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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나오지 않아 위 아래집을 올라 다니며
정신이 없던 지난 금요일, 그렇게 고대해왔던
엄효순 나무님과 양해영 나무님이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위의 집에 물이 나오지 않고 아랫집 마저 정리가 되지 않아
차분하지 만은 않은 집의 분위기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욕심에
실례를 무릅쓰고 오시라는 대답을 했다.
토요일에 함께 우리집에서 일 박을 하고 일요일 신년산행을 함께 가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약속한 토요일이 되고 12시가 다 되어도 오신다는 연락이 없어,
집에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 내가 전화를 드리면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아
왜 안 오시냐고, 재촉하는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울리더니 효순님이 아래 저수지 근처에 와 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집을 치우다 말고 마중을 가기 위해 치울 물건을 우선 가져다 놓으려고 허둥지둥 아랫집으로 내려가니 아들이 효순님으로 부터 온 전화를 받으며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효순님이 혼자 걸어 올 요량으로 아들에게 위치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효순님이 홀로 걸어 올 만한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나는 일하던 옷차림 그대로 위에 오바만 걸치고 마중을 나갔다.
효순님은 일요일 신년산행을 할 준비까지 마친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처럼 연락을 하면 눈이 많이 왔으니 또 오지 말라고 할까봐 이번에는 아예 연락도
하지 않고 왔노라며 아기같이 천진하게 웃었다.
다행이 저번처럼 폭설은 내리지 않고 날도 포근했다.
우리는 반가움에 다 늙은 여자들이 길에서 소리를 지르며 껴안고 난리를 쳤다.
누가보면 남북분단 이후, 처음 만나는 동족들인 줄 알았으리라.
하긴 작년 모두모임 이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긴 하지만....

해영님은 개인적인 일을 보고 저녁에 합류하기로 하였단다.
효순님은 그 멀리 오면서 베낭에 무거운 곶감까지 챙겨 가지고 오셨다.
나는 물이 안 나오는 위집을 피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인 아랫집으로 안내하고
반가움에 밀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시가 넘어서도 점심을 차려 줄 생각도 안하고 나는 마냥 수다만 떨었다.
아침만 먹고 온 효순님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 것인가.
내가 먹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아 남도 그러려니,생각하는 것은 정말 내가 고쳐야 할
가장 큰 병 중에 하나이다.
부랴부랴 대충 점심을 차려먹고 해영님을 마중하러 의정부로 나갔다.
그런데 원래 내가 살고 있고, 내가 가는 길만 알고 있는 '길치'인 이 여자가
해영님이 알려 준 곳을 찾지 못하고 뺑뺑 돈 것이다.
해영님은 약속 시간보다 30분씩이나 늦게 온 우리들을 밖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고...
정말 죄송해요..해영님.

"글에서 상상한 이미지하고 완전 다르네!"
해영님이 나를 보고 한 첫 말이다.
"무늬만 이렇지, 웬만한 남자보다 더 씩씩해요."
내가 그렇게 대답을 하자 나를 보는 해영님의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경락을 받아서 그런가...
나도 경락이나 받아볼까...'
난장이 겨우 면한 나의 키와 달리 해영님의 늘씬한 몸매와 서양인처럼
큼직큼직하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는 나를 기죽게 했다.
손이 못 생기고 거친 나를 부럽게 만든 효순님의 아기같이 뽀~얀 손은
또 어쨌던가....
3월에 열 개인전으로 요즘 눈코 뜰 새 없다는 화가인 해영님과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인 효순님은 일에 찌들은
아줌마 백수인 나를 여러모로 엄청 기죽게 했다.
웬지 모르게 두 여자들 엄청 질투나고 얄미워...(궁시렁..궁시렁..)

시원시원하고 매력적인 해영님과 내가 봐도 천상 여자인 효순님에게
둘러싸여 우리 세 여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영님이 베낭에 곱게
넣어 온 와인을 마시며 맛있는 수다를 안주 삼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와인과 곶감을 가져 온, 인사를 아는 두 여자들 엄청 착해...히히)

"신영복 교수님 정말 대단한 분이야. '처음처럼'이란 문자를 두산에 써주고
글씨를 써주고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전부 성공회 장학 재단을 만들어 기부했잖아?"
해영님의 말에 나는,
"신 선생님께서 매달 받는 인세만 얼마인데, 그 정도야 기부 할 수 있지요. 뭐,
만일 신 선생님께서 먹고 사는데 바쁜 정말 가난한 분이라면 그런 일 하고 싶어도
못하지요."
"그건 그래..그렇지만 자기 같으면 하겠어?"
해영님의 말에,
"난 절대 못하지요. 아니, 안 하지요. 그러니까, 제가 존경하는 거지요. 그런 일은 신 선생님만 하시게 우린 가만히 있어야 해요."
"하하하..."

"참, 이승혁님께 전화를 걸어서 내일 가는 신년산행 길을 물었어요.
그랬더니 양해영님께도 안부 전해 달래요."
엄효순님의 말에 양해영님은,
"이승혁님도 오라고 하지 그랬어?"
감악산 산적님 왈,
"잡아 먹힐을까봐 무서워 못 오지."
"여자 혼자 부르면 못 오지만 세 여자면 잡아 먹히지 않으니 안심하고 오지."
순진한 해영님 말에 감악산 산적 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네.세 여자에게 집단 추행 당할까봐 무서워서 더 못 오지."
"호호호..."

"그건 그렇고 우리 신 선생님께서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뜨거운 맛을 못 보셨나 봐..아직도 더불어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상처받기를 용감하게 허락하시고 계시니...20년 정도가 되면 이제 슬슬 사람들에게 회의가 들고 힘들어질 시기가 됐는데.."
"신 선생님께서는 20년을 감옥에 계셨으니 지금 나이가 감옥에서 계신 20년을 빼면 40대지. 그러니 아직은 열정들이 있으시겠지..."
"주위에 몰려 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겪고나면 분명히 인간이니 회의는 드실거야.
다만 그 회의를 어떤 식으로 뛰어넘냐는 신선생님의 역량이지..."
"순수하게 신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식으로 신 선생님을 존경하냐는
방법의 고민은 이제 진지하게 해 볼 시간이야..."
"흠흠흠...."

이런저런 화제들로 침을 튀기다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자는 제안에, 아들에게 윗집에 있는 고구마 상자를 가져 오라고 부탁했는데, 어두운 길에 고구마 상자를 들고오다, 고구마 상자 때문에 눈이 쌓여 있는 것이 잘 안 보여 그만 눈길에 고구마 상자와 함께 나동그라진 아들이, 허리를 삐끗해서 제 딴에는 놀라기도 하고 다친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나,우리들 앞에 고구마 상자를 퉁명스럽게 내려놓는 통에,나는 손님이 계시는데 불손하게 군다고 아들을 혼내고 동생이 고구마 상자를 가져 오는데 함께 가져오지 않고 동생에게만 시켰다고 딸마저 나에게 혼쭐이 나고....
나도 사람인데 어미인 내가 왜 아들의 다친 허리가 걱정스럽고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는가.
처음엔 약을 발라주며 어두운 밤에 심부름 시킨 것이 미안하여 그만 참을까,하다,내가 미안하여 약을 발라주며 어쩔 줄 몰라하니 아들이 잘났다고 더 퉁명스럽게 나가, 아들을 위해 마음을 모질게 먹고, 손님 앞에서 결례가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혼쭐을 내어 준 것이다.

그렇게 손님이 계시는데 아이들을 혼내어 손님을 더 불편하게 만들며 더 불손하게 군 당사자인 감악산 산적 두목은 나중에 고구마를 구워 얌얌 맛있게 먹으며...
아이들이 손님이 왔을 때 불손하게 굴면 바로 혼을 내야 한다.
왜냐면 아이들은 손님이 계실 때는 부모들이 혼을 내지 못한다는 그 점을 이용해서
버릇없이 굴기 때문에 바로 그 점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손님에게 다소 실례가 되더라도 당장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혼쭐을 내주어야 한다.
그러니 '무식하고 실례인 줄 알지만 자식을 홀로 키우는 나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
그렇게 설명을 하며 아이들을 혼 내서 분위기가 뻘쭘해져 앉아 있는 효순님과 해영님을 이해시켰다.
해영님, 효순님 용서하시고 이해해 주세요.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묻는다.
어떤 때가 가장 고독하고 힘이 드냐고....
내가 가장 고독하고 힘이 들 때는, 나 홀로 어떤 문제들을 결정해야 하고
나의 결정에 대한 결과까지도 오로지 고스란히 나의 몫은 물론, 나의 가족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결정해야 할 때, 세상에서 가장 철저하게 고독하고
처절하게 외로운 순간들과 알몸으로 마주하는 시간들이다.
내 결정들로 인해, 나는 물론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까지 괴로움을 받고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의 결정들을 홀로 내릴 때만큼 힘이 들고 철저히 고독할 때가 있을까....
그 처절한 외로움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게셋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여, 이 잔이 나에게 비껴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 순간을 모면할 방법만 있다면 그 방법을 찾아 알몸으로라도 천리길을 찾아 갈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에게 닥친 모든 일들이 모면하고 회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순간은 나를 처절하게
고독하고 외롭고 힘들게 만들 것이다.

아이들의 육아문제 역시 그 중에 한 가지다.
나 혼자 결정해야 하고 오로지 그 책임을 나혼자 져야한다.
책임을 떠 넘길 사람이 없다.
쫒기는 사람이 앞에는 적이고 뒤에는 절벽을 만난 극한 심정이라면
조금이라도 설명이 가능할까....
그러니 효순님, 해영님, 두 분을 잠시 뻘쭘하게 만들며 무식할 수 밖에 없었던
저의 아픔을 이해해 주세요.
다음에도 아이들이 버릇없게 굴면 더 무식하게 결례를 할 것이니
그 때도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세요.^^

아이들로 인해 잠시 뻘쭘한 분위기었던 우리들은 다시 해영님이 가져 온 와인과 밤, 효순님이 가져 온 호랑이도 놀란 곶감과 적당히 구워진 군고구마를 안주로 먹으며
곧 뻘쭘한 분위기를 날려 버리고 다시 즐거운 수다와 함께 깊어지는 감악산의 밤을
맞았다.

해영님은 12시가 가까워 오자,  
'아~다음 날도 있는 것인데, 왜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G랄 들이여~
난 그런 인간들이 제일 미워. 그러니 우리는 이만 잡시다!"라며
내일의 산행을 위해 오늘은 이만 잠을 자자는 극히 이성적인 제안을 했고
술을 들 줄 모르는 효순님은 한 두잔의 와인에 벌써 얼굴이 복숭아 빛으로
보기좋게 발그스룸해졌고....
감악산 산적인 나만 맨송맨송..말똥말똥....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자야 할 듯...
'난 지금부터 발동 걸리기 시작했는데..흑흑... 하지만 더 마시자고 하면
해영님에게 미움받을 것이니, 그리고 분명 내일 산행에 엄청 힘들 거야.
그러니 해영님 말대로 G랄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 잠이나 자 두자.'
그렇게 나는 오늘 서로 이 만큼 안 것을 위로 삼으며 다음을 기약하며
세탁기에 돌려놓은 빨래를 널고 다음 날 빨 빨래감마저 세탁기에 돌린다음
내일의 산행을 위해 엎어져 잠을 청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정신없이 아침 차리고 위 아래집으로 바쁘게
뛰어 다니며 등산복 챙기랴 베낭 챙기랴 등산화 챙기랴..
눈썹을 휘날리며 위 아랫집을 들락달락 하는데
두 나무님들은 고상하고 우아하게 우주의 기를 빨이 들인다
우주의 기운을 내 안에 채운다, 어쩌구 저쩌구하며..
요가하고 있었어..
흑흑....
나빴어.....
나무님들, 두 나무님들 혼내 주세요~~^^

하지만 효순님이 설겆이는 해 주셨으니 효순님은
조금만 혼내 주세요.^^
참, 참,
그리고 해영님이 밤 삶다가 우리집 냄비 다 태웠어요.(ㅠ.ㅠ)
내가 까맣게 탄 냄비를 들여다 보며 아까워하자, 해영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 걱정할 것 없어!  그 냄비 내일 아침에 갖다 버리면 돼!" 하는 거예요.
큰 마음 먹고 산 삼중 스테인레스 냄비인데..흑흑..자기 냄비 아니라고...
해영님!
개인전에서 그림 팔리면 냄비 값 꼭 받아 낼 거예요!
그러니 기다리고 있으세요~ ^^

나는 신년산행 모임 장소로 가면서 열심히 한 손으로 운전하며
한 손으로 화장하고 한 귀로 해영님의 말을 듣고 나머지 한 귀로는
이어폰 꽂고 음악 듣고 눈으로 길 찾고 입으로 수다떨고 발로 페달 밟으며
그렇게 정신없이 신년산행 집합 장소로 달렸다.
아~~
내 몸은 항상 왜 이렇게 바쁜거야.
이런 내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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