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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1.14 08:53

우리식 감성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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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눈물의 신파극을 누가 더 잘하느냐? 이것이 메이저 정당들의 마지막 구급 처방인 모양이다.
감성의 진수인 눈물이 저급한 우민정치의 재료로 남용되는 이 엽기적인 봄날, 우리는 쓰레기 냄새도 메탄가스도 냄새도 없는 섬진강가에 가서 실컷 놀았다. 염소가 풀을 뜯고 아낙들은 다슬기를 줍는다. 반 년 만에 만난 ‘일과 시’ 동인들은 도시살이의 시름을 던져놓고, 삼겹살을 굽고 매운탕을 끓였다. 싱그러운 공기를 가르며 아이들이 풀밭을 달리고 강물에 발을 담갔다. 쉰 줄을 바라보는 열 명 남짓한, 노동이 본업인 시인들은 벗들의 세어가는 머리카락에 안쓰러워하면서도, 아비의 키만큼 자란 자식들의 어깨를 보며 행복해했다. 내일이면 다시 30년 동안 반복된 삶인 철근을 지고, 광고판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고, 스패너를 돌려야 하는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김용만 시인의 어머님은 손수 담근 매실주와 땅두릅, 머위무침을 내오시며, “몇 번을 찍으야 쓰겄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열두 달 타령’을 불러드렸다. 30년 객지살이 용만이 형은 본업이 광고판을 만들고 붙이는 일이다. 때가 때인지라 유세차량 열 대를 혼자 만들었다고 했다. 자갈치 시장에서 20만 원어치의 회를 떠와서 30명을 배불리고는 모아주겠다는 돈을 끝내 거절했다. 나는 그의 굵고 뭉툭한 손마디를 기억한다. 그가 아프게 던진 한마디의 말을 기억한다. “야 이게 사람 손이것냐?” 이 맑은 섬진강도 가난하고 아프게 흘렀던 것이다.
송경동 시인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작가들의 선언을 발고 뛰며 조직한 숨은 일꾼이다. 형은 10여년 훨씬 넘는 세월 누구도 쉬이 맡지 않는 전업 문예활동가로 살았다. 공사판 일당 3천원 시절,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에이치빔에서 떨어져 저승객이 되어서야 제 몸값이 1억원임을 확인했을 때, 그는 다짐했단다. 1초에 1억 정도는 우습게 벌 수 있는 지본주의쯤은 우습게 여기기로, 힘닿는 날까지, 돈 안 되는 일만 골라 해보기로.
58년 개띠인 서정흥 시인은 공장에 다니는 아내가 잔업 마치고 늦게 들어오면 이불을 따로 따로 펴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라는데, 고단한 몸, 잠이라도 편히 주무시라는 가난한 이들의 사랑법이 눈물겹다.
철도노동자인 김명환 시인은 20년 동안 선전지 만드는 일을 했다. 이곳 저곳서 장시간 노동을 마치고 다시 활자와 싸우는 자판노동은 그의 시력을 돋보기 없이 책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그는 늘 이상주의자로 남아 자신의 길을 걸었다.
‘슬펐다/ 변해가는 내가 슬펐지만/ 변하지 않는 나도 슬펐다.’ 기획된 눈물이 남용되는 머저리 같은 시절, 그는 눈을 망쳤으되 눈물의 집인 ‘눈’의 진정성을 온힘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아내는 농사를 짓고, 자신은 농공단지 도장분사작업을 다니는 오도엽 시인은 퇴근하면 저녁밥 먹고, 불 켜고 밭농사 짓는 삼매경에 홀딱 빠졌다며, 그 겹노동이 외려 육체적 고통을 치유한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하룻밤 새 무려 다섯 편의 시를 창작해 와서는 열정적으로 시를 읊었다.
철근쟁이 김해화 시인과 노가다판 30년의 김기홍 시인, 십수 년 전 동인 모임을 만들 때도, 날일로 하루를 연명하는 삶이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당신들은 20년 동안 삶도 글도 변한 게 없느냐?”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우리  같은 시인도 몇몇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응수하는 사람들이,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형식까지 제자리일 수 없다. 해화 형은 급격히 변해온 세월을 따라잡고, 그 세월을 이끌고 있다. 고단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편지(인터넷 카페)’를 보낸다. 그는 모임 좌중에도 사진기를 둘러멘 채 아이들 사이사이를 지나치며 숨은 꽃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평균 수면시간이 3시간인 형은, 어떤 날은 30톤의 철근을 어깨로 버텨 옮기기도 했다니, 그 세월이 30년이라니.
그랬다. 우리들은 강가에서 그런 얘기를 했고 그런 시나 써서 돌려 읽었다. 기획된 눈물의 신파극도 아니고, 유령을 부르는 굿도 아니었다. 가끔 행복하고 자주 암담했던 나날에서, 자주 행복하고 가끔 우울한 대대를 부르기 위해 그 강에 잠시 모였다. 행복해지기를 유보하라는 협박범들을 씹으며 술잔을 채웠다.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지만 일부러 가진 티를 내며, “돈 안 모자라나? 내 돈 많다.”며 지갑을 흔들었다. 눈물겨운 인생이었으나, 강가를 달리는 소년으로 돌아가 까르르 웃어대며 입 조심할 것도 없이, 원 없이 떠들며 봄 볕에 얼굴을 태웠다. 감성조작이 난무하는 이 청맹과니의 봄날, 이게 우리식 감성인생이다.


                    -열린 창으로 바라본 다양한 삶의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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