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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곳은 ‘가라니’라는 곳이다. 산 속에 가라앉아 있어서 ‘가라니’라하고, 동네가 가난해서 ‘가라니’라고 했다고도 한다.
밭에 가면 주인 없는 지게, 여자들은 주막에서 술 푸는 남편을 원망하며 메마른 땅에 호미질을 하며 먼지를 삼켰다. 저녁은 아버지들이 빈 지게를 지고 갈지자로 걸어오면서 부르는 노래 소리와 함께 왔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풀을 베어다 소를 먹이는 일은 우리들 몫이었다.
보릿고개가 되면 어머니가 밀가루 한 포대와 칼국수 한 포대를 사오셨다. 칼국수를 먹다 싫증이 나면 수제비를 해 먹고 수제비가 싫증이 나면 다시 칼국수를 해 먹었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개떡을 쪄서 먹었다. 간혹 우리 집에 와서 저견을 먹는 아이들은 밀가루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추수가 끝나면 동네사람들은 가을 떡을 해서 돌렸지만 우리는 가을 떡을 하지 않고 늘 얻어만 먹었다. 큰집에서는 늘 고구마 한 포대로 우리 집 곳간을 채워 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의 일은 잊지 못한다. 당시 교과서를 무상에서 유상으로 전환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행히 극빈자에 한하여 무상으로 책을 지급하려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들을 각 동네별로 나누어 세워 차례로 교탁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우리 동네 차례가 되어 아이들 다섯 명과 함께 교탁에 서자 선생님은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 했듯, 너희 동네에서 가장 못사는 아이를 찍으라고 했다. 이웃집에 사는 기종이가 나를 찍으며 우리 집이 가장 못 산다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은 그렇게 선정된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부모님 도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리 하고도 2Km를 더 가야했다. 왕복 30리, 가파른 고개도 넘어야 했다. 도장을 가지러 달려가는 나를 수업을 빼먹고 도망가는 줄 알고 불러 세우던 사람들, 난 그분들에게 울먹이며 선생님이 부모님 도장을 가지고 오면 책을 그냥 준다기에 도장을 가지러 간다고 했다.
그때 교탁에 서면서 처음으로 가난이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것을 알았다. 왜 우리 집이 보릿고개 내내 밀가루를 먹고, 가을 떡을 안 하고, 고구마가 빈 곳간을 채우는지를 알았다.

나는 자연스레 노동자가 되었다. 지금은 철도노동자다.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해고된 지도 벌써 2년여가 되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다시는 그런 교탁에 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위해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열린 창으로 본 다양한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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