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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엄마!!!”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던 딸이 비명을 지르며 사색이 되어 들어온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우리 개가 사슴을 물어 죽였어!”
“사슴? 사슴이 이 산에 있나...사슴이 확실해? 크기가 얼만한데?”
“크기는 나만 해. 슬슬 산책을 하고 있는데 덤불에서 사슴 같은 것이 뛰어 나오니까
우리 개들이 따라가서 물어 죽였어. 바로 내 앞에서...엄마...나 저 개들 너무
무서워....”
딸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리 개들이? 개들이 너 만한 사슴을 죽였다는 거야? 확실해?”
“응....바로 내 눈 앞에서 물어 죽였다니까....”
“그런데 저것들이 그동안 왜 우리들은 물어 죽이지 않았을까....”
“엄마! 우리는 주인이잖아!”
“주인이래도 언젠가 우릴 물어 죽이지 않을까...너 개의 아이큐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니? 어느 날 머리가 휙 돌아 우릴 확 물지 않을까?”
“엄마 아이큐보다는 훨 좋고, 엄마 머리보다는 정상일 확률이 높으니까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어서 사슴 죽은 것이나 어떻게 해 봐!”
“글쎄.... 너구리 정도야 어떻게 해보겠는데...너 만한 사슴을....내가 어떻게...
엄마 보기보다 연약해....”
“아! 정말 웃기지 말고 어떻게 해봐!”

일단 나도 죽어 나자빠져있는 사슴을 보는 것이(한 번도 본 적이 없으므로) 겁이 나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우리 개들이 사슴을 물어 죽였데....”
“어머! 세상에! 그것들 큰일 나겠구나... 묻어 줘야지...”
“묻어 줘? 내가?”
“가만있어 봐, 형부에게 물어보고.....얘, 형부는 그곳에 사는 것들은 사슴은 아니고
고라니나 노루일거래. 그런데 고라니나 노루는 사람 몸에 그렇게 좋단다.”
“몸에 좋다니? 그럼 저 죽어있는 사슴을 먹겠다는 거야? 어떻게?”
“흑염소 집에 가져다주면 중탕해 준데. 조금 있다 형부와 갈게.”

그 사이에 딸은 자신의 디카로 죽어 있는 사슴인지 고라니인지를 찍어왔다.
“자 봐! 엄마 나만하지?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찍어 왔어!”
“이 사슴 어디 있니?”
“우리 뒷산 게울 쪽에 죽어있어.”
나는 비닐봉투와 재활용품을 넣는 100리터 자루를 찾아 들었다.
“가자!”
“어딜?”
“사슴 죽어 있는 곳.”
“엄마가 그걸로 넣어서 끌고 오려고?”
“응.”
“미쳤어! 그 큰 것을 어떻게 가지고 와?”
“가지고 와서 아빠 근처에 묻어 주자. 노루나 고라니는 같은 노루과야.
그리고 노루는 부처님의 심부름꾼이야. 그런 것을 먹으면 큰일 나. 너의 눈앞에서
죽었으니 그것도 인연인 게야. 아빠가 심부름꾼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심부름꾼으로 묻어주자.”
“소설을 써요! 소설을....”
딸은 궁시렁 거리면서도 나를 따라온다.

피를 흘리며 눈을 뜨고 죽은, 개가 먹으려고 했는지 털을 반쯤  벗겨놓은 딸만한 크기의 짐승을 보는 것도 겁이 나 몸이 덜덜 떨렸다.
가까이 다가가 목장갑을 꼈던 어쨌든 내 손으로 만져 자루에 넣어야한다는 생각에 나도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딸은 옆에서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서워하는 딸 앞에서 딸과 함께 떨 수는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있는 짐승 옆으로 다가섰다.
이를 악 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벌써 사후경직이 되어 돌처럼 굳어진, 피를 흘리고 눈을 뜨고 죽어있는
짐승의 눈을 손으로 쓸어 감겨주었다.
그리고 다리를 잡고 머리를 세워 자루에 넣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던 딸도 내가 자루에 넣어 힘들게 끌고 있으니 나를 도와  
자루의 한 귀퉁이를 잡는다.
자루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의 바지에 신발에 선홍색의 핏물이 묻는다.
딸의 흰 운동화에도 핏물이 묻었다.
“악! 엄마 내 운동화에 피가 묻었어!
누가 보면 우리가 사람 죽여서 자루에 넣어 끌고 가는 줄 알겠다!”
딸은 침착한 엄마 앞에서 안심이 되었는지 이제는 농담까지 한다.
“나도 그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사람 시체도 옮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
너와 나는 이제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자! 힘내서 끌고 가자!”
뒤뜰에 저의 아빠의 뼈를 묻은 곳까지 고라니인지 노루인지를 끌고 와서
딸과 나는 삽으로 땅을 팠다.
옆에는 피에 젖은 자루가 팽개쳐져 있고....
누가 보면 우리는 사람 죽여서 시체 묻으려고 모녀가 땅을 파고 있는,
더도 덜고 아니고 딱 영화에 나오는 그 장면이다.
"아빠는 오늘부터 심부름꾼이 생겨 좋겠구나!"
그렇게 죽은 짐승을 묻고 나는 집으로 와서 술 한 잔을 마셨다.
몸이 사정없이 떨려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제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뒤늦게 도착한 형부는 내가 고라니를 땅에 묻어버렸다는 말에
못내 아쉬워했다.
"아, 그것 참! 차에 치여 죽은 것은 안 먹어도 개가 물어 죽인 것은
최고의 보약인데.....
그런데 대단하네, 어떻게 그것을 둘이 끌고 와서 묻었지?
대단하네....사람도 묻겠네......"

짐승을 끌고 온 것이 내 딴에는 충격이었는지, 힘이 들었는지
그 다음날부터 앓아누웠다.
딸이 근심스러운 듯 묻는다.
“엄마, 많이 아파?”
“야! 이거 너의 아빠가 산짐승인 심부름꾼으론 부족해서  
아예 나를 데려 가 부려먹으려는 것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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