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말도 안돼요!! "

by 조원배 posted May 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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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어제와 오늘 아이들과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며칠 전 게시판에 옮겼던, 경기여고 정민경 양이 쓴 <그 날>이란 시도 들려주고, 동영상도 보여주고, 광주민중항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도 해주었다. 이 한 시간의 수업으로 광주 민중 항쟁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그리고 아이들 마음 속에 불행했던 우리 현대사와 그 안에서 우리들이 일궈온 저항의 몸짓들을 제대로 심어줄 수 있는 일은 더욱 쉽지 않겠지. 그럼에도 교단에 서던 해부터 지금까지 15여년 동안 나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이맘 때면 5.18 수업을 하고 있다.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사회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 쫑긋 귀울이며 관심을 나타낸다. 아이들의 그 관심이 매년 거르지 않고 5.18 수업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금 전 5.18 수업을 마치고 3학년 6반 교실을 나서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하는 말, “선생님, 전두환과 노태우는 지금 어떻게 지내요?”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뜸들이다, “음...아주 뻔뻔하게 잘 사는 것 같더라 ” 했더니, 그 아이 왈 “쌤, 말도 안돼요! ” 하고 분개한다. 그래서 “ 그럼 말도 안되구 말구. 그런데 말이다, 이 넘의 세상이 참 웃겨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이 우리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기도 한단다. ” 하려다가 그 말은 그냥 삼키고, 그냥 눈빛으로만, ‘그래 네 말이 맞아’하는  맞장구를 보냈다.


    둘.

   <그 날>이란 정민경 양의 시는 정말 뛰어난 시라는 걸 거듭 느낀다. 시와 별로 친하지도 않고 또 역사 의식도 빈약한 요즘 아이들, 고작 중3짜리 우리 아이들을 단 번에, 그것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아이들을 빨아들여 집중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내가 <그 날>이란 시를 읽어 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집중하는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만큼 고요한 정적이 교실을 휩싼다면 이 시가 지닌 위력이 설명 될까?


   셋.

  내가 광주항쟁에 대해 처음 접한 것은 85년이다. 이런저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지라 친구들보다 한참 뒤늦어 대학에 들어서던 해이기도 하다. 그 이후 독일 외신기자가 촬영했다는 비디오며, 대학가 서점에서 몰래몰래 숨겨서 사고 팔던 황석영의 <죽음을 너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통해,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연작시 <학살>을 통해 좀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광주항쟁을 가장 살떨리게 생생하게 마음으로 느낀 건 87년 겨울, 임동확 시인의 <매장시편>이란 시집을 읽고나서였다. 아마 87년 6월 항쟁이 없었더라면, 그때 그 시집은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으리라.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열기가 가득해진 탓에 겨우 세상에 나와 빛을 본 시집이었을 게다. 학살의 우두머리가 권좌에 앉아 서슬푸른 칼을 휘두르던 시절, 광주 광자만 뻥긋해도 유언비어 유포라는 죄목으로 잡혀가던 암울한 시대였다면 ‘그 날’의 생생한 모습을 살떨리게 기록한 이 매장시편들이 어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리.  그래서 광주항쟁 27주년이 되는 오늘, 그 매장시편에 실린 시 중 한편과, 이 시를 쓰고 나서 7년이 더 흐른 뒤에 같은 시인이 쓴 또 다른 시 두 편 그렇게 세 편의 시를 옮겨본다. 오늘 같은 날 더불어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 한 시라서......


            *                     *                      *


  나는 거대한 익명의 섬에 갇혀 무엇으로 살아 왔던가

  둘째날,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해 중앙국민학교  담벼락을 넘
었다. 행여 그 학교에까지 쫒아와 수색할까 봐 이층 복도에서
관망하다 황급히 5학년 몇 반 교실로 뛰어 들어 갔을  때, 공
포에 질린  어린 여자애들이 지르던 비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첫째날, 동명로에서 한 일곱살쯤 먹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학생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나이 먹은 경찰들을 무장해제시키
고 연행 학생과의 교환을 협상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바로
전 그 꼬마애와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꼬마야, 왜 울고 있
니?」「아저씨 그 돌멩이를 버리세요, 아빠가...... 경찰관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거리거리 골목마다 젊은 사람은 무조건 다 죽는다
고, 가지 말라고 손을 붙들던  어머니들은 그 후에 시위대에
물을 떠주고, 밥을 짓다,  제 아들 딸들의 돌연한  죽음을 확
인하며, 넋을 잃은 채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몇째 날인지 기억되지 않는 어느날, 송정리 광주 비행장 입
구. 구식의 무기로 무장한 청년들과 읍민들이 탱크와  M 16
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군대와  맞서 있는 동안,  그때까지도
흰 교복 상의 까만 주름치마가 단정했던 태극기를 든 사레지
오 여고생을 만나고 싶다. 「안돼, 저놈들이 순순히 귀가시켜
줄 리 만무해. 저들의 회유책이야」「그러면  당신이 이 사람
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사흘, …… 닷
새, 엿새, …… 열흘의 아픔을 견디고도 영창에 가고, 또다시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벗들. 나이와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그것마저 무시되기 일쑤였지만) 거리에  나와 육이오
보다 더 처참하다며 자신의 핏줄처럼 감싸주고  막아주던 사
람들……

  고립무원의 도시를 무차별로 사격하던 거리거리의 총탄 속
에서도
  무섭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선무방송을 하던
  여자 아나운서와 그때 그 현장을 가장 잘 목격했던 하수인
들과
  그것으로 진급한 지휘관들은 과연 누구였는지
  지금도  그때의 병사들은 국난극복기장을 자랑스레 간직하
고 있는지

  그들을 이제 한번쯤 꼬옥 만나고 싶다

  잘못은 누구에게도 있다
  그러나 모두 무너질 때까지 반성하지 않는다
  그렇다하더라도 이제 그들은 어떤 얼굴을 한 채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위험한 균형과 체제 속에서 무엇을 꿈꾸며.

  - 임동확, <매장시편 7_ 이제 그들은 무엇이 되어> , 87년 作 -  
  

   *          *          *


  그처럼 빨리 敵意를
  버릴 게 아니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지난 세월은
  끝까지 우리에게 가혹했고
  단 한 번도 善意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함부로 제 몸을 태우는
  자학의 시대를 불러왔다
  숨길 곳 없는 맹수 같은
  사나움은 길들여져
  자진하여 구린 삶의 동물원을
  기웃거리게 하고
  목말라 악취 나는 치욕의 강물을
  들이마시게 했다
  너무 성급하게 초월하려 들거나
  저만의 상처로 面壁하며
  결가부좌를 풀지 못한 탓이었다
  언제부터 그만의 치명적인
  독충 같은 그리움,
  큰 산의 제왕 호랑이 같은
  공격성과 야수성을 상실한 탓이었다
  더 이상 산을 옮기는 게
  기적이 아닌 교활하고 숙성한
  체제가 만들어낸
  추문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명예 회복을 꿈꾸며
  당당한 재기를 모색하는
  저 뻔뻔스러운 독재자 하수인
  도리어 맞고소해오는
  뒤틀어진 당대 탓만은 아니었다

  - 임동확, < 뒤늦은 깨달음>_心經 13, 1994년 作 -



  제가 확신하지 못한 생의 먼 길을
  누가 있어 믿고 뒤따르겠는가
  스스로가 두려워 눈 흩뿌리는 창가에
  밤새 켜둔 저마다의 등불이여
  그러다가 사위어간 말의 촛농들이여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발자욱마다
  이제 단물 빠진 껌 같은 점액질의 그리움
  그런 줄도 모르고 새어나오는
  검은 얼룩의 불빛만 폐허의 골짜기
  무책임한 시대의 그늘을 되비춘다
  그리하여 아무도 더 상처받지 않게
  점점 둥글고 풋풋한 향기로 퍼져오를 뿐
  문득 환한 경지를 이루는 너는
  더러운 추억들을 꾸역꾸역 토해내며
  얼어붙은 천년의 어두움을 가로지른다
  잠겨가는 지혜의 눈꺼풀을 여닫으며
  다시금 어떠한 맹세도 거부한다
  자진하여 저를 가둔 마음의 번데기 같은
  무거운 슬품의 껍질을 훌훌 벗어던지고
  여전히 기운 센 진리는 진리대로 황홀하고
  치욕은 치욕대로 남아 쓸쓸한 새벽 하늘을
  저리도 가벼이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제 목숨의 크기를 서서히 줄여가며
  더 낮고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하는 너는

  - 임동확, < 새벽의 빛 >_ 心經 7 , 1994년 作 -



2007년 5월 18일,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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