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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 아기를 품에 안고 내려다 보면/ 엄마를 보며 속삭이던 눈빛
우리 귀여운 아기의 맑은 눈동자/ 옹알대며 쳐다 보던 아기의 눈빛
젖 묻은 꽃잎 같던 입술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눕히며 엄마의 모든 사랑을 쏟아부었다.
귀여웠던 내 품의 아기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45쪽)

언제 다시 오려나/ 끊임 없는 기다림
살아 있는 명줄이 끊어지지 않는 건 기다림 때문이다.

기쁜 기다림은 힘이 된다/ 기다리는 것이 괴로워도 기다림 때문에
하루 하루를 견딘다. (53쪽)

외롭고 고독할 때는 누구라도 아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땅을 기어다니는 개미도 반갑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반갑다
구름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모두 내 친구다.

이 나이에도 병든 몸으로 꾸무럭 대야 밥을 먹는다.
내가 해 먹는 밥이 서러운게 아니라/ 아무도 마주하는 이 없는 밥상이 슬프다.” (54쪽)

이 글은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어느 할머니의 일기 일부분이다. (출판사는 [다음세대], 출판년도 1995년). 96년도에 구해서 읽었던 것을 요즘 다시 들쳐보는데, 이 글을 쓰신 홍영녀 할머니는 70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쳐 80세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글쓰는 일이 고마운 사실임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아마 학교에서 억지로 써야만 했거나, 평가 도구이상으로 자신과의 대화 또는 삶을 충족하게 만드는 글쓰기를 교육 받았던 적이 없었고, 학교를 나와서는 오로지 먹고 사는 바쁜 생활에 묻혀 글은 나하고 먼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홍영녀 할머니의 일기는 말하고 싶었으나 이를 표현할 수 없었던 세월을 살았던 분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저 문자 일 뿐인 글과 글쓰는 주인공 그리고 글을 읽는 대상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활이 변화될 수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며느리, 딸, 사위들과 손주들 사이에서 무능력하고 잊혀진 대상이었던 할머니가 감정과 슬픔을 체화하고 있는 인간임을, 고단했던 삶과 아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나아가 당신의 삶은 주변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끊임없는 걱정으로,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움으로 가득찬 숭고한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 고생스런 시집살이, 그러는 한 편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얻게 되는 여자로서의 행복감은 개인사이며 가족사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기록은 바로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였던, 자신의 의식 속에 머물러 있는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던, 아니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들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할머니는 사랑과 감수성이 넘치는 소녀이기도 하고, 작은 것에도 슬퍼하고,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면 도와주지 못하여 애를 끓는 어린이 같기도 하다. 작은 배려와 전화 한통에 너무도 기뻐하거나 생각없이 뱉은 사위의 말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는 여린 속내를 보이기도 하는 모습들에서 누구보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 받는 일에 목말라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아이도 80을 넘긴 세월이 흐른 지금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프게 살아있다. 아기가 죽은 추운 날이면
“쓸쓸한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깨끼옷 입은 불쌍한 무남이가 추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절이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다. 가여운 내 새끼야, 이 에미를 용서해 다오.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 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서 써 볼까
빌어 본들 무엇하리 울어 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 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 해가 솟아 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 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 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 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 마라
네가 울면 저녁 별이 숨는다.” (25-26)

세상에서 자신의 온 존재로 사랑할 수 있는 바다와 같은 사람. 이 분들의 사랑은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여 자식들 사이를 묶어주고 또 자식들의 자식들로 이어지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크고 소중한 사랑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음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들이 어머니들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니 너무도 신기하고 고맙다. 너무도 큰 사랑의 능력을 신이 여성에게 부여해준 사실, 이러한 무한한 사랑의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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