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구 나 무
엄 효 순
앞뜰에 서 있는
오래된 살구나무 한 그루
봄비에 촉촉히 젖는다.
살포시 햇님 얼굴 내밀면
물기 가득한 살구나무
짙은 검정색 가지에 연분홍 꽃
그만, 숨이 멎는다.
한 잎 두 잎 꽃잎은 떨어지고
파릇파릇 잎사귀들 세상 구경 나오네.
잎사귀들 점점 무성해지고
바람에 살랑대며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의 비밀을 키워 간다.
몰라요,
어떡해요.
더 이상 간직할 수 없어요.
노랗게 노랗게,
몰래 키운 사랑 터트린다.
활짝
나는 나는 어린 살구
아직은 파란 잎사귀들에 감싸여서
파란 살구로 있을래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