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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제 시대의 아픔이 묻어나는, 나름대로 게기며 우직하게 살아가는 질박하면서도, 진정성있는 글들이 드물어 목록만 스케치하고 떠나기를 몇 번입니다. 그냥 신영복 선생님 팬클럽으로 남아있을 요량인지. 다들 삶이 행복한 건지, 아니면 그냥 살기로들 한건지. 이제 마음만으로 바라보는 그런 섬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런 생각입니다.

지하철 생활 오래하신 선배님들에 의하면 지금의 분위기는 5공보다 더 심한 것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부쩍 술 먹는 자리도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불안 같은 것은 김대중 정부때보다는 덜 한 듯 합니다. 한 번 해보자는 어떤 힘 같은 걸 느낍니다. 사회학 공부한 거 이번 기회에 한 번 발휘해볼 의욕으로도 넘처납니다.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서 이 분들이 갖고 있는 '일'의 의미에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의 아버지들과 일, 요즘 저의 숙제입니다. 연구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또 적절하게 분노하게 해주는 그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원. 오늘은 조합원총회에 갔다 오너라고 내일 수업 읽을 분량 다 못읽고 가게 생겼습니다. 아마 곳곳에서 자기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거리로, 울분으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봅니다. 이게 무슨 낭비인지 원. 다음은 제가 우리 노조 역무지부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누군가가 서울지하철 노조 게시판으로 옮겨서, 2500여명이 봤네요. 우리는 이분의 정년을  이촌역에서 진정으로 감사하게 치뤄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무능과 안일로 낙인찍혀 '시민봉사단'이라는 데로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장이 내친 이 분을 우리 이촌역 사람들은 끝까지 지켜주자. 혹시 떠나더라도 항상 마음 편하게 올 수 있도록 그분을 위한 사물함을 비워두자.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자리를 마련하자, 이명박 탄핵서명에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참여하도록 하고 이번 기회에 '시민불복종'에 대해 공부해보자는 얘기들을 오늘 아침 퇴근 길에 나누었습니다. 사장이, 대통령이 흔들어놓는 것 우리들이 서로 서로 지켜주는 듯하여 감동받았습니다. 지하철, 참 매력있는 직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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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여러 학교의 고등학생들이 한 꺼번에 박물관 단체 관람으로 대합실이 난리가 아니었다. 박물관 출입구의 두 줄의 좁은 에스컬레이터는 이들을 다 실어나르지 못했다. 역무실로 “살려주세요”하는 엘리베이터로부터의 구조신호.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문이 닫힌 채 꼼짝 달짝 못하고, 처음엔 남자 놈 여자 녀석 함께 낑겨 있으니 재미있기도 한지 갇힌 채 유리문으로 내가‘조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들끼리 희희덕 거린다. 열쇠로 여기도 돌려보고, 저기 스위치도 껐다 켰다하는데 에레베이터는 요지부동, 어설픈 나의 조치에 애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고.

밖에서 조금만 참으면 문 열어 줄 거라고 안심은 시키지만, 머릿속은 하얘지는 거다. 그 다음 조치에 필요한 프로시져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퇴근조이신데 열심히 대합실 순회와 역사 밖에까지 무슨 일거리가 없는지 둘러보고 오신 박부역장님. 천군만마다. 내 얘기를 대충 들으시더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문을 강제로 열 수 있는 쇠뭉치를 들고 노랗게 질린 얼굴들이 갇힌 엘레베이터 문 틈바구니에 넣고 힘껏 제낀다. 그래도 안 열리니 아예 문을 부셔버려 얘들을 빼내는 걸 보고, 저게 바로 오랜 현장 경험을 한 분들만이 내릴 적시적절한 판단과 행동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저게 바로 신년사에서 사장님이 타박을 놓으신 지하철 직원들은 창의적으로 변할 생각은 안하고 “경험에 안주”해서 주구장창 월급만 타먹는다는 그 무사안일의‘경험’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가둬놓은 채 관리업체에 신고하고 오기를 기다릴 수 없는 일. 그렇다고 나 같은 소심한 놈이 문을 부술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인원이 부족하여 을반에 지원하여 야간근무하던 날. 마지막 열차가 끝나고 막걸리 한 잔 하려하니 부역장님이 안 보이신다. 을반 사람들 말에 의하면 매일 그렇단다. 찾아보니 장화를 신은 채 용역아주머니들 하고 대합실 통로  물청소를 하시면서 고무래로 바닥의 물을 밀고 계신다. 이 분은 이미 출근 전에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구상이 되어 있다. 용역반이 무슨 작업을 하게 되는데 몇 분의 아주머니가 출근하시고, 어떤 일들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상조회 돈 관리, 일회용컵을 없애고 씻어서 다시 사용하는 컵으로 교체, 그리고 커피 자판기 청소와 빈 컵 씻어놓기, 우리가 함께 사용할 물품들을 미리 미리 보충해놓는 일 등등. 눈이 오면 먼저 비자루 들고 튀어나가시고, 야근하고 난 아침에도 점심때가  되고, 심지어 오후 세시 네 시가 된 시간에도 창고정리, 몇 년 전부터 쌓여 있는 고물들 치우기.

시민봉사단으로 발령난 것을 알고 계신 오늘도 궂은 일을 다 하시고 나 같으면 피곤해서 쓰러졌을 시간인 오후 네 시가 되어 퇴근하셨다. 물론 야간 근무를 마치고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또 다른 일들을 찾아 이리 저리 팔 걷어부치고 궂은 일을 하신 거다. 이 분은 김상돈이라는 사장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하는게 아니다. 위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김상돈 사장이 오기 전에 그렇게 지하철에서 생활해왔고, 그가 떠나도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을 지하철의 상징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여럿 보증을 서줘 반토막 월급봉투를 받으면서 그 얄미운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흡사 일을 통해 박유식이라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듯싶은 정직한 노동자요 역무원이며, 가솔들을 건사시키는 우리 사회의 아버지인 것이다. 일을 통해 당신이 살아있음을, 일을 통해 당신의 의미를 만들어 가시고 시름도 날려버리는 그런 성실하고 책임있는, 지하철이라는 조직을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둥이라는 말이다.  

며칠 전 우연찮게 김상돈 사장명의로 받은 표창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박부역장님은 그놈의 표창장이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였겠지만, 여하간 이제 그 사장의 명으로 시민봉사단으로 가게 되었다. 조직원이 만 명이나 되고, 명목상으로 공기업인  조직에도 그래도 인사발령에는 어떤 정해놓은 원칙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박유식 부역장님은 지하철의 상징과 같으며, 살아있는 역사이시기도 하다. 이런 분들의 명예와 인생을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일회용품 취급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마음이 아프고, 어제 공문을 보고는 눈물이 나던데, 정작 우리 부역장님은 구질구질하게 그에 대해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죠. 그러시는 거다. 30여년의 지하철 인생을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절벽으로 밀어 넣으면서, 정직한 이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으면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이런 조직에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부역장님 여하튼 제가 미안합니다. 아니 우리 이촌역 동료들 모두가 죄송스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기운 잃지 마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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