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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보니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접대성 술자리까지
내가 직접 치뤄야 하는 때가 종종 있다.
한국의 사회가 접대성 문화를 빼면 일이 부드럽게 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럴 때 여자 혼자 산다고
나를 봐주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잘났다고 뻐때어 내 자신을 힘들게 만들지 않으려면 그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그 동안 살아 오면서 내가 얻게 된 교훈들이다.
말이 문화고 존중이지 못된 악습에 굴복한 비겁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일들을 맡기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상대방의 성격과 철학들을 얼추
알 수가 있다.
접대의 자리에서 보면 그 성격과 철학들이 더 확실해 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놈 역시 미친놈이구나.’
할 때가 있고.
‘보기와 달리 아주 진지하고 깊이가 있구나.’
할 때가 있고.
‘이거 외계인이네.’
할 때가 있고.
‘수습이 안 되는 인간이구나.’
할 때가 있고.
‘아부에 천재적이네. 이 놈 분명히 립 서비스하느라 혓바닥이 닳고
손바닥을 맞비비느라 손금과 지문이 닳았을 거다.’
할 때가 있다.

접대에서 철학 하나.
절대 접대 받는 사람보다 먼저 술이 취해 뻗으면 안 된다.
철학 둘.
횡설수설 하더라도 결코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내가 원하고자 하는 답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철학 셋.
뒷마무리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일의 연장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깔끔하고 철저하게 끝내야한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갑옷을 챙겨 입고
약속된 자리에 나가면 척 보아도 한 순간에 감들이 온다.
‘아, 오늘 자리는 호락호락하지 않겠구나.’
‘오늘 자리는 부드럽게 넘어 가겠구나.’
‘이건 남자 놈이라도 내숭과네. 나도 적당히 내숭을 떨어야겠구나. 젠장.’

그런 자리에서는 종종 내가 맡긴 일을 더 쉽게 해주기 위해 그 자리를 만들은
그날의 주인공인,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소개를 받기도 한다.
내가 맡긴 일의 성격상 그들은 나의 주민등록 등본을 이미 숙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살고 있고 외국인이 남편이었다는, 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술이 한 두 잔 오고가면 슬슬 본성들을 들어내고 간혹 자신이 맡은 일과 오늘 나온
본질을 잊어버리는 머리가 아주 나쁜 인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은 어떤 면에서는 내숭을 떠는 인간들보다는 훨 솔직하고
인간적이긴 하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 의례적인 개수작에 고맙고 기분 좋아  
“감사합니다.”라든지
“어머! 그래요!”라는 감탄사를 보내면 그 날의
기선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상대방의 그런 되지도 않는 개수작을 한 방에 날릴 만만치 않은,
그러나 상대방이나 그 자리를 전혀 어색하게 만들지 않은 대답을 해야 한다.
“보톡스 맞았거든요.”

“상당한 미인이십니다.”
여기서부터 정말 조심해야한다.
여자들이 훌러덩 넘어가기에 딱 좋은, 남자들이 돈 들이지 않고 생색내는
의례적인 개뻥인 립 서비스를 차단 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소리 너무 들어 이제 식상하네요.
아~미인은 괴로워~”

“몸매 관리를 잘 하셨네요.”
여기서 ‘이놈 봐라’ 하고 벌컥 하면 절대 안 된다.
어떤 말에도 화를 내면 그 날의 미팅은 날라 간 것이나 다름없다.
“실체를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벗겨보면 안 그래요.”
사실 이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긴하다.


본질을 회피한 이런 저런 유쾌한, 혹은 쓸데없는 잡다한 말들로 대화를 이어가다
마지막에 그 날 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대답을 얻고 접대성 술자리가 끝나면
대리운전을 불러 각자 갈 방향으로 모두를 태워 보낸 후에야 나는 내 집으로
돌아오며 비로서 내가 입었던 두꺼운 갑옷인 전투복을 벗는다.
그럴 때는 언제나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덴장...이런 전투복을 입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는 것인가.'


이것이 숲이 아닌 사막에서 여자 혼자 살아내야 하는 의식들인가...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사는 방법들은 없을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사는 그런 세상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되뇌이며 나는 또 사막에서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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