잉???”
나의 말에, ‘미쳤구나, 내가 왜 너에게 생활비를 주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표정이 딱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이다. 남이 땅을 파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프니?’ 하는 표정으로 나는 그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에도 물었지만, 몇 학번이시오?”
갑자기 존댓말을 썼다.
“학번이요? 저 같은 촌무지렁이는 ‘학’자만 나오면 ‘악’소리가 나오는 무식꾼입니다.
저 같이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문교부 혜택을 받았겠어요?”
“에이, 겸손은, 문교부를 아는 것 보니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땅을 팔고나서 남자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다시 반말이다.
“그래요? 과부가 그럼, 남자와 점심을 먹지, 영양가 없는 여자와 먹나요? 누구와 점심을 먹었는지는 하도 남자들이 많아서 저도 기억이 안 나네요.”
“허허허.......”
더 이상 대꾸 할 말이 떨어진 호숫가 왕파리 학번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젠장, 너희 파리들이 나를 가지고 놀라고? 시골 노인네들은 차라리 순박, 단순, 무식하게 ‘더듬이표’ ‘파리채’로 용감하게 나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 넘어가지만, 너희들처럼 학번을 내세우는 교묘하고 교활한 파리들은 절대로 용서 할 수가 없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705 게시판을 시끄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8 신복희 2006.12.26
1704 정양덕님, 박윤숙님~~~ 2 신복희 2006.12.26
1703 바다가 보고싶다, 동터오는 새벽의 태양을 보고 싶다 9 박 명아 2006.12.27
1702 선생님 작품구입요령 박명광 2006.12.27
1701 아이들 박물관 보내기 대회 장경태 2006.12.27
1700 이곳은 www.shinyoungbok.pe.kr 입니다 18 안영범 2006.12.28
» 내가 버릴 수 밖에 없는 인연들 9 박 명아 2006.12.28
1698 지나는 길에 10 상록수 2006.12.28
1697 내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류지형 2006.12.28
1696 '온라인'상의 '네티즌'들이란? 2 김동영 2006.12.29
1695 지리산 천왕봉 해넘이 1 김세호 2006.12.29
1694 한 번만 더 올립니다 2 신복희 2006.12.29
1693 영원한 외사랑 2 박 명아 2006.12.31
1692 나무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박 명아 2006.12.31
1691 신년 해맞이 8 박 명아 2007.01.01
1690 흙이 된 할머니 박 명아 2007.01.02
168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김정아 2007.01.02
1688 전주에서..전합니다. 2 김성숙 2007.01.02
1687 가을비-신복희 1 양해영 2007.01.02
1686 숲, 친구, 광장 2 남우 2007.01.02
Board Pagination ‹ Prev 1 ...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