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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22:50

유선기선생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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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가져 보았던 막연한 의심들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중의 하나가 '마음'의 본질에 관한 생각일 겁니다.
  
정말 마음은 정신일까요, 물질일까요? 그리고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다니얼 데닛이라는 학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의 견해에서 문득 돈오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마음은 "물질"이며,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도 데닛의 치밀한 논리와 도킨스의 지적 권위에 눌려, 적극적 저항보다는, 그럴수도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여러 생각들을 혼란스럽게 해보는 과정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제가 결론을 낸것은 아닙니다만...

좀 서론이 길었지요? 왠지 모르게 뜬금없는 서두가 된 느낌입니다만 여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이틀의 시간을 통해 나는 마음이 비물질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무척 '따뜻한'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질' 스스로는 어떠한 외부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따뜻'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이틀의 내 마음은 따뜻하고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찼었으니, 마음이야 말로 물질이 아닌 그 '무엇' 아니겠습니까?

'따뜻'했습니다. 유선기 선생님!
비록 날씨는 궂고 쌀쌀했지만 유선생님이 보여주시는 해맑은 모습과 마음은 너무도 훈훈하여  쌀쌀한 빗속에서도  살포시 핀 허난설헌 생가의 하얀 매화를 보는 기쁨 이상으로 따뜻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이승혁 형님이 함께 강릉 방문 하자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유선기 선생님이 승혁형님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요.저도 함께 말이죠.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초대해 주신 유선기 선생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유선기 선생님을 만나는 멋진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소박하면서도 어쩌면 대단히 낭만적인 것이었습니다.

눈오는 어느날... 분명 눈이 있어야합니다. 무작정 청량리역에서 강릉행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이때의 열차여행에 지불하는 긴 시간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이 주는 편리함은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찰의 시간, 정리의 시간, 설레임의 시간이기에 열차가 가져다 주는 '느린 부지런함'은 이런 낭만적 시나리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지요.

기차에서 목을 축이는 알싸한 맥주의 시원함, 적당한 사색후 막간을 이용해 미리 준비한 깔끔한 읽을 거리을 꺼내드는 여유, 적당히 오르는 취기, 하얗게 펼쳐진 기차밖의 설원, 뭐 이런것을 뒤로 하고 무작정 강릉역에 내려서 유선기 선생님께 연락을 하고 , 이때 유선기의 놀라고, 조금은 당황하는 모습은 이 시나리오의 긴장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로 만나서 계획되지 않은 즐거움을 나누며 한 잔의 술과 대화로 시간을 보내다가, 유선기 선생의 집요한 일박의 청을 기분좋게 거절하면서 서울행 마지막 야간 열차를 타고 , 기차와 같이 짙은 밤 어둠을 함께 타며 깊은 잠에 빠지는...

제가 이런 낭만적인 시나리오를 짜게된 이유는 유선기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신영복 깊이읽기"에 참여한 유선생님은 정말 다른 여러분들과 함께 저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강릉에서 서울로 시간 맞추어 오기도 힘들텐데 늘 그의 가방속에는 회원들에게 줄 따뜻한 선물 보따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누룽지과자든, 과일이든,말린문어든 혹은 오징어젓갈이든지 간에 ,저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자기 아닌 남을 생각하며, 자기 것을 채우기도 모자란 작은 가방에 바리바리 선물을 집어넣는 유선기 선생님의 얼굴 모습을 가끔씩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이승혁 형님께 술이취해서 호기있게 떠들었습니다." 눈오는 날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유선기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지난 이틀의 일정은 제가 당초에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진행 되었습니다만 그것은 시나리오 보다 더욱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멀리서 온 두 명의 지친 친구들에게 그가 보여준 마음은 정말로 따뜻했습니다. 그냥 기쁘고, 반갑게 시작했지만 저는 유선생님을 통해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질인 마음'에는 없을 것이 분명하고, 제가 그려 보았던 시나리오 보다 훨씬 강력한 그런 것 이었습니다.

" 바람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마음의 리듬을 맞추는 것이 풍류다. 한 자락 자유만 있다면, 스치는 봄바람에서도 풍류를 지어낼 수 있다. 때론 가난하고, 때론 고달프다 해도 풍류를 잃지 않음은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 이승수 경희대 연구교수-"


3월2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이 기사는 적어도 제가 느낀 마음의 실체가 특수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많은 옛사람들은 그것을 "풍류"라고 했습니다만 풍류 역시도 따뜻한 마음을 전제로 한다고 볼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오

내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 옴세

백년 덧 시름 없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 김육(1580~1658)- "

지난 이틀동안 우리는 "마음의 리듬"을 맞추어 보고 " 백년 덧 시름 없을 일"을 논했습니다. 방법은 근 현대가 만나는 "퓨전"이었고요.


- 늦은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의 만찬, 한 조끼의 맥주잔을 앞에 둔 시간, 봄비 내리는 상큼한 초당마을의 허난설헌 생가, 솔밭의 산책과 대담, 대자연의 풍광에 어울리게 장대하게 우뚝서있는 굴산사지의 당간지주, 생뚱맞았지만 너무 즐거웠던 야구 연습장에서의 배팅연습....,-


그 와중에 본 유선생님의 개구장이 아들 한울이의 아빠에게 주는 편지는 가뜩이나 포근했던 제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이승혁 형님의 부설거사 같은 해맑은 미소는 말할 것도 없구요.

돌아오는 길에 승혁형과 저는 다시 한 번 유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릉 터미널에서 유선생님과 나눈 포옹과 아쉬움의 빛이 역력한 얼굴 모습에 대해 말입니다. 그 순간의 강렬한 감동은 " 물질이냐, 정신이냐" "풍류냐, 일상이냐" 같은 논의 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유선기 선생님!
이승혁 선생님!
나중에 다시 더불어숲 친구들과 여럿이 모여 "백년 덧 시름 없을 일"을 논할량이면 저의 이 마음을 한 번 큰소리로 전해주지 않으시렵니까?


                           2008.3.30     임꺽정이 놀던 계양산 밑에서 정한진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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