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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던 어느 날
안 돌아가는 노쇠한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온
자칭 비빔밥이 좋다던 녀석이 하는 말.
“선배님 조승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승희? 그 애가 몇 학년인데?”
“......”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 다시 되물었다.
“그 애 문창과 아니니?”
"......"

한국인이 권총을 난사해 미국인 32명을 죽여 지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
정부가 사과를 하느냐,마느냐, 난리가 났다고 말해준다.
"한국 정부가 사과를 해?
그럼 조승희가 관광 갔다가 미국인을 죽인 거구나..."
"......"

3학년의 수학여행 인원이 모자라 발리가 아닌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는 말에
“그럼 난 안가.”
간단히 말했다가 제주도가 아닌 푸켓으로 결정되었다는 말에
“그럼 갈게.”

시 창작 시간에 교수님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학년 수학여행을
따라가야 하므로 수업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수학여행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라고
굳건히 믿고 있던 나는, 29일에 출발이라는 메일이 오고 문자가 날아와도
이미 내 머리는 수학여행=월요일로 고정되어 있었다.
내 딴에는 푸켓으로 간다고 수영복까지 준비해 놓고 그 동안 살을 좀 빼야겠다는
요량으로 밥도 적게 먹고 신경을 썼었다.

동네방네 푸켓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떠들어 놓고 이제 출발만 남았다고
나의 아이들에게 집단속 문단속을 시키며 엄마와 헤어져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곧 돌아온다고 농담까지 건네며 여행을 떠나기 전의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띠르링”
핸드폰에 몇 번의 전화가 울리고 문자가 오고 난리가 났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전화를 걸어 물었다.
“저의 전화기에 전화번호가 찍혀 걸었는데 누구시지요?”
“선배님, 저 00예요.”
“아~그래 잘 있었어?”
“선배님 왜 안 나오세요?”
“어딜?”
“여기 지금 청주공항이에요. 오늘 출발이잖아요.”
“헉! 내일 아니야? 월요일?”
“아니에요. 29일 출발이라고 메일과 문자 드렸잖아요.”
“29일이 그럼 월요일이 아니고 일요일이야?”
“네!!”
“어쩌니... 지금 청주로 가기엔 너무 늦었고...어쩔 수 없지 뭐.
잘 갔다 와.”
“아유~~어쩌죠?”
“내 실수인데 뭐, 괜찮아 잘 다녀와.”
“서운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 즐겁게 잘 다녀와.”
“네, 그럼 다녀올게요.”

옆에서 내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과 딸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외에 나가는 날을 잊을 수가 있어? 엄마, 바보야?”
“생각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원래 그래.
그리고 학생은 숫자 날보다 요일에 올인해서 사는거야.
토,일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얼씨구!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들 엄마처럼 바보겠네!
더구나 학생이라면 수학여행에 가슴이 설레서 떠나는 날짜를
손 꼽고 몇 번씩 확인하는 것이 정상 아니야?”
“이 나이에 가슴 설레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 아니지.”
“일상적인 것이 아니잖아! 그럼 가슴이 설레야지.
그리고 지금 계획한 여행 못 가게 되어 속상한데
옆집 못 간 것처럼 옥수수 씹고 있게 생겼어?”
딸이 못간 나보다 더 속이 상한지 옥수수를 먹고 있는 나를 탓하며 흥분한다.
“속이 상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부러 속상한 척 해?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달나라를 못 간 것도 아니고,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아니고...”
딸은 졌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정상 아니야....”

딸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이 사온 옥수수를 어기적어기적 씹으며
옷을 벗고 수영복을 입었다.
“왜 갑자기 옷을 벗고 수영복은 입고 난리야?”
딸은 갑자기 엄마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푸켓 못 갔잖아. 그러니까 방 안에서라도 수영복 입고 책 읽고 글 쓰고 하려고...
이제부터 여기를 푸켓으로 생각하고 일주일 동안 푸켓에서 입으려고 작정한 옷들을 하나씩 입고 지내야겠다.”
“바보......확실한 거야..... 우리 엄마...정말 정상 아닌데다 바보네.....정말 이름 그대로 맹아...맞다.”
그러던지 말 던지 난 수영복을 입고 유유하게 책상에 앉아 그날 저녁 내내 책을 보았다.
그렇게 난 나의 수학여행인 푸켓 여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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