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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4.15 23:43

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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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느질을 좋아한다.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일도 좋지만 손바느질도 좋다. 작년 여름에 퀼트를 조금 배웠다. 멀쩡한 원단을 조각조각 오려서 다시 붙여서 새로운 물건으로 제작한다는 것이 좀 아깝지만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서로 다른 무늬를 가진 천을 조그맣게 잘라서 배색을 하여 가방을 만들면 독특한 조화가 아름답고 가죽가방보다 가볍고 촉감이 부드러워서 참 좋다. 바느질이 까다로운 것은 못하고 지갑과 손가방만 만든다. 이제는 손이 빨라져서 지갑은 하루면 완성한다. 지금까지 지갑은 20개 정도 만들었고 가방은 15개 정도 만들었다.

<가을비> 출판 후부터 쉬는 마음으로 온종일 바느질만 했다. 지갑과 가방을 만들면 선물하기에 참 좋다. 누군가와 점심이라도 함께 할 때, 내가 속 시원히 계산하지 못할 경우면 퀼트지갑을 갖고 나간다. 점심값을 내는 사람에겐 물론이고 한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하나 씩 선물하면 다들 아주 즐거워한다. 그렇게 하면 2차로 가는 카페에서 찻값도 내지 못하고 돌아와도 머리 뒤통수가 근질거리지 않는다.

지난겨울, 문단의 선배들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날이 있었는데 내가 만든 지갑을 하나씩 나누어 드렸다. 그날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퀼트를 좋아하는 분이 계셨다. 지금은 연로하시지만 젊은 시절부터 글이 좋다고 인정을 받았고 문학상도 여러 개 탔고 특히 성품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분이다.

내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다음날 손가방을 하나 더 드리고 싶어서 그 분의 댁에 갔다. 그런데 어제보다 덜 좋아하는 눈치였다. 작은 지갑 하나에 아이들처럼 좋아하던 모습과는 달리 어쩐지 머뭇거리면서 받는 것 같았다.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시나 하고 다소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전화를 받았다. ‘가방이 너무 예뻐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렇게 힘들게 만든 가방을 왜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하셨다. 예쁘다는 말은 자꾸 했지만 지갑을 받았을 때만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도 훨씬 지난 후에 이유를 알았다. 그 분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퀼트가방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무슨 부탁을 해올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더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만든 지갑과 가방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가고 나에겐 가방 하나만 남았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라서 만드는 게 아니라 제작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좋아서 바느질을 했다. 완성된 가방을 나누면 퀼트에 대한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또 상대가 내 솜씨를 추켜 주면 뿌듯해져서 그 성취감은 며칠이나 계속되어서 또다시 바늘을 손에 쥐게 되었다.

시골 내려오고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자주 나갈 형편도 아니다. 혼자서 놀아야 한다. 그래서 독서를 하다가 지루하면 마당에 꽃을 심고 겨울 동안은 내내 바느질만 하면서 솜씨 자랑을 했는데 이제 그 일도 그만 두어야겠다. 선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비싼 물건이 아닌데도 오히려 부담이 될 줄 몰랐다. 나의 진심은 없고 부탁이나 할 사람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참 쓸쓸하게 만든다.

부탁은, 내 능력보다  빨리 무언가를 얻고 싶을 때 하는 일이다. 여태 살면서 크고 작은 부탁을 해서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내 능력보다 먼저 원하는 것을 얻은 게 아니라 상처만 더 받았다. 상처받는 사람은 무능하다. 그럼 상처를 주는 사람은 유능한가? 아니다, 그도 무능하긴 마찬가지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유능하다. 따뜻한 사람은 상처가 무언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누군가와 더불어 할 일을 불평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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