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에 죽은 녹두장군이 한 시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듯 죽은 지 십여년이 넘은 김남주 시인은 빈주먹님 가슴 속에 살아 있군요. 빈주먹님의 글로 인해 내 안에 살아나는 눈물나는 '희망'과 '기쁨'과도 만나게 됩니다. 남들은 다 잔치가 끝났다고 서둘러 떠나는데, 세상이 변했다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데, 아직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건 눈물나는 '희망'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언젠가 만인지하님이 좋은 PV를 소개해주던 글에서 얼핏 봤던 말이 기억납니다. '살아 가는데 많은 감동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그런 내용이었지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 많았습니다. 어쨌거나 사는 데 많은 감동이 필요하지 않은 이 쓸쓸한 시대에, 작으나마 이런 눈물나는 '기쁨'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군요. 해서, 고마운 마음 담아 시 한편 답례로 띄웁니다. 김남주 시인이 그러했듯, 제가 무지 좋아하는 엘뤼아르라는 시인이 자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죽지 않을 '가브리엘 페리'라는 사람을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 * *
자기를 지키는 수단으로는
생을 향해 벌린 두 팔밖에 없었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폭력을 증오하는 길밖에 다른 길을 몰랐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망각에 대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한 모든 것
눈 속 깊이 마음속 깊이
행복은 빛이 되고
정의가 땅 위에 실현되는 것
그것을 우리도 원했고
아직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말들입니다.
열정이란 말, 믿음과
사랑과 정의라는 말, 자유라는 말
어린이라는 말, 귀여움이라는 말
그리고 몇 개의 꽃 이름과 몇 개의 과일 이름.
용기라는 말 들춰낸다는 말
형제라는 말, 동지라는 말
그리고 몇 개의 나라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
그 이름 위에 이제 페리의 이름을 덧붙입시다
페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위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릅시다.
그의 희망은 살아 있습니다.
- P. 엘뤼아르, < *가브리엘 페리 > 전문 -
* 주) 가브리엘 페리 - 정치인이며 언론인. 독일군 점령기에 저항운동을 하다가
1941년 5월 체포. 그해 12월, 다른 포로들과 총살당함.
2007년 2월 25일. 이른 새벽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