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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깔딱 고개를 만나면 헉헉거리며 맘속에 하나의 희망을 생각 한다.

조금만 더 오르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내 다리의 근육의 울림이 멈추고
내 심장의 호흡이 평정을 되찾고
그 순간을 기다리며

한발 한발자욱을 올라간다.
어깨에는 속세의 무거운 짐을 가득지고서 말이다.

그러다 언뜻 나무사이로 보이지 않던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힘이 나기 시작한다. 아~~드디어 다와 가는구나…….
그러나 올라서면 그곳이 정상이 아니고 새로운 능선들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정상이 안개에 묻히어 있기도 할 때 느끼는 아득함 속에서 탄식을 내뱉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아~~아직도 갈 길은 멀구나”
어제 6월 항쟁 집회를 마치고 문득 산에 오르고 있을 때가 생각이 났다.


난 오월 마지막 집회날 광화문을 넘어서 경복궁 역 앞에서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유월항쟁에도 넘지 못했던 광화문을 넘었다는 감격에 겨워하였다.
정말로 그 날은 감격 이었다. 사일구 이후 우리 시민이 광화문을 넘은 적은 없었다. 유월항쟁의 백만 인파도 이순신 장군을 등 뒤에 두고 구호를 외치지는 못하였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이냐고 내 자신에게 되물으며 콧등이 찡하였다.

혹자는 교활한 저들의 유인책이라고 음모론을 말하기도 하였지만, 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일만도 안 되는 전경의 병력으로 저지하기에는 십만의 성난 대중을 막아낼 수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사과탄, 지랄탄, 백골단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민주정부 십년이 결코 헛 세월이 아니기에 그러한 것들은 이미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그 저녁 늦은 저녁 자리에서 저들이 물대포를 쏘았다는 문자를 받으면서 저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였고, 그날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 하였다.
폭력 시위대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시위대 앞에 뿌리어야 하는 물대포를 삼사 미터 거리에 있는 학생을 정면 조준하여 버스에서 떨어트리고, 사람의 안면에 물대포를 쏘아서 시민은 실명위기에 처하고, 도망가는 여대생의 머리채를 잡아 쓰러트리고 군화발로 짖발는 동영상에 참가 하지 않았던 일반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내었다.

그 오월이가고 난 아는 지인들에게 이 싸움은 구부능선에 올랐고 머잖아 저들이 우리 시민에게 항복하고 말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6월 3일 취임 백일 집회 그리고 6/10 유월항쟁 21주년 기념식, 6월 13일 효선이 미선이 추모집회로 이어지고 칠월의 부시 방한 반대 시위로 이어지는 촛불의 일정을 저들이 재협상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며 저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일은 청와대에서 “나라를 위한 장마를 달라는 기도회”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그 저주 같은 나의 예감 되로 비가 내리기 시작 하였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 비에도 광화문의 촛불은 항상 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면서 6월 6일부터 이어지는 릴레이 72시간 국민엠티가 시작 되었다. 점점 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부대, 부비부비 연인부대,백전의 삼팔육 넥타이 부대, 그리고 아빠 엄마 손을 잡고 나온 무적의 부자부대로 이어지는 행렬의 행진은 이미 시위가 아닌 축제였다.
길을 가다 “예수불신 지옥” 이라고 외치는 광신도가 방해하면
“이명박은 회개하라”라고 하였고, 여경이 해산하라고 방송하면,“노래해”를 외쳤다.

그 칠십 이시간의 엠티 첫째 날 난 이순신 장군의 동상아래 광화문 사거리 교차로 한복판에서 침낭을 펴고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질긴 놈이 이긴다......한번가보자...
둘째 날은 아예 텐트를 가지고 광화문 사거리 한 구석에 텐트를 치고 선전물을 붙이고 농성을 하였다. 그 날은 같이간 지인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즉석 시국 토론회도 나누었다.
함양에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아주머니가 열정을 토하였고, 처음 만났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광화문에서 밤을 지새웠다.

생명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이유로 시작된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의 출발은 이념이 있을 수 없었다. 사회 양극화와 경제 파탄에서 오는 민중의 위기의식은 생각보다 깊었다.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부동산 세제 개편
-공교육 붕괴와 학교 서열화

쇠고기 수입에서 온 광우병이 전 국민에게 공부를 강요 하고 있다.
학교 공부하기도 바쁜 여고생, 취업준비생, 직장에서 일하기도 피곤한 넥타이 부대가 어느새 신자유주의 폐해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참 이부분이 아마도 쥐박이의 가장 위대한 공적이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6월 10일 지나서 가슴이 더욱더 아프고 절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광화문 사거리에 쌓아놓은 컨테이너를 보면서 저들이 정말로 끔찍한 자들일 수 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전율 하였다.
그랬다....
난 순진 하였는지도 모른다.
87년 유월 항쟁으로 전두환에게 항복 선언(?)을 받았기에 유월항쟁을 넘어서는 시민이 거리로 나서서 이명박 물러가라고 외치면 정권 유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재협상을 당연히 받아 들리라고 생각 하였다.

그런데, 그 콘네이너를 보면서 저들은 우리가 백만 아니라 천만이 모여도 저들의 똥고집을 접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아~~그것은 저들은 전두환과 다르게 투표라는 정당한 절차로 가진 권력이구나....
비록 유권자의 절반이 선택할 대상이 없어서 투표를 포기 하였지만, 절차상 적어도 저들의 권력은 전두환의 피 묻은 야비한 권력이 아니구나....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저들은 대한민국의 권력은 자기들의 사유물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주요한 인사를 상왕인 자기형의 의중에 맞게 하고 있다. 저들은 철저하게 공적인 권력의 당위성을 인정 하지 않고 사유화 하고 있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과 본질적으로 달라요.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은 아무리 보수화해도 공화국의 정신을 지니고 있죠. 나라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한텐 그런 전통이 없어요. 통치만 있었을 뿐, 우리 모두의 나라였던 적도 없어요. 나라의 주인을 자처한 자들은 철저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했어요.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났죠. 한 예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나라의 지배계급이 한 일은 외세를 끌어들여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섬멸하고 학살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양보하고 타협했을 텐데. 이 나라엔 우익이 없어요. 우익이라는 자들은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착취하는 매판세력입니다. 이번 쇠고기 문제도 똑같아요. 심증일 뿐이지만, 이 나라의 현재 지배계급은 그 종주국의 지배계급의 이해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사대주의자, 일제 강점기 친일파 그리고 현재의 지배계급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외세에 기대어 동족을 적대시하는 게 하나의 전통이 된 나라예요. 국민 건강권? 그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겠어요?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도 않을 사람들이죠.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죠.”(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의 참여연대 6월호 인터뷰 중에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저들이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이라도 동원한다면 어찌될 것인지, 갑자기 유신말기 부마사태가 때 차지철이 죽기 전에 박정희에게 건의 하였던 대사가 떠오른 것은 나의 기우일까?

“각하 캄보디아에서는 몇 백만도 죽였습니다. 만 명이든 백만 명이든 탱크로 밀어버리면 됩니다!

저들이 난 지금 두렵다.
백만 명이 모여서 컨테이너가 아닌 다른 모든 공간에서 재협상하라고 하는데도 인적쇄신이니 하는 헛소리만 하고 있는 저들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종각 앞에서 지인이 그랬다.
“아니에요..지금부터가 싸움은 시작이에요”
우리의 동력은 지금부터라는 그 이야기에 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기대를 가지어본다. 광장에서 대의민주주의 맘껏 경험하고 있는 이십대에게 희망을 가지어본다.
이십일 년 전 내 나이 이십대에 경험하였던 그 경험이 지금까지 나의 사유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앞을 지나면서 “조중동은 폐간하라”고 외치는 그 함성과 조중동 광고주에게 항의 전화로 시작된 조중동 폐간 운동은 이미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내고 있다.

(카페) 조중동 폐간 국민 캠페인

내가 가입한 몇 일전에 7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이 벌써 1,461명을 넘었고, 하루 방문자수가
13,304명을 넘어서고 있다. 정청래의원이 그랬다. 조중동에서 조선만 확실하게 조지면 중앙, 동아, 문화는 당장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 조선일보 압박운동을 하여야 된다고 말이다.
광고 철회는 물론이고 기업의 홈페이지에 팝업창을 통해서 앞으로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지 않기로 한 기업의 숫자가 수십을 넘어서고 있다.
유력한 이야기에 의하면 적어도 육개월만 이운동이 지속된다면 조선일보는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김대중 논설이 부당한 시민권력 운운하며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조금씩 바뀌어져가는 논조에 조갑제가 조선일보가 배신 어쩌고저쩌고 하며 개거품을 물고 있다. 민주언론 운동 십년에도 꿈적하지 않던 조선일보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만 왜곡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이기고 말 것이다.

난 유월의 광장에서 거대한 촛불만 본 것이 아니고 절망의 콘네이너도 보았고,
난 유월의 광장에서 위대한 함성의 소리에서 북악산의 바위가 굴러 떨어져
그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쥐새끼가 맞아죽지 않기 위해 포항 앞바다로 도망갈 것이라는 미래가 내눈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정감록을 넘어서는 김감록 예언을 하여본다.

산문잡문을 끝까지 읽어주시어 감사 합니다.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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