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종이에 싸주었던 밥 한 덩이

by 박 명아 posted Jan 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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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위에 놓여있는 시간이 멈춰버린 시계에 신경이 쓰인다. 43년이라는 긴 세월을 묶여 계셔야만 했던 선생님께 과연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7시 4분 40초에 멈춰버린 시계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만물이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건, 정해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57년 중반까지만 해도 밥 등수가 다섯 가지로 한정되어 있었어요. 우리가 먹었던 5등식은 그중 가장 낮은 등수의 밥이었지요. 그 5등식 밥이라는 게 딱 4젓가락, 입이 큰 사람이라면 2젓가락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형무소 의무과장이 하는 말이 밖에서 영양상태가 충분한 사람이 들어와서 1년 6개월만 5등식을 먹게 되면 몸에 축적되어 있던 모든 영양분을 깍아 먹고, 결국에는 영양부족으로 죽게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에요.
우리야 주는 것만 먹고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일반 범죄자들은 운동 갔다가 들어오다가 어쩌다 배식하는 사람과 부딪히게 되면, 두들겨 맞아 가면서도 그 밥에 달려들어서 막 먹는 거예요. 맞아 가면서도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모습이 어떻겠어요. 형무소에 들어온 어떤 군인은 형무소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이런 글을 실었어요. ‘천하일미 5등식’이라고 밥맛이 없다 적다, 하는 건 배가 부를 때 하는 소리이고 워낙 배가 고플 때는, 그 이상 맛이 있는 건 없을 거예요. 서양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지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 맛을 모른다.”고 그게 사실이더라고요. 그 때 육군 형무소의 5등식은 훨씬 양이 적었습니다. 그건 한 입에 털어 넣으면 다 들어가요. 만복감이라도 느껴보려고 물이라도 먹으면 대번에 다 쏟아버려요. 나중에는 밥을 밥인지 뭔지 모르고 먹는 거예요. 그렇게 일년 반을 그 밥을 먹고, 대구 민간형무소에서 5등식을 봤어요. 처음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거예요. 민간 형무소 5등식이 내가 앞에서 말한 그 5등식인데도,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다 먹나, 싶은 거예요.
그러다 57년 5월경에는 단식을 했어요. 우리 방에서 선동을 해서 367명이 단식에 들어갔는데, 물도 먹지 않는 아주 고된 단식이었어요. 이번 단식에서 최하 두 사람이 죽어야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진데 누가 죽어서 뭔가 바뀔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자, 하는 거였지요. 그 단식의 결과로 5등식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의식주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식의주가 돼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옷은 벗어도 살 수 있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잖아요. 이렇게 밥의 중요성은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그냥 하루 이틀 굶어보는 걸로는 그 고통을 모를 겁니다.
그 때는 정말 배가 고파서 환장 할 지경이었어요. 한번은 어떤 친구가 밥이 조금 더 왔다고 그 밥을 나눠서 몰래 종이에 싸서 던져주는 거예요. 그 종이까지 먹었어요. 종이에 쌌으니까, 그 종이에 밥풀이 묻어 있었거든요. 70년대에 나 같은 사람은 전혀 외부 공급이 없어서 그 안에 것만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때 간혹 집과 연락이 되는 동지들은 빵 같은 것이 생기면, 자기가 안 먹고 몰래 넣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아까워서 그 즉시 못 먹고, 창틀을 따면 빈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에 빵을 감춰놓고 정 못 견딜 때 그걸 꺼내서 한 입씩 먹곤 했어요. 사람이 만복감을 느끼기 전에 포기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다음을 생각해서 싸서 넣어두는 거예요. 그렇게 아끼다 보니 곰팡이가 났더라구요. 그게 많아서 곰팡이가 났겠어요. 그 빵을 준 동지의 동지애, 성의, 그런 걸 한꺼번에 먹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리고 사람이 영양부족으로 죽을 때에는 참 우습게 죽습니다. 그전에 밥그릇도 없고 할 때 종이에다 밥을 받아먹었는데, 그 밥을 먹다가 촛불 꺼지듯 픽 꺼지는 거예요.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사람이 남긴 그 밥을 먹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요.

선생님은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강철 같은 이념을 가지고 43년을 묶여서 사신 선생님께서도 ‘밥’이란 그렇게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 존재인가보다. 멈춰버린 시계를 애써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는 내 발등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어는 선배 한 분이 나는 늙었으니까, 하면서 그 밥을 꼭 반씩 덜어서 골고루 나눠 주시는 거예요. 사실 양심 같아서는 선배님의 피를 먹는 건데도 그게 그렇게 맛이 있더라구요. 일반 범죄자가 밥 먹다 쓰러진 사람의 입에 밥을 꺼내 먹는 걸 보기도 했지요. 그걸 보지 못한 사람은 지금 이 이야기가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지금 아프리카 아이들이 못 먹어서 다리가 꼬인 걸 봅니다. 어른이 못 먹어서 다리가 꼬인 걸 보면, 정말 아이들 모습 그 이상입니다. 내 중학교 선배 양기성이라고 남(南)으로 나올 때 잡혀서 사형을 선고 받았어요. 그 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는데,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아요.
“남아로 태어나서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싸우다가 어떻게 죽건 상관은 없는데, 기왕 죽을 바에야 배나 한번 불러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하고 갔습니다.
‘밥’이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도 그렇게 배부르게 먹어보고 싶은, 그런 존재입니다.

가겠다고 일어서는데 선생님은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약속이 없는데도 굳이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계단을 내려온다.
사실 나는 선생님과 상을 마주하고 밥을 먹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뜨거운 밥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내 가방 속에는 선생님이 주신 멈춰버린 시계가 들어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건전지를 사서 넣어야겠다. 어둠을 몰고 오는 겨울바람은 아주 차가웠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안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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