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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12.06 16:18

한해를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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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열었습니다.
순서없이 넘긴 쪽에 마침 이글이 나왔습니다.
올 한해도 돌아보면 제 자신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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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봅니다.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바다의 노인'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언제 한번 온몸으로 떠맡은 일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만 달리는 일이 부질없기가 얼음 쪼아 구슬 만드는 격입니다. 그나마 내 쪽에서 벼리를 잡고 엮어간 일관된 사색이 아니라 그때 그때 부딪쳐오는 잡념잡사(雜念雜事)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연습 같은 것들이고 보면 빈약한 추수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위에 정직한 최선을 다하지 못한 후회까지 더한다면 이제 문 닫고 앉아 봄을 기다려야 할 겨울이 더 길고 추운 계절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숱한 가을을 보내고 맞는 동안 가을에 갖는 우리의 회한이 결코 회한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압니다. 풍요보다는 궁핍이, 기쁨보다는 아픔이 우리를 삶의 진상(眞相)에 맞세워주는 법이며, 삶의 진상은 다시 위대한 대립물이 되어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인식은 일견 비정한 듯하나, 빈약한 추수에도 아랑곳없이 스스로를 간추려보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가을에 흔히 사람들은 낙엽을 긁어모아 불사르고 그 재를 뿌리짬에 묻어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나무의 식목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나무를 북돋우는 시비(施肥)입니다. 가을의 사색도 이와 같아서 그것은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짐하고 챙기는 '약속의 이행'입니다. 이 평범한 일상의 약속들이 다짐되고 이행된 다음, 나중에야 비로소 욕심이 충족되더라도 되는 것이 응당한 순서이리라 생각됩니다. 가을에 갖는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이란 기실 조급한 욕심이 만들어놓은 엉뚱한 것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잊고 있는 약속들을 찾아서 거두는 조용한 추수의 사려 깊음은 시내에 놓인 징검돌이 되어 이곳의 우리들로 하여금 섣달 냇물같이 차가운 징역을 건네줍니다.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형수의 자리……. 숱한 자리마다 올 가을에 큼직큼직한 수확 있으시기 바랍니다.

198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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