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룡아, 인간이라서 미안해

by 박명아 posted Apr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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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여름이 올 것 같더니 비가 온 후 옷장 안에 넣었던 겉옷을 꺼내게 한다. 봄은 토라진 여자의 마음처럼 쉽게 풀리지 않으며 변덕스럽다. 한동안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이지 않더니 며칠 만에 나타났는데 올무에 걸렸는지 살이 찢어져 창자까지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하다. 일전에 다른 강아지 한 마리도 등가죽이 벗겨져 고생하다 겨우 나았는데 이번엔 더 심하다. 사냥꾼들이 고라니나 산돼지를 잡으려고 불법으로 덧을 놓는데 거기에 강아지들이 걸리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풀고 나올 수가 없는데 등산객이 풀어준 것 같다. 겨우 집을 찾아오긴 했지만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는지 고통의 겨운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다. 그 상태로 집을 찾아 온 것이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오직 살겠다는 본능으로 기를 쓰며 왔을 것이다. 인간의 잔인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까지 난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굶겨 죽일 수는 없어 밥을 챙겨주고 살펴주었다.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내가 외출할 때면 자신들이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을 때까지 차와 함께 달려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배웅하고 돌아 올 때도 신통하게 내 차의 엔진소리를 기억하는지 달려 나와 마중한다. 그 행동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속되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집 뒤에 산을 오를 때도 끝까지 나와 함께 등산을 같이 한다.동물은 결코 배신을 모른다. 배가 고플 때 외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창고를 지어 음식을 저장하지 않는다. 좋은 머리와 이성이 없는 동물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같은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잔인한 고문 따위는 더더구나 생각조차 못한다. 지금껏 나는 여기 살면서 큰 개가 어린 강아지를 성추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개들에겐 '강금실'도 '고소영 S라인'도 없다.여기에서 자연과 동물을 접하며 내가 달라진 점은 점점 인간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인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인 인간, 과연 그 생각들이, 그 이성들이 이루어 놓은 것은 무엇인가.
고통에 겨워하며 상처 때문에 반항하지도 못하고 동물병원 차에 실려 가는 강아지의 공포에 찬 눈빛을 보며 내가 인간이란 사실에 진저리를 친다.
공포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실려 갔던 강아지는 몇 시간 만에 살 속에 깊이 박힌 올무의 잔해 물을 빼내고 몸통 전체를 다시 이은 듯 빙 둘러 이어놓은 촘촘한 수술자국을 지닌 채 돌아왔다. 올무에 걸려 며칠을 굶고 지냈는지 그 큰 상처를 입고도 절뚝이며 기다시피 걸어와 살겠다고 쓰러지듯 사료 통에 입을 넣는다. 처절한 본능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한 날이다. 다친 똥개의 이름은 이몽룡이다. 우리 가족은 이도령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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