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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8 23:19

명아의 우울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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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에 해체주의에 대한 발표를 마치자 교수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질문을 한 교수는 전임교수이니 물론 지식이야 상당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교수법이 너무나 어려워서 솔직히 말해 무슨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애매한, 언제나 내겐 어렵게 느껴지는 강의를 하는 교수였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누구에게 배웠어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다. 누구에게 배웠냐고 출처를 묻는 것은 왜일까, 혹 내가 잘못 발표했다면 강의를 한 강사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강사는 요즘 나에게 학교를 다닐 의미를 주고 있는, 애매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을 명료하게 보이게 해 준, 나로 하여금 눈을 뜨고 살맛이 나는 배움의 기쁨을 주고 있는 강사 아닌가, 잠깐 고심하다 대답했다.
“책을 읽고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겁니다.”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자 다른 학생 한명이 질문을 했다. 그러자 교수가 다시 그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은 라캉을 어떻게 알았지?”
“저 개인적으로 라캉에 관심이 많고요……”
제발 거기까지만 해라, 거기까지만……, 속으로 나는 그렇게 빌었다.
"ㅇㅇㅇ교수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순간 난 그년을 죽이고 싶었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너무 심술 맞고 불량스럽게 생기고 하는 짓도 예쁘지 않아서 속으로 싫어하던 년인데 생각까지 짧다. 여자인 나도 예쁘고 착한 여자가 좋다. 라캉을 강의한 강사를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름답고 날씬하고 멋쟁란 점이다. 난 아름다운 그녀가 강의하는 날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올까, 오늘은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로 나타날까,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지식을 배워줘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를. 강의실 문이 열리고 날렵하고  찬란한 금빛 제비가 물결 위를 스치며 솟아오르듯 우아한 걸음걸이로 그녀가 강의실로 들어서면 세상의 우중충한 모습들에 우울하고 답답했던 내 눈이 갑자기 시원해지며 행복해진다. 아름답기까지 한데 명석하게 강의를 하는 모습은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모습처럼 마음 또한 천사 같아서 늘 우리를 격려해 주고 지식에 굶주리고 목마른 우리들에게 시원한 물을 입에 넣어주는 보석 같은 존재다.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누굴 사랑하랴, 여자인 내 마음이 이럴진데 남자들 마음은 어떠랴, 난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가슴이 져릴 정도로 충분히 이해한다.얘기가 잠시 딴 곳으로 흘렀다. 교수에게 어떻게 라캉에 대해 알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심술궂게 볼에 살이 울퉁불퉁 붙은 엄청 저렴하게 생긴 년의 입에서 누구에게서 배웠다는 말이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염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여러분이 라캉을 안다니 정말 의외인데요. 지금 발표한 사람이 맞는 말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우기는 점도 많습니다. 라캉은 해석이 여러 가지라 누구의 해석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상상계와 상징계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외에 실재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상상계를 느낄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실재계입니다. 실재계는 허탈이고 곧 죽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라캉은 프로이트의 제자가 아니라 그의 학설을 이어받아 재해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발표를 할 때 등이 보이게 써가며 발표를 하면 안 됩니다. 전부 알아볼 수 있게 옆으로 서서 써가며 설명을 해야합니다."
"네, 교수님. 제가 혼자 멋대로 해석을 한 것이라 엉터리일 겁니다."
내가 순순히 수긍하자 교수는 웃으며 설명을 마쳤다.
그래, 삼류대학 학생들이 라캉을 안다니 의외겠지. 하지만 삼류대학 학생들이니까, 뒤지지 않게 부족한 부분은 더 배워주고 격려해줘야 되는 거 아닐까. 내가 다 알면 왜 밤잠을 줄여가며 황금 같은 시간을 바치고 비싼 기름값 써가며 대학을 다니겠는가. 누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삼류대학과 일류대학의 차이점은 간단하다.
일류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존중한다.  하지만 삼류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무시한다. 그래서 삼류대학은 영원히 삼류대가 되고 일류대는 영원히 일류대가 되는 것이다.

“대학원 가면 외부강사에게 강의 듣니?”
조교와 점심을 먹던 내가 물었다.
“아니요. 대학원 강의는 전부 전임교수님께 들어요.”
조교 아이는 당연한 것을 묻는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헉! 정말?”
그때부터 앞에 놓인 밥이 보이지 않았다. 공짜라면 눈이 뒤집히는 나지만 대학원까지 가서 공짜라고 지금 내가 듣는 교수들에게 강의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나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 내가 듣고 싶은 강의만 들을 것이다. 인정에 못 이겨 교수의 강의를 듣는 그런 나약함으로부터는 이제 정말 벗어나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학교를 떠난 어느 강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 강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공부도 이기적으로 하고 사랑도 이기적으로 해라, 이기적인 것이 결국 모두를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해당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특히 나에겐. 나이가 들어서 하는 공부를 상대방 입장을 봐가면서 하고 있는 것은 어디가 좀 모자라거나 바보 아니겠는가.
건성으로 대충 점심을 마친 나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민예총에서 함께 강의를 들었던, 바로 나에게 문창과에 편입하라며 나의 집과 가까운 지금의 학교를 추천해준, 각 대학들의 교수들과 강사를 훤히 꿰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아, 사정이 이런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무리 공짜로 대학원을 보내준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나에겐 정말 하루하루가 금쪽같고 아까운 시간인데.”
“맞아요. 선배, 대학원은 일주일에 2-3번만 나가도 되니까, 좀 멀어도 장정일이 강의하는 곳으로 가세요.”
“장정일? 정말? 장정일이 어디서 해?”
“ㅇㅇ대학이요.”
“교수진은 성공회대가 최고인데 성공회대는 문창과 없냐?”
“그러게요. 아쉽게도 성공회대는 문창과가 없어요. 성공회대는 사회과학 쪽 교수진이 빵빵한데 그럼 대학원을 사회과학 쪽으로 가세요.”
“성공회대에서 날 받아준데?
“왜요? 등록금 내면 받아주지요.”
“받아준다 한들 사회과학을 공부할 정도로 머리도 돌아가지 않겠지만 사회과학 공부해서 뭐하냐? 이 나이에.”
“NGO 쪽에서 일하면 되지요.”
“야! 내가 바로 NGO 대상자인데 무슨 NGO에서 일을 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노랗고 하얗게 앞 다투어 개나리 목련이 호들갑스럽게 핀 언덕길을 씩씩거리며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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