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무시하고 성공한 사람들

by 안중찬 posted Jan 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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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자다브 - 신도 버린 사람들]

출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을 "신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차원에서 해석하는데 반해 나는 "신도 버리고 성공한 사람들"로 해석한다. 신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많은 부당함과 함께 신도 버렸다고 말이다. 물론 영문으로 된 원제목은 이것과 달리 Untouchables (불가촉천민 - 不可觸賤民)이다.

인도...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지만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나라이다. 수 많은 문학과 철학, 기행문 등으로 인도를 경험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계층간 차별의 문화가 있다. 아웃카스트 혹은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정말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 수 많은 인도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다무는 그 부당한 계급사회에 저항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후세들에게 길을 터준 평범하나마 위대한 불가촉천민 중의 한 사람이다.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로 바로 그 다무의 막내 아들이다.

달리트 출신의 다무와 소누 부부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불가촉천민의 비참했던 일대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아들로서 전세계가 인정하는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이 된 '나렌드라 자다브'의 관점으로 행복하게 마무리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그들의 손녀이자 나렌드라의 딸 '아푸르바 자다브'가 그 어떤 구김살도 보이지 않는 행복한 현실을 이야기 한다. 신은 그들을 외면하고 버렸지만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일을 나선 아버지를 몰래 따라나선 다무는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했다.
"바바(아버지), 물 마시고 싶어요."
"아이고, 아들아, 우리는 마하르야. 물을 건드릴 수 없어. 그랬다간 물을 더럽혔다고 벌을 받게 된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거기서 물을 마실 수 없게되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타이름을 들으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개 한 마리가 물통에서 물을 핥고 있었다. 다무는 그 때 처음으로 마하르보다 차라리 개로 태어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신분에 큰 좌절을 느낀다.

남아시아 인디아를 한반도로 치면 인천 정도에 해당하는 아라비아해 연안에 위치한 뭄바이, 1995년까지 봄베이(Bombay)로 불리던 그곳이 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이다. 성장하여 뭄바이에서 고단하게 생활하던 주인공 '다무'는 불가촉천민으로서 의무인 '예스카르'를 실행하기 위해 귀향한다. 밤새 굶주리며 저수지에 빠진 시체를 지키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구걸할 권리를 겨우 얻는 등,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다가 그 부당함에 항거하는데 몰매를 맞게 된다. 그는 차라리 뭄바이로 떠나는 게 낫겠다고 역시 별다른 희망이 없는 뭄바이로 다시 떠난다. 그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며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답게 살기만을 희망하는 것이다.

전생에 죄를 지었기에 불가촉천민이 되었다는 황당한 논리에 순응하는 사람들... 아무도 그 증거도 없는 논리를 펴며 힌두스탄들은 수천 년 동안 자기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불가촉 천민들을 학대하며 살아온 것이고, 그 1억6천명의 천대받는 사람 중에 다무와 소누 부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다무의 정신적 지주인 바바사헤브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1893.4.14~1956.12.6)이다. 그는 불가촉천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장학금으로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본과 영국 런던에서 수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인도의 관리가 되었으나 차별에 의해 사직하고, 변호사와 하층민들의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불가촉천민 일만 명을 상수원인 저수지로 이끌고 가서 물을 마시게함으로써 '불가촉천민의 물 마실 권리'를 세상에 선포했다. 그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마실 물도 얻어먹을 수 없는 이 땅을 조국이라 부르겠는가?"라며 투쟁을 시작했고 여성과 천민의 자유와 권익을 헌법에 명문화시킨 위대한 지도자이다.

"소니. 네 남편이 너의 신이다. 토 달지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그가 무슨 일을 하건 그를 온전히 받아 들여라. 이제 너에게는 남편 뿐이야. 죽어야만 그의 곁을 떠나게 될 거야."


남편 다무를 따라 뭄바이로 시집가던 날, 소니(소누)가 친정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녀는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이 말을 가슴에 담고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남편이 바바사헤브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자고 말했을 때 순종하지 않는다. 남편 다무에게 바락바락 대들며 자신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절대로 개종하지 않겠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녀가 자기 자신만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반항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이 행동은 놀라운 변화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책임은 다름 아니라 아내에게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글을 읽게 하고 강연장에 데려가는 등 자아를 찾아준 남편 다무에게 있는 것이다.

소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고 설득력 있는 다무의 노력으로 그들은 불교에 귀의한다. 1956년 10월에 바바사헤브와 그를 추종하는 50만명과 동시에 개종하였는데, 그 대열에 우리의 주인공 부부가 포함된 것이다. 그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단일 개종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바사헤브는 힌두 사회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그 차별받는 선천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의 하나로 개종을 선택한 것이다. 죽은 이후를 다루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겠느냐며 수천 명의 달리트가 운집한 뭄바이의 한 강연에서 자신은 힌두교도로 죽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온나라는 충격에 빠진 이 선언에 맞서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정치쇼라고 일축했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이끌어 낸 것이다. 같은 힌두교도라도 일반인들과 달리 불가촉천민은 사원에 들어가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도 없었으니 그들의 개종은 매우 당연한 자기변호의 행위였던 것이다.

다무는 암베드카르 박사(=바바사헤브)의 강연이 끝난 후, 두 아들(자누, 디나)의 어깨를 움켜잡고 사람들을 밀쳐내면서 암베드카르 박사 앞으로 나갔다. 두 어린 아들은 겁에 질렸지만 그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인 후 이런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자네 아이들인가. 다무? 학교에 보내게······ 잘 가르쳐······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거야."

다무는 그 분위기에 압도 되어 평생 그 순간을 영광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큰 형의 질문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내 아들(이 책의 저자)은 형들에게 그렇게 되면 빈털털이 거지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에 상처받고 훌쩍이는 막내 아들을 위로한 것은 아버지 다무였다.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 뿐이야. 뭘 하든 최고가 되라는 것. 도둑이 되고 싶어? 좋아. 하지만 솜씨가 대단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해.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고 '야, 진짜 훌륭한 도둑이다! 어쩜 이렇게 솜씨가 대단할까?'라고 감탄하게 만들란 말이야. 그것보다 못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돼. 알아들었니?"


다무와 소누 부부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 심각하고 진지한 자전적 일대기는 뒤쪽으로 가면서 이 책의 실질적인 저자인 나렌드라의 관점으로 바뀐다. 나렌드라는 어려웠던 순간들을 추억하면서 승리자의 여유를 갖고 편안하게 글을 쓴다. 그는 가족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공개하여 독자들에게 딱딱한 이야기 대신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큰 형 자누가 여러 난관을 헤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을 때, 그렇게 어렵다는 IAS에 들어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 기쁜 소식을 지인인 샤스트리 박사가 전보를 보냈다. 전보를 전달하는 집배원은 물론이고 집안에 영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디나 형밖에 없었다.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들어 있던 디나 형을 깨워 전보를 읽게 했을 때 원문은 "J.D.자다브 아이에이에스에 가다."였는데, 비몽사몽 잠결인 그는 "J.D.자다브 이 세상에서 가다."라고 읽고, 형이 죽었다며 비명을 지르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 난리법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다른 친척이 제대로 읽을 때까지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비통했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

다음의 대화는 애완동물 키우기가 금지된 포트 트러스트 공동숙소에서 법을 위반한 바이(어머니 소누)의 재판 이야기다. 이 웃기면서도 허탈한 낙담할만한 재판 과정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반드시 훌륭한 교육을 시켜 사헤브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바이, 집에서 염소를 키웠나요?" "네, 사헤브." "10루피의 벌금에 처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염소가 필요해요."  "벌금 15루피."
"사헤브, 우리 아이들에게 젖을 먹여야 해요."  "20루피."
"하지만 사헤브,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요?" "25루피."


다다(아버지 다무)는 자신을 간호하던 피부가 까만 간호사에게 '까무잡잡'이란 별명을 붙여줬고, 그 간호사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까맣기로는 할아버지도 만만치 않으세요."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자네처럼 반만 까맣다 말지는 않았다고. 내 까만 색은 아주 순수하고 강하지. 물이 빠지면 돈을 환불해줘야 해!"


1986년, 미국에서 돌아온 나렌드라가 밤새워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 바이는 그렇게 죽도록 일만 할 것이라면 뭐하러 박사가 됐냐고 푸념을 하는데, 다다는 이렇게 말한다.
"박사학위는 운전면허 같은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땄다는 것은 운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걸로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하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


1989년초, 나렌드라는 에디오피아에 파견 근무 중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 다다는 여유롭게 농담을 던진다.
"미국이 네 피부를 희게 만들지 못하더니 아프리카도 너를 까맣게 만들지 않았구나!"

다다가 세상을 떠나고, 나렌드라가 국제통화기금 자문관, 인도 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푸네대학 총장 등으로 명성을 날릴 때 한 기자가 어머니 바이와 인터뷰를 했다.
"다다를 한 마디로 표현 하신다면요?"
"말할 수 없이 까맸지만,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고, 나를 한 번도 학대하지 않았어요. 가장 좋았던 것은 나를 때리려고 손을 쳐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죠."


바이는 까마귀에게 모이를 주면서 그 까마귀가 다다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매일 식전에 까마귀를 찾아 먼저 모이를 주면서 "자다브가 온 것 같으네"라고 중얼 거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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