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딸과 압력밥솥

by 박명아 posted Jul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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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지……귀신이 곡 하겠네……’
아침부터 온 부엌을 홀딱 뒤집으며 압력밥솥을 찾기 시작한지 벌써 한 시간째다.
치매에 가까운 건망증이 있는 나는 항상 물건을 놓는 장소가 지정돼 있어 그마나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압력밥솥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어야했다.
그런데 지정된 장소에 있어야 할 압력밥솥이 보이지 않아 온 집안을 이 잡듯 헤집고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도둑이 들어 압력밥솥만 들고 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꼭 밥솥이 필요한 도둑인가……’
전기밥솥으로 한 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압력밥솥을 찾다, 찾다, 지쳐 기진맥진해 그만 찾는 것을 포기하고 아침밥을 빵으로 대신했다.
하루 종일 밥 대신 빵이나 군것질로 식사를 대신 한 나는 저녁에 남자친구 면회를 갔다 오는 딸을 맞았다.
그런데 딸년 손에 내가 그렇게 오매불망 찾았던 압력밥솥이 달랑달랑 들려있는 것 아닌가.
배신감과 어이없음에 나는 한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밥솥은 왜 가지고 갔었니?”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얘기한다.
“응, 그 애, 따뜻한 밥 해 먹으려고.”
“네 남자친구 뜨뜻한 밥 해먹이려고 어미 밥솥을 들고튀었니?”
“집에 전기밥솥 있잖아.”
“엄마가 전기밥솥에 한 밥 안 먹는 거 몰라?”
“그럼 냄비에다 하면 되지.”
“엄마가 압력밥솥에 한 밥, 좋아하는 것 알면서, 그렇게 뜨듯한 밥을 해 먹이고 싶으면 네가 냄비를 가져가지 그랬니?”
“냄비는 금방 밥이 안 된단 말이야. 국방을 위해 수고하는 군인을 위해 엄마가 한 번은
참아주면 안 돼?”
고생하는 군인에게 정신교육까지 단단히 받은 딸이다.
“그래, 국방을 위해 고생하는 군인을 위해 어미 밥솥까지 들고튀어 면회 다녀오느라 고생했다. 왜, 고생하는 군인을 위해 이 집도 떠메고 가지 그랬니?”
“응, 그러려고 했는데 그 건 떠메 지지가 않더라고, 에이, 엄마, 그러지 말고 자주국방을 위해 애쓰는 군인을 위해 고통분담을 분담해야지, 그러니 하루 정도 봐줘.”
나는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년이 내 딸 맞나, 내가 도둑년을 키우지, 자식 믿고 살 것 아니구나…… 사랑을 위해서는 자명고도 찢는다더니…… 넋 나간 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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