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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경님에게 띄우는 편지


이 의경님
지금도 그렇게 부르나요?
신참 의경이 고참 의경을 지칭하여 부를 땐 항상 성을 따서 부르곤 했지요.
박 의경님, 정 의경님, 최 의경님, 김 의경님...
이렇게.
지금 여러가지로 심경이 고단하실 것 같아 이렇게 불러 보았습니다.
이길준 의경님.
저는 의경 기수로는 64기로 1985년 2월 지원입대하여 서울 용산경찰서 방범순찰대(도보대)에서 3개월여 복무했고 같은 경찰서 소속 교통 외근 근무를 2년여, 내근 근무를 6개월여를 한 후 1987년 9월 30일 제대하였습니다.
벌써 20년이 넘었군요.
저는 출가(出家)한 승려로 현재 경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메일을 전하는 이유는 인생의 선배로서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좋은 판단을 내리는데 가닥을 잡았으면 합니다.
이 의경님
전의경 제도는 머지않아 폐지될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전의경 제도가 폐지된다는 귀띔을 준 것이 아닙니다. 이번 촛불시위의 흐름과 양상을 보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물줄기는 거꾸로 돌릴 수가 없거든요.
시위대에 대한 진압행위는 현 정부도 과거와 같은 이념적 대결구도에 따라 전개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러면 왜 존속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또는 '정략적 활용'이라는 차원입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함성이 들불과 같이 번진다 하여도(당연히 그렇게 되어야하고 저도 바라는 일입니다만) 지금의 정부는 앞으로도 끄덕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니 군 복무에 따른 현실적 입장과 현 시국상황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스스로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의경님
제가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은 이 의경님의 군 복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입니다. 징집에 대한 반대 입장 말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문제까지 고민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당시 군 복무하는 것에는 별 다른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었어요. 마뜩찮은 일이긴 하지만 행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다만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다는 게 영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근시안적인 민족 해방 또는 분단 극복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마는 그래도 역사의식이 양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지요.
그러던 차에 의경제도가 입대하기 1년 전에 생겼던 것입니다.
어쨌든 다행이다 싶어 지원입대했습니다.
이 의경님, 군(軍)에서의 2년여 생활이 적지않은 세월이지요. 무미건조하다싶은 시간들이지요.
그렇지만 삶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면 고통 속에서 때론 환희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통 외근을 하다보면 종종 경찰국에서 집중단속기간이 주어지지요. 교통 범칙금(일명 딱지) 할당량이 떨어집니다. 이때가 교통의경에겐 가장 괴로운 나날들입니다. 다른 할 일이 많아도 할당량은 채워야하고(못 채우면 고참에게 맞으니까), 어떤 때는 고참 것도 채워야 하고, 그러다가 잘못 끊어 즉결심판장에도 갔다와야 하고...
그날 단속 할당량은 1인당 열 건.
대부분 아침, 저녁 러쉬 아워시간(각각 07:00~09:00, 18:00~20:00)이 주어져 해당지역에서 일을 보고는 당일 근무지역으로 가야합니다만 이 시간에는 교통범칙금 발부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나머지 시간에 떼어야 하는데 낮동안 이리저리 시달리다 보면 할당량 채우기가 쉽지 않지요.
그날은 금호동으로 넘어가는 길과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길, 남산순환도로로 넘어가는 길 그리고 이태원이나 한남동 방향으로 연결되는 일명 이대부지에서 근무하게 되었지요.
저녁 러쉬아워 시간은 다가와 곧 해당지역으로 옮겨야하는데 9건까지 스티커를 발부하고는 위반하는 차량을 쉬 발견할 수가 없었지요.
한 건만 더 채우면 그날은 무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졸이며 위반 차량을 주시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반하는 차량을 주행도로 바깥으로 세우도록 했습니다.
위반사항을 고지하고 면허증 제시를 요구했습니다.

"내가 지금 좀 바쁜데 봐주면 안 되겠나?"

면허증을 보니 속가 선친(先親)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저에게는 그때 두어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차가 위반을 하더라도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으면 스티커 발부는 않고 계도만 한다는 것이었지요.

"내가 좀 바쁜데 나중에 끊으면 안 되겠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인 것입니다.
내무반에서의 아픈 가슴팍이 먼저 머리 속을 헤집고 들어옵니다.
양심과 스스로의 다짐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입니다.
교통범칙금을 발부합니다.
나이 지긋하신 이 어른이 다급한 호소를 거두시더니 저를 정중히 타이릅니다.

"소소한 일에 집착하면 큰 사람 못 되네."

이 말이 오랜동안 저의 귓전을 맴돌고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이 의경님
제가 신념과 타협이라는 극명한 대립을 통하여 어떤 해결점을 모색하려고 지난 얘기를 꺼내든 게 아닙니다.
삶이라는 터널을 잘 헤아려보라는 뜻에서입니다.
이제 이 의경님이 기자회견까지 갖는다면 이제 추상적인 신념을 구체화하여 설계해 나가시면 됩니다.
분명 사회정의의 길일 것이며 소중한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자양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이 의경님
또 한가지 방법은 이런 것입니다.
문제 제기를 확장시키면 어떨까요?
전쟁은 인류사에 쭉 있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인류사가 이어지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징병이든 모병이든 군인의 형태는 계속되어질 것이고.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이 의경님의 사고(思考)는 더 확장될 것이고 행동 반경은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요?
유관순과 논개는 두 분 모두 훌륭하신 분이지요.
그렇지만 논개의 경우는 극적 반전을 거친 분입니다.
임진왜란이란 외부적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더라면 논개는 내부적 요인인 기생으로서 살아갔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기녀(妓女)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까?'

인간에겐 이 요소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를 정당화하거나 함부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 의경님이 백범 김구의 암살범인 안두희를 해친 당시 버스기사이셨던 박기서 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과 관점은 크게 달라질 것이며 뚜렷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의경님
부대 복귀이든 복귀 거부이든 이것은 이 의경님 판단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 말한 사항도 이 의경님이 인류애라든지 사회적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계속 간직하는 한 부대 복귀이든 복귀 거부이든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복귀 거부라고 한다면 그 길이 좀 더 자신에게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이 다를 뿐입니다.
이 의경님
촛불은 유혹의 도구가 아닙니다.
지혜의 담금질입니다.
촛불은 종교적으로 사용할 땐 구원이지만 사회적으로 받들면 실천이 됩니다.
언젠가 촛불의 현장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장황했습니다. 헤아려 읽어주셨으리라 믿어요.
늘 건강하시고 용기잃지 않길 빕니다.

이 의경님과 뜻을 같이하며
석장동 원용실(圓容室)에서
          유  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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