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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토요토미 히데요시 상(像)



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가다보면 도로 한복판에 우뚝 솟은 동상이 하나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란다. 헌데 이상한 일이다. 나의 눈에는 이 동상이 임진왜란 당시 용맹을 떨쳤던 이순신 장군의 상(像)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수장(首將)이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왜일까. 이를 두고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내 의식의 혼동과 정신의 감지적 능력을 의심해 보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서야 그 까닭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삼백여 미터 뒤에 찬란하고도 당당한 조선총독부 건물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유형의 건물이 갖는 무형의 압력이 이 동상에게까지 곧바로 투영된 것이었다. 시대와 의미가 전혀 다른 별개의 두 형상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맥락으로 오버랩되어 버렸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이순신 장군 동상을 흡입시켰던 것인데, 저 청사가 지니는 위압감을 부정해 버리고 싶었고 이에 대한 수호신장(守護神將)처럼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떨쳐버리고픈 이중의 의식 구조가 내 심연의 밑바닥에 오랜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총독부 청사.
해방된 지 48년이 흐르는 동안 중앙 청사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건, 뭔가 구시대 위정자들의 오류와 과오들을 지금까지 답습해 오고 있는 꼴이다. 마땅히 없어져야 할 건물, 이승만은 저 건물을 두고 없애야 할텐데 없애야 할텐데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못 없앴다 하는데 이는 박약한 민족 정신 내지는 미온적 항일 투쟁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일제 통치 기간의 대부분을 이 땅에서가 아닌, 만주 벌판이 아닌, 상해도 아닌,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독립운동을 했을까. 그는 독립에의 꿈과 이상은 고이 간직했을지 몰라도 열정과 절실함만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처연한 아리랑 가락은 태평양의 중도막, 그러니까 마샬군도 쯤에서 끊어졌을 터이고 남국의 열풍이 그득한 하와이 야자수 아래서 양코배기 여자와 시원한 북동무역풍 기후를 더듬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간혹 달콤한 말로 일본의 총과 칼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일국의 지도자.
한 나라를 이끄는데 있어서 구비해야 할 첫째 조건은 그 나라의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이라 하겠다. 조선 왕정과 일제 통치가 끝나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은 너무 무력한 존재였다. 친일 세력의 전형인 한민당과 결탁하여 정권 탈취의 야욕을 부린 것에서부터 그의 삐뚤어진 정치적 행보를 실감할 수 있으며 그나마 미력하게 보여 준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송두리째 팽개치고 말았다. 그런 그는 그때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데 아주 용이했을 시기에 가장 인색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경복궁.
이 궁은 조선 왕조의 산실(産室)이다.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한결같은 성소(聖所)로 인식되었다는 말과 같다. 왕은 곧 국가 전체로 표징(表徵)되었던 시대에 경복궁은 왕실의 정기, 즉 국가의 정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런 궁의 대부분을 헐어내고 광화문 바로 뒤에 거대한 동양 최고의 대리석 건물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민족 정기의 말살을 의미한다. 널리 성행하고 있던 시기의 풍수지리에 의해 세워진 경복궁은 한양의 가장 좋은 명소이다. 무지렁뱅이, 농투성이에서부터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전시대에 걸쳐 그렇게 인식해 왔으므로 민심(民心)의 의지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왕이 기거하며 집무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곳에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건 조선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곳을 훔쳐 차지하여 대체 또는 대리 계승하려는 뜻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당대 사업이었다. 위에서 본 건물의 모양은 해 일(日)자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돔(dome)은 그들의 국기인 일장기를 상징하고 있다. 조선의 혈맥을 끊어버린다는 저들의 반지성성,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의 상징물을 헐어버리고 또다른 상징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이념을 이어보려 했던 그들의 가련성.
나는 저 건물을 볼 때마다 우리 역사 속에서 한 증거물로 남겨두기엔 저것이 너무 크고, 온화하고, 정교하고 또 의미심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람객이 일본인들인 지금 저 청사 홀 안에서의 웅성거림은 신음소리의 울림처럼 다가온다. 조선총독부가 내뻗은 손과 발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수한 피와 살점이 묻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념(憶念)일까.
역사는 자꾸 변화 발전하며 대리석은 시간의 더께가 더하면 더할수록 그 윤기를 더해가는 법, 제국주의 국가였던 나라들은 지금도 그 속성을 향수처럼 지니고 있으니 언제 또 다른 형태의 망령으로 맹위를 떨칠지, 또 몸서리쳐지지만 강점(强點)에의 야욕을 드러낼 지 모르는 일, 그리되면 이네들은 가장 먼저 이곳에 발을 들여다 놓을 것이다. 이 건물은 너무 크고, 온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면 저 이순신 장군 동상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상(像)으로 더욱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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