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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1.20 11:48

새벽은 아직도 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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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우리 집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화장실도 부엌도....모든 집에 전부.....
기온이 내려 갈 때 물을 조금 틀어 놓아야 하는데
기억력 좋은 내가 그만 깜빡 잊은 것이다.
아니면 열선을 감아 놓은 스위치를 꽂아야 하는데
여름에 전기 값 절약한다고 빼놓았다가 치매끼 있는 이 미친인간이
그만 깜빡 한 것이다.
그러니 그냥 평소 때처럼 살아야지 좀 잘해보겠다고 안 하던 짓하면 꼭 사단이 난다.
어쩔 수 없이 물이 나오는 100미터 정도가 떨어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아랫집을
청소해야만 했다.
청소한 세 식구 중, 아들을 빼고 딸과 나는 병이 단단히 났다.
“무슨 청소를 어떻게 하셔서 이렇게 병이 났나요?”
의사는 거의 실신 지경의 우리들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나보다 일을 덜한 딸이 나보다 더 심하게 병이 났다.
“엄마, 이러다 우리 죽겠다. 그만 하자.”
청소를 하던 딸에 말에 나는,
“너는 가서 쉬어. 엄마는 다 하고 쉴 거야.”
“지금이 몇 신데? 다 하면 밤 새워야 해.”
“밤을 세우더라도 다 해야지. 그럼 일을 하다 마니?”
외골수에 뭐 하나를 잡으면 끝을 보고야 마는 내 성격에 딸은 두 손 두발을 들고
넌더리를 치며 물이 안 나오는 위의 집으로 올라가 쓰러져 버렸다.
나야 산전, 수전, 지구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치러 고생에는 이력이 나고 야물어진 사람이지만, 딸이야 마음고생은 그렇다 치고 몸으로야 마리앙뜨와네트처럼 편하게 자랐으니 쓰러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런 것들이 내가 없어도 과연 세상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새삼스럽게 요즘 딸과 아들을 보면 그런 걱정으로 측은해진다.
지친 아들도 락스를 묻힌 걸레를 집어 던지고 만세를 부르고 위의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밤 12시가 넘자 그 아들이 다시 부리나케 내가 일하는 아랫집으로 달려왔다.
“엄마, 난 엄마가 일하다 쓰러진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왔어.”
“쓰러지긴....누나는?”
“누나는 심각해. 지금 누워 끙끙 앓고 있어.”
“너도 쉬지 왜 내려왔어?”
“엄마 제발 그만하고 올라가자. 더 이상 안하기로 나와 약속해 놓고 이렇게 일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다 했어. 이제 그만 할게.”
“엄마도 이제 병 날거야. 누나와 엄마가 병 나서 쓰러지면 잔치 끝에 죽는 것은
돼지라고 죽는 것은 나뿐이야.”
궁시렁 거리며 아들은 다시 주섬주섬 걸레를 들고 나를 도왔다.
"그만 해, 너까지 병 나."
"엄마가 하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엄마야 고생에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엄마가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쉬어야지. 계속 일하면 엄마가 너무 불쌍해."
"그래도 엄마를 생각해 주는 것은 우리 아들 밖에 없구나."
“엄마, 내가 만일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열심히 나를 도와 걸레질을 하던 아들이 갑자기 뜬금없이 물었다.
“딸이었다면 힘이 들어 지금처럼 엄마를 도울 수가 없겠지.”
걸레질에 빠져 있던 나는 지금 간절한 생각만 정직하게 대답했다.
“단지 그 이유 뿐 이야?”
아들은 그 이유 외에 다른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일을 하는 것에 집중한 나는 아들이 원하는 대답을 파악하기기 어려웠다.
지금 이 아이가 원하는 말은 알겠는데 그게 일을 하느라 내 머리에서
뱅뱅 돌 뿐 정리되어 입으로 나와 주지 않았다.
“재홍아, 엄마를 도와주어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바로 네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거야.”
나도 말을 하면서 과연 내가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될지 의문스러웠다.
“어렵지만 대충 무슨 의미인 줄은 알 것 같아. 그런데 엄마, 누나는
아무리 약한 여자라지만 너무 이기적이야.”
“재홍아, 그건 어쩔 수 없어. 누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으니까. 하지만
누나는 몸도 약하고 힘도 없는 여자이니 네가 누나를 이해하고 많이
도와주어야 해. 엄마가 죽으면 세상에는 너와 누나 단 둘 뿐이야.
엄마 다음으로는 세상에서 너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누나야.
너희들이 서로 위하며 오순도손 의지하고 살아야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죽어서도 가슴이 아플 거야. 재홍이는 착하니까, 누나를 잘 위하고
잘 지키고 살리라 믿는다.”
“알았어, 엄마.”
누나보다 자상하고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아들은 내 옆에서 걸레질을 하며
조근 조근 내게 말을 붙이며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엄마, 작은 화장실은 제발 내일 치우자.”
“응, 작은 화장실은 그렇지 않아도 전기가 나가 안 보여서 못 치워.”
“엄마는 촛불을 켜 놓고도 치울 사람이야. 내가 감시해야지 안 되겠어.
제발 이제 그만 해.”
아들은 내게서 락스 수세미를 뺏어 버렸다.
우리는 대충 치워서 집안 꼴이 갖추어진 집에서 아들과 함께 나란히 누웠다.
올 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은 지금도 나와 함께 잠을 잔다.
나를 많이 닮은 아들은 무서움증도 나를 닮아 홀로 잠을 못자는 것이다.
내 몸에 무엇이 닿으면 잠을 못자는 못된 내 성질 때문에 요는 각자 깔고 자지만
워낙 커가는 아이라 잠버릇이 심해 자다보면 내 요 아들 요가 따로 없다.
어쩌다 잠 곁에 눈을 뜨고 어둠 속에서 옆에 누운 아들의 얼굴을 얼핏 보다
깜짝 놀라기를 몇 번이었다.
“헉! 난 지금 분명히 여기 깨어 있는데, 내가 왜 또 누워 자고 있지? 지금 내가 유체
이탈을 한 것인가?”
그렇게 나와 똑 같이 생긴 아들의 모습에 내가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나와 닮은 이 아이들이 면면히 내가 없는 세상을 이어가겠지....

나는 아들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살그머니 일어나 아들 말대로
촛불을 켜 놓고 화장실 청소를 마지막으로 청소를 끝냈다.

위의 집과 아랫집을 왔다 갔다 하던 딸이,
“엄마 모든 문화 공간은 위에 있는데, 물은 나오지 않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100미터를 왔다 갔다 하려니 피곤하다.
그냥 우리 위의 집과 여기에 도루래를 달아서 왔다 갔다 할까?”
하던 말과 석고상이 보이지 않아,
“여기 있던 ‘아그래빠’ 어떻게 했니?”
그렇게 딸에게 물었더니,
“응, 두 개골 골절이라 회생 불가능해서 내가 그냥 완전히 보내주었어.”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던 딸의 얼굴을 그리며 혼자 웃는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직도 내가 가야 할 새벽은 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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