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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1.24 03:32

정직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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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얼굴은 아직 그런 것을 못 느끼겠는데 손을 보니
정말 나이들은 티가 나네요.”
핸들을 잡은 내 손을 쳐다보며 한 말이다.
바로 그 말을 한 놈(내가 하는 놈이란 말은 욕이 아니라 바로 사람(者)
자란 뜻이다.)은 신년산행을 마친 후, 그 놈 덕분에 공짜로 문화생활을 한 신세도 갚을 겸해서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선신을 쓴 중찬 아우였다.
언젠가 내가 중찬 아우 덕분에 공짜로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중찬 아우가 그래픽을 한다는 것을 알고 공짜로 문화생활을 하러 온 나는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요즘은 개나 소나 다들 그래픽을 하니........”라고 말한 복수를 톡톡히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중찬 아우님이 내게 2장의 명함을 보여주며 어느 것을 택하겠냐고 물었을 때,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가방만 무겁다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명함만 많다니까,”
라며 명함이 없는, 백수인 내가 자격지심에 궁시렁거리던 것까지 단단히 원수를 갚고 있는 것 같았다.
중찬 아우님이 성격이 좋고 사람이 좋으니 그런 말을 듣고도 꽁하지 않았지, 다른 사람 같으면 단단히 삐칠 일이었다.

중찬 아우님이 눈은 예리하고 정확했다.
나의 손은 여자의 손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거칠고 투박하다.
손에 신경을 쓰지 않은 내 성격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일을 보고 못 참고 성질이 급한 내가 손을 관리하기 위해 면장갑을 낀다던지 손을 보호할 생각보다 무조건 ‘내 손이 내 딸이다.’라는 마음으로 달려들어 모든 것을 직접 내 손으로 해결한 이유도 크다.
투박하고 거칠긴 하지만 나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정직한 손이다.
고생만 시킨 부모에게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유일한 은혜는 부모  덕분에 피부 하나는 타고 났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듣고 살았다는 것이다.
워낙 털털하고 꾸미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내가, 피부 마사지를 하느냐, 얼굴관리를 하느냐,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라는 말들을 듣는 것은, 순전히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피부 덕분이다.
전혀 공들이지 않았는데도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괜히 횡재한 기분이 들고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일이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신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피곤하면 세수도 생략하고, 쓰러져 잘 때도 많고, 외출을 하지 않았으면 저녁에 얼굴 닦는 것도 생략하고, 저녁에 얼굴을 닦았으면 아침 세수는 대부분 생략한다.
피부를 위해 마사지를 받는다던지, 내가 마사지를 한다던지 하는 일은 지금껏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렇게 피부에 무관심하게 살아 온 이유는, 피부에 신경을 쓸 만큼 내 인생이 한가롭지도 않았고, 피부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오지도 않았으며, 나의 피부를 위해 그런 일을 할 만큼 내 자신의 피부에 세심하지도 않고, 피부에 대해 그렇게 부지런을 떨지도 못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나의 털털한 성격도 한 몫하고, 겉으로 나타나는 피부나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외장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경멸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참 아이러니 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주어지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보면 신은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공평하다)
그런 내가 평소 외출을 하기 위한 나의 모든 준비는 화장까지 하는 시간을 합해 30분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그 것도 시간이 없고 바쁘면 화장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신호를 받으며 쉬는 중간 중간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치명적인 괴로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지 아버지를 닮아 치장에 목숨거는 딸을 두었다는 것이다. 나의 딸은 외출 준비 시간이 평균 2시간이다.
어디를 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딸의 치장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그대로 잠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딸의 치장 시간 때문에 언성을 높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지쳐 내가 포기해버렸지만....
몇년 전 서울에 살 때, 몇 십 년 만의 폭설로 길이 막혀 택시 안에서 꼬박 5시간을 꼼짝 없이 앉아 있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오던 나는, 꼼짝하지 못하는 택시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버스마저 끊겨버려, 전철에서도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길을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딸에게 마중을 나오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눈길을 엎어지고 자빠지다 징징울며 집으로 들어 갈 때까지 딸은 집에서 열심히 치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눈길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을 하는 마음으로 딸에게 집 앞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빨리 나올 생각은 않고,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눈 구덩이 속에서 추위에 떨며 구르고 자빠지고 징징 운 시간에, 딸은 한가롭게 분단장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너무 기가 막히고 분했다.
교통이 끊기고 인적마저 끊겨,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한 밤중에, 꽃단장을 한 들 누가 봐 줄 것인가,
그것도 바로 집 앞 눈구덩이로 나오는데.... 딸에게, 배신감이 들고  분하기도 한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한껏 꽃단장을 한 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어미가 힘들어 다 죽어간다고 빨리 나오라고 했는데 이 오밤중에 누가 본다고, 집 앞에 나오면서 꽃단장을 하고 있어!”!
지 애비가 어디 외출을 하려면 그 전날부터 옷장 문을 열고 이 옷을 입어 보았다, 저 옷을 입어 보았다, 옷장을 홀랑 뒤집고 난리를 피우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어이 백화점까지 나가 옷을 사오게 만드는 것에 넌더리가 났던 나였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내 눈이 잘못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렇게 심사숙고해 신경을 써서 입은 옷이나, 내가 5분 안에 골라 입은 옷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런 헛수고를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사람을 경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 딸까지 그러고 있으니.....
그마나 지 애비는 시간 관념에는 철저하여 자신의 습성을 알고 미리 미리 준비를 하는데, 불행한 사실은 딸은 전혀 그런 개념 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아들은 그나마 나를 닮아서 털털하고 치장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 아들까지 지 애비를 닮아 두 것들이 그러고 있다면, 나는 눈꼴이 시어 눈도 멀고, 울화가 치밀어 화병으로 내 명에 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그나마 한 명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위로해야 하나....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을 하필이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 닮았다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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