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총..그 이후

by 박 명아 posted Jan 25,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명아씨, 명아씨의 글, 혹 이장님이 보면 어떻게 해요?”
그 멀리서 베낭에 무거운 '호랑이도 놀란 지리산 곶감'을 싸들고 감악산 산채를 방문한 효순님이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해영님을 마중하러 내려가며, 내가 이 곳이 이장집이라고 알져주자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난 이장부인 얘기는 썼어도 이장 얘기는 쓴 적이 없는데
자기 부인을 그런 식으로 썼다고 혹 이장이 보면 어떻게 하냐는
말인가 싶어,
“사실을 사실대로 썼는데요. 없는 말 했나요.”
“그래도 모텔에 가자는 얘기를 그렇게 온라인으로 알리면 명아씨가 나중에
이 곳에 사는데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걱정스럽게 묻는 효순님의 말에 난 잠시 당황했다.
올 해 칠순 잔치를 한다고 ‘알림장’을 보내 온 이장이 나에게 모텔을 가자고 했나...
내 기억에 그런 일은 없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기억력 좋은 내가 잊어버린 건가, 싶어 확인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이장이 저에게 모텔을 가자고 했다니....”
“명아씨가 글에 썼잖아요. 이장이 아무짓도 하지 않을 것이니 모텔에 가지고 했다고,”
“하하하....아이고, 그건 이장이 아니라, 이 동네에서 크게 농사를 지으며 지 딴에는 건물도 좀 가지고 있다고 큰소리치고, 딸까지 서울대에 보냈다고 자랑하는 나와 동갑인, 말하자면  자칭 이 동네 유지에요.”
“아~그렇구나, 난 이장인줄 알고 있었어요. 내가 글을 잘못 읽었구나.”


그런데 신년 산행을 하며 나무님들이
“이장님 잘 계세요?” 라며 이장 안부를 묻는 분들이 많았다.
평소 같으면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싶었겠지만, 효순님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나는 모텔을 가자는 놈을 모두들 이장으로 알고 있나보다, 싶었다.

중요한 것은 이장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술을 마셨으니 운전도 못하고 피곤하기도 하니 자신은 아무 짓하지 않을 것이니 술이 깰 때까지 모텔에서 쉬고 가자고 말한 놈에게 내가 어떻게 대처했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놈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나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벗어라.”
나의 말뜻을 몰라 놈은 당황했다.
“뭐라고?”
“벗으라니까.”
“뭘 벗어?”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며? 그러니 정말 아무 짓도 하지 못할 물건인지 어떤지, 내가 물건의 상태를 보고 감정을 해 보아야겠지? 그런데 감정도 혼자 하는 것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지겠지? 그러니 공정한 심사를 위해 네가 바지를 벗으면 지금부터 여기서 서빙하는 아가씨를 불러 나와 함께 세밀하고 자세한 감정에 들어 갈 것이니 어서 벗어.”
순간 놈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잠시 후, 놈은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넘어가며 발을 빼고 있었다.
“내가 농담 좀 했기로서니, 하여튼 박명아는 알아 줘야 해.”
그렇게 체면을 살리며 위기를 모면하려 할 때는 적당히 져줘야 한다.
쥐도 도망 갈 길을 열어놓고 쫒는 법이니.
“아~그렇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이고, 뭐 귀에는 뭐만 들린다고,
속물인 내가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못했네. 이러니 난 구제불능의 속물이야.
미안하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뭐.”
미안하다는 내 말에 겨우 체면을 건진 놈은 짐짓 선신 쓰듯 말했다.
“내가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못한 잘못을 사과하는 뜻으로 오늘 밥값은 내가 낼게.”
내가 밥값을 계산하겠다는 말에 자신이 내겠다며 형식적으로 만류하는 척하는 놈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서빙하는 아가씨를 불러 계산을 치루고 대리운전을 불렀다.
그 밥을 얻어먹고 밥값도 못 건졌다고 돌아가며 아까워 투덜거리는 악담을 내가 왜 들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밥값을 내도 ‘오늘 재수 옴 붙었다’며 돌아 갈 놈인데....

‘자식, 한 방에 갈 놈이, 감히 까불고 있어. 내가 그 산속에서 집을 짓기 위해, 군사보호 지역이라 군에 허가를 얻기 위해 건축 신청서를 내자, 민간인의 사유지를 가지고 작전 중심지인지 부심지인지 하며 개수작을 떨며 부결시킨, 작전관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고, 결국 동의를 얻어내어 길을 내고, 전봇대를 세워 전기를 끌고 관정을 파 물을 끌어 올리며 거친 공사판의 노가다 십장들도 나에게 꼼짝을 못하게 하며 일을 시켰는데, 감히 어디 쨉도 안 되는 놈이 까불고 있어. 너는 총알도 아까운 놈이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리운전 하는 놈이 입 닥치고 운전하기가 무료한지 백미러로 흘끗거리며 슬슬 말을 건다.
“오늘 과음 하셨나보네요.”
‘이 놈은 또 뭐야. 하여튼 세상에는 총알도 아까운 놈들이 많다니까,
아가야, 애쓰지 말고  꼴값 그만 떨고 운전 해~’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