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07.11.17 04:35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 자신을 알지 못할 때는 무서운 줄 모르고 글을 썼다. 쓰고 싶어서,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겁이 난다.

글쓰기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나의 실력이 여지없이 들어나는 날이라 우울하기가 짝이 없다.
‘그래, 내가 글 쓰는 것으로 밥 먹고 살 것도 아니고, 그냥 치매예방차원에서 공부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비우지만 그래도 우울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교수님은 나에게 논픽션 작가가 되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말씀하신다. 그것은 내가 글을 예술로 승화할 자질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글을 문학으로, 예술로 승화할 자질이 나에게 없는 것은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을, 문학으로, 예술로 승화시키라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주문인지도 모른다. 글은 나의 생활이었으므로.
글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겐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 치장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아름답지 못한데 어떻게 아름답게 꾸미라고 하는지, 덴장. 그것은 나에겐 본심을 적당히 숨기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내숭을 떨라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리얼리스트인 내가 내숭을…… 너무 어렵다. 나의 식성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식하게, 용맹스럽게 감악산에서 마적단 딸로 살면서 문학이 아닌 글을 쓸 때가 좋았는데 무엇 하러 내가 문학을 배운답시고 다 늦게 문창과에 들어와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되도록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 글을 쓰라는 것인데 나의 눈엔 인간의 삶이 치열한 전쟁이지, 그들이 말하는 예술로는 도통 보이지 않는데 어쩌랴,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문학은, 나에겐 진실을 적당히 미화시키라는 요구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에 회의가 들 때가 많다. 하긴, 냉혹한 진실을 적당히 아름답게 꾸며 독자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것이 문학이 해야하는 소명이라면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정확히 알아야 살아갈 용기를 갖는 나의 삶의 방식으론 도통 용납이 안 되지만.
아픔과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좋은 뜻이다. 그렇지만 고통과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여유와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미화시키라고 요구하는 문학가들, 그들은 어쩌면 남의 아픔과 고통을, 지식의 힘을 빌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 한다면 내가 너무 무식한 건가, 매일 책을 평균 한 권씩 읽고, 일 주일에 한 편씩 단편 소설을 쓰고, 좋은 문장은 달달 외우고, 필사하고, 말줄임표 자주 사용하지 마라, 들여쓰기 해라, 같은 어구는 자주 사용하지 마라, 낮설게 만들어라, 자신의 주장이 확실히 들어나면 싸구려 같다, 그러니 적당히 베일을 쳐라,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공식에 맞춰 달달 외우고, 공부하는 것이 글쓰기 인지, 그렇게 문학이 틀에 맞춰 배워지는 것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 얼어버리면 행진하는 군인이 같은 쪽 손발이 올라가는 것처럼, 그들이 요구하는 문학, 즉 예술에 경직되고 얼어버려 당분간 나의 글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
세상모르고 무식할 때가 좋았던 것 같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085 주역읽기 첫 모임이 2월 8일에 있습니다. 1 심은하 2006.02.03
2084 누구 뚝섬 가까이 사시는 분....???? 5 김인석 2006.02.07
2083 펌] 미국에서 본다 1 한혜영 2006.02.09
2082 이런 것 올려도 되나요? ^.^ 7 이승혁 2006.02.09
2081 [re] 신청자 1차 교통정리 2 이승혁 2006.02.09
2080 헉~ 3 남원직 2006.02.10
2079 신륵사 江月軒에서 본 월출 2 그루터기 2006.02.11
2078 교육공동체 두리하나에서 함께 일할 분을 찾습니다! 두리하나 2006.02.13
2077 반성 2 서순환 2006.02.13
2076 [re] 순환형의 머리를 잡아당긴 우리의 손길 3 황정일 2006.02.14
2075 정월 대보름의 나무야 나무야 기행, 그리고 씨앗 1 배기표 2006.02.14
2074 [2006년 2월 열린모임] 함께가기-정산 그루터기 2006.02.14
2073 근황 18 이상원 2006.02.14
2072 프레시안 [이야기옥션] 출품작 '百鍊剛' 판매수익금을 기탁 하였습니다. 1 그루터기 2006.02.15
2071 그 한이 없는 포용 # 포용 2006.02.19
2070 발발이 2월18일 모임 후기 5 김 광 명 2006.02.19
2069 쉼표 1 장지숙 2006.02.21
2068 안녕하세요^^ 2 파란 2006.02.23
2067 봄을 기다리는 길목에서 2 박경화 2006.02.24
2066 3월 4일 토요일 경복궁 남사당 놀이 구경... 2 김세호 2006.02.28
Board Pagination ‹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