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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남북 정상 지도자의 평화선언이 있던 날의 오후, 유난히 고엽제 전우회란 빨간 표찰의 해병대 전투복을 입은 노병들이 무임권을 타가는 모습이 부쩍 많았다. 난 이들에게 우리의 선배로서의 존경심은 차치하고, 어쩌면 저렇게 추하게 늙을까하는 딱한 마음뿐이다. “고엽제 전우회”가 온전하게 그 본연의 이름 값을 하려면 미국정부와 이유도 모른 채 베트남으로 파병시킨 박정희 정권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여야 할 텐데, 이들은 지난 3.1절에도 각이 반듯하게 진 해병대 제복에, 요란한 악세사리로 철렁거리는 모습을 이촌역에서 보여주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시청으로 집결하는 중이었다. 아마 이들은 오늘도 김정일 정권에게 대한민국을 헌사하고 돌아오는 역적 노무현에게 계란을 던지려고들 저리 부산인 모양이었다. 뉴스에서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 나의 짐작은 그리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 그를 직접 맞이하기 위해 나타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에 “어, 김위원장이 직접 나왔네”하며 모처럼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믿음에 약간 들떠 있던 나는, 공익 친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나 처럼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저거 다 쑈에요. 전 하나도 관심이 없어요” 우리역에서 공익근무를 하는 고려대에 재학 중인 친구의 말이다. 난 그 녀석의 한 순간의 주저함이 없이, 그리 간단명료하게 “쑈”라고 하는 말에 어디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오늘, 출근하기 위해 역곡역에서 서울행 전철에 간신히 몸을 낑겨놓은 전동차 안,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든 빽빽한 그곳에서도 그들은 제 각각 지하철 역 입구에서 들고 온 무가지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난 내 손으로 무가지를 짚는 추한 행위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다. 매표실 책상에 무가지가 널려 있는 것이 곧 나의, 지하철 노동자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놓고는 하는 그 가볍고 가벼운 찌라시들이 전동차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루에 주어진 조금의 틈새 마저 혼과 해설이 빠진 인스턴트 같은 가벼운 기사로 세상을 만나고 스포츠와 연예기사를 서비스하는 것을 저널리즘의 의무로 여기는 듯한 무가지들의 세례에 흠뻑 빠진 우리 월급쟁이의 시민들과, 해병대 옷을 입고 철커덕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인생의 연륜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고엽제 전우회 할아버지나, 대학생인 것이 이제는 고등학교 가듯 하는 세상에서 ‘지성’이라고는 느껴볼 수 없는 우리들의 대중지식사회의 신세대들을 관통하는 어떤 공통의 장막 같은 것을 느낀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씨앗을 피워낼 토양이 없어진다는 어떤 두려움, 사회적인 이슈와 민족의 문제를 자기의 삶과 도무지 연결시킬 사회적 인식능력이 퇴화된 우리 천박한 시민사회의 기반위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우파 반동주의의 싹이 움트는 그런 소름끼치는 우울함을 느낀다. 오늘도 연예기사와 스포츠, 게임이 일상사 관심의 모두인 우리 시민사회에서 모처럼 고개를 내민 평화의 싹은, 무지와 맹목, 과거의 두려움과 권위를 자양분으로 삼아 기이한 소리를 내는 하이애나 떼 들에 의해 이리 저리 물어뜯길 것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싹을 지켜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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