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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11.17 18:36

도정기(道程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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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 보셔야죠."
"요즘 여자들은 다 불여시지라우."
밥을 먹기 위해 우금산자락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섰을 때 음식을 준비하시고 있는 분은 일흔둘이라지만 이보다 10년 또는 20년은 더 늙어보이는 노보살님이었습니다.
온기없는 찬 방에서 밥과 청국장을 먹어야했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셨기에 도반 스님과 저는 밥 한공기를 더 시켜 나누어 먹었습니다.
시집 온지 오십년이 되었는데 이 고생이고, 아들은 나이가 오십인데 장가를 아직 못들었다하니 노보살님의 푸념과 원성은 잘 들어두어야만 했습니다.
시절이 너무 변해 있고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보살님을 탓하기도 전에 양손과 얼굴이 온통 주름투성이인 모습이 먼저 가슴에 와 닿고 말았지요.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저는 노보살님의 손목을 꼭 잡았습니다.
"좋은 며느님 꼭 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노보살님은 합장해 주셨습니다.
개암사.
대웅전과 우금바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
언젠가 부안의 변산반도 해안을 둘러보면서 이 아름다운 모습은 옆의 산들과 늘 함께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저  내륙 속으로 들어가보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 코스는 개암사에서 산길을 따라 내소사까지일거라는...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개암사 경내를 벗어나 임도(林道)를 따라 걷다가 등산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하루 일정이 잘 풀려지리라는 기대가 스며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스런 마음이었습니다.
산 능선위에 올라서니 남북을 가로지르는 산길이 나왔고 우금바위가 있는 북쪽의 오른 방향으로 길을 걷다보니 다시 왼쪽과 오른쪽 양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바닥을 보게 되었는데 복사용지 반만한 크기의 종이 위에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산과 희망

그리고는 계속 직진하라는 손모양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패철과 휴대용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지요.
제가 가야할 방향은 내소사로 분명 남서쪽이었으므로 그 가리키는 방향은 북쪽으로 거의 반대와 가까웠으므로 '산과 희망'을 버리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고 말았습니다. 패철이 가리키는 방향에 준하여 여러 봉우리들을 넘고 넘었습니다만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소사로 가려면 마을을 한번 지나야 한다는 노보살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걷다가 큰 봉우리-이 봉우리는 나중에 알고 보니 삼예봉이었습니다-를 넘어서니 저 멀리 마을길이 보이고 저수지가 보였습니다.
남서쪽을 패철은 마을길보다 저수지 방향으로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갔지요.
내려가 보니 제법 큰 저수지로 제가 위치한 곳은 물길들이 모여드는 상류였습니다. 임도가 나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막한 것이 마을길로 이어지는 길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쪽 산자락 어디에도 저수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없었고 가시덤불과 풀숲을 헤치며 가고자 했으나 무기력했습니다.
물길을 따라 나있는 임도(林道)에 다시 섰습니다.
그 도로는 개암사 방향으로 나있었지요.
개암사 위 능선길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예감이 들었으나 거기까지 찾아간다는 일도 간단치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산길은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직감과 어렴풋한 기억 속의 경험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우금바위가 보이는 산능선에 다다르자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왼쪽 방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금도 '밥과 희망'이란 용지는 길바닥에 놓여 있을까?
이 때 저 멀리 우금바위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선 낯선 두사람이 제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지요.
등산객 차림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내소사를 가려다가 길을 잘못들어 헤매고 말았습니다. 이 길로 가면 맞습니까?"
앞의 사람에게 물었는데 사복입은 머리짧게 깎은 뒤의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예, 이 길 따라 가시다가 우금바위 못미쳐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십시오."
좁은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아까전에 올라왔던 개암사로 이어지는 길을 만났고 '산과 희망'의 용지가 있는곳에 이르렀습니다.

   산과 희망

그대로 있었습니다. 손모양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좋아라, 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 시작했습니다.
우금바위 못미쳐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접어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예의 '산과 희망'이란 용지가 길바닥에 놓여 있었지요.
그런데 그 용지에는 손가락 표시가 왔던 길로 가라는 손모양이었습니다.
우금바위에서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구요.
이번에는 '산과 희망'을 믿기로 했습니다.
다시 뒤돌아섰습니다.
방법은 개암사로 내려가느냐 아니면 헤맸던 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길로 접어드느냐였습니다.
포기냐 계속하느냐였지요.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헤맸던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길만이라도 보이면 내려갈 심산이었습니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마을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보였습니다.
헤맸던 길에서 길을 찾은 것이지요.
다시 좋아라, 뛰다시피 내려갔지만 이내 길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밭둑에 발을 내려놓았습니다.
옷을 털고 신발도 털었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다리를 건너 도로에 올라섰습니다.
저쪽 배추밭에서는 두 분의 아주머니가 일을 하고 계셨고 도로 건너편에는 이 마을 주민 한 분과 사복입은 머리 짧게 깎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사복입은 머리 짧게 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이 있던가요?"
옆에 있는 마을 주민 한 분은 입을 한 손으로 막고 계셨지만 저는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암사에서 오는 길인데 길은 없습니다."
상서면 청림리 노적마을.
가게에 들러 내소사 가는 길을 물었고 연양갱과 과자 한봉지도 샀습니다.
농촌의 저녁 풍경을 만끽하며 두시간여의 길을 마냥 걸었습니다.
차량 몇 대가 오갔을 뿐 내소사로 가는 길은 적적(寂寂)하였습니다.
드디어 내변산 입구에 도착하였지요.
날이 어두워 손전등으로 불을 밝혀야 했지만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고개까지 오는 길은 그야말로 내적 충만으로 가득한 산책로였습니다.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습니다.
예전과 같이 맑은 밤하늘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는데.
재백이고개는 참으로 친근한 이름이었습니다.
고갯길의 살가움을 더하기 위해 '백이'라고 했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어쩐지 남자 이름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다면 정겨운 얘기도 있을 것 아닙니까?
문화재에는 거기에 따른 안내판과 설명이 있듯이 앞으로는 마을의 토속이름이나 바위, 고개, 전설이 깃든 곳에 안내판과 설명을 적어 알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의 농촌은 예전의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않나 싶어요.
각 지역 문화원에 있는 자료를 끄집어내고 아직 살아있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전수한다면 미래에,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날,
삶과 정서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정오 무렵부터 시작한 산행이 재백이고개를 지나 관음봉삼거리를 올랐다가 내소사 일주문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 35분이었습니다.


    









고갯길의 살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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