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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3.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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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욕심을 너무 부려 기교투성이군.
마치 싸구려 악세사리를 주렁주렁 건 것처럼."
"이 시는 깔끔하긴 한데 너무 주관에 빠져
다양성이 부족하군."
"이 시는 너무 관념적이군. 잘난척을 너무했어."
"이 시는 욕심은 안 부려 문장은 비교적 침착한데
조금 더 신경써 표현력과 언어들을 다듬어야 하겠군."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서투른 판단을 한다.
문학이란 여러 인간들을 탐구하는 학문이자
결국은 자신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의 백미는 역시 시다.
압축된 몇줄의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시는
그래서 가장 어렵다.

나는 시를 읽을 뿐, 시는 쓰지 못한다.
내겐 너무 어렵고 벅찬 작업이므로.

공강 사이사이 홀로 차 안에 앉아 그렇게 서툰 내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며 시집을 읽는다.
행복하다.

내가 이 늦은 나이에 편입을 고집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도 바로 나에게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대략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유이긴하다.
하지만 나에겐 절실한 이유다.

유난히 추위를 매섭게 타는 나는
3월의 눈물나는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신학기가 되어
그 시대 잘 나가는 교수님들이나 아이들이 자동차를 타고 오면
부러움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의식은 '속물이다'를 외치며 몸부림치는데
몸은 따뜻함을 갈구하고 있었다.
정직한 고백이다.

추운 학교의 자신의 방을 가지고 등교하다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추위를 타는 내가 따끈따끈한 나의 방을 가지고 등교를 한다면
공부도 무척 잘 할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나의 속물의식에 싸늘한 냉소를 보냈지만 따뜻한 방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를 유혹했다.
인간은 때론 한없이 나약하기도하다.
공강 사이사이 추워 벌벌 떨며 빈 강의실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그 많은 아이들의 질식할 것 같은 호흡의 무게를 느끼며
도서관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내겐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렇게 삼월의 꽃샘추위는 때때로 나의 의식을 냉동시켰다.

내게 자동차가 생긴 어느 날.
나는 꼭 자동차를 가지고
아니, 나의 따끈따끈한 방을 가지고 다시 공부를 하리라 다짐했다.
경멸 당할 의식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나는 삼월의 꽃샘추위로 퍼렇게 멍든 교정에 나의 따뜻한 방을 세워두고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홀로라는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다시 세상을 살 듯.
아니, 잃어버렸던 내 젊은날을 다시 찾듯.
내겐 정말 눈물겹도록 절실한 시간들이다.

나보고 황당하고 단순한 속물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나다.
정직하게 인정한다.



시 창작시간에 교수님의 지명으로 내가 시를 낭송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앉은 여학생이 고개를 숙이며 웃겨 죽겠다는 듯 쿡쿡 웃었다.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
나는 더 이상은 계속할 수가 없어 시를 낭송하다 말고 물었다.
"지금 왜 웃지요? 내가 낭송하는게 그렇게 웃긴가요?"
앞에 앉아 쿡쿡 거리던 개념없는 년은 갑자기 당황하여 더듬었다.
"아..니..요. 먼저 읽은 남학생과 너무 달라서요... 너무 잘 읽으셔서요...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해요..."
"그래요? 시를 낭송하는 사람 바로 앞에서 그렇게 웃으면 그게 좋은
뜻으로 비쳐질까요? 설혹 좋은 뜻이라도 그거 예의없는 행동인지 몰라요?
그렇게 바로 앞에서 비웃듯 고개를 숙이고 쿡쿡 거리면 제가 어떻게 흐름을
잃지 않고 계속 낭송을 할 수 있지요?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기본적인 감수성조차 없나요? 전 아직 사람이 못 돼서
'벌컥'과 '울컥'을 잘하는 사람이예요. 내 말이 지나쳤다면 미안해요.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앞에서 참아야 했는데 제가 아직 사람이 될 되어
참을성이 부족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지금의 감정으론 낭송을 다시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께 용서를 구하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한번은 고민해보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들이니까요."
교수님의 말씀이셨다.

교수님 앞에서 정말 예의가 아닌 줄 알고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 아이는 어떻게 된 신경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저렇게 무딘 신경을 가지고 있는가...
저렇게 무딘 신경과 감수성을 가지고 문학을 하겠다고...
문학을 하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화가 나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문학의 밤'마다 맡아놓고 시를 낭송하던
나를 감히 비웃다니.
감정을 팍팍 넣은 것도 아니고 아주 간결하게 읽었는데..
이 년이 내가 나이가 들어 이런 허접한 학교로 편입을 해오니
나를 아주 우습게 본 모양인데 어디 엠티때 보자.
넌 딱 걸렸어.
개념없는 괴물같은 년.

부모들은 저런 동물들을
어쩌라고 준비교육없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 용감하게 내몰은 건지....
하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람보다
동물들이 더 많으니 그것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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