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기(昔遊記) 2-행당동의 가을

by 유천 posted May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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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당동의 가을


비가 온다
서울에도 비가 온다

행당동에 비가 온다
시월에 비가 온다

어젯밤은 담벼락 여기저기에 게워놓은 게 많았다
경주집 앞에두 한 무데기
개풍 까페 앞에두 한 무데기
수원 만두집 앞에두 한 무데기
미금댁 청과상 앞에두 한 무데기
행당 수퍼마켓 앞에는 두 무데기

경만이는 개풍 까페 앞에다 게워 놓는다
숨을 한 번 들이키고는 세수하는 시늉을 한다
시커먼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웃도리를 벗고 바지를 벗는다
길게 모로 누워 게워놓은 걸 쳐다본다
살살 만져보며 핥아본다
주물러본다

소금쟁이 할아범은 행당 수퍼마켓 앞에 두 군데나 게워 놓는다
백묵으로 두평 반 남짓한 크기로 원을 그려 놓는다
섬돌을 그린다
밑창까지 떨어져나간 구두를 가지런히 그곳에 올려놓는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선안으로 들어간다
양말과 잠바떼기와 바지를 벗어 한쪽 구석에 포개어 놓는다
바로 옆에 반듯이 눕는다
아루목인가 보다

비가 내리는 지금
어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에 내리는 비는
야속하기 그지없다

경만이의 얼굴이
소금쟁이 할아범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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