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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무척 오랜만입니다.
소풍을 가는 듯 설레는 마음으로 번개를 맞으러 나섰습니다.

첫 여행지인 정선으로 가는 길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도로가 주차장이라는 말이 그대로 재현되었거든요.
서울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어요.
좌경숙 선생님, 양해영 선생님, 이승혁 선배님와 친구 송병기 선배님,
김영일 선배님, 황정일 나무님, 김선래와 친구 정희정 양이 그들입니다.
여름 막바지의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황금인파를 피해 일찍 출발한다고
출발하였으나, 그 무리를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자, 말자, 하는 설왕설래 의논이 길었습니다.
다시 정선으로 가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러나 도로 정체 현상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원주에서 합류하려던
장은석&박선향 나무님은 고속버스를 이용해 정선으로 개별 이동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오전 7~8시에 출발한 차량은 저녁 6시가 되어 정선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선의 마운틴 콘도에 도착하니, 감자를 갈고 있던 김난정 나무님의
젖은 손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달큰한 옥수수의 익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고은미 선배님과 박선향 나무님이 열심히 감자부침개를 부치고 계셨습니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어와 콘도의 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좌경숙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울진의 서순환 선배님 가족도 도착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온기가 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번개 장소 인근 태백에 사시는 박재교 나무님이 '번개처럼' 등장하셨습니다.
부천 강연과 속초강연에는 참석했으나, 오프라인 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던
박재교 나무님을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거실의 식탁과 탁자를 치우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식탁을 만들었습니다.
박영섭 선배님께서 요리한 정선농장 토종닭이 멀리서 배달되어 왔습니다.
(콘도의 렌지는 감자부침개를 부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력이 약했습니다.)
부드럽고 연하고 밀도 높은,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훌륭한 토종닭이었습니다.

첫째 날의 백미는 이승혁 선배님과 용환, 여민, 한울, 재현 군이 준비한
박영섭 선배님의 깜짝 생일 파티였습니다. 영화 <파니 핑크>에서 보았던
생일 축하 장면이, 영화보다 더 감동적으로 연출되었습니다.
꼬깔 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작은 방에서 줄지어 나올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찌나 감동했던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의 수를 헤아리지 못하였답니다.

카지노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빈자리가 없어서
직접 해보지는 못하였습니다만, 그곳은 '이상한 나라' 같았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용케 자리를 잡았던 모 선배님께서는 3천만 원을 날렸다는데......
(농담인 줄 다 아시죠*^^*)

두 번째 여행지인 강릉 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여정은 계속되었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정암사에 들렀습니다.
마침 오전예불(10시, 巳時) 시간이라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껏 사람들이 제게 고향을 물을 때면 '충청북도 단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제 고향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입니다.
부모님께 그곳에서 수태되어 세 살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전혀 기억나지 않고 주민등록상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고향에 가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묘한 감정이 일었고, 몸과 땅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계기로 저는 고향을 복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강원도 태백시 황지'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충청인'에서 '강원인'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니, 다시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요^^

각설하고요, 황지에서 점심을 먹고, 함백산 야생화축제에 잠깐 들렀습니다.
탄광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이곳에서 '검은꽃'을 비롯한 여러 야생화의 사진과 기록을
접하였습니다. 그리고 함백산 정상 휴게소에 들렀다가 태백에 있는 석탄박물관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삶을 만났습니다.
제 아버지나 어머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친구(정희정)에게 부탁해, 벽에 걸려 있는 흑백사진(1968년도의 황지의 검은 거리)을 촬영하였습니다.

강릉으로 이동하던 중에 예수원이라는 곳에 들렀습니다.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수도원라고 알려져 있는 곳인데, 숨어 있는 명승지 같았습니다. 모두들 안식처의 정기에 감탄하는 저희를 사무실에 계시던 수녀님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저희들을 신영복 교수님을 뵌 듯 기쁘게 대하셨습니다. 도서실, 주방, 기도실 등등을 돌아다니다 목공실에 들렀습니다.
목수 어르신께서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고, 그 모습을 용환 군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어린 저희에게 그분께서는 최근 완성하신 의자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양해영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는데, 그 목수 어르신은 목수가 아니라 사제님이라고 하네요.

강릉에서는 유선기 선배님께서 참여하여 만든 마을인 '대굴령 마을'의 펜션
(자동차마을)에서 묵었습니다. 도처에서 신영복 교수님의 서체를 만날 수 있었고,
나무로 만든 집이라 안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을 전제가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쉼의 장소로 제격이다 싶었습니다.
남녀 숙소에 짐을 부리고 방안의 온도를 높여 몸을 녹이면서,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놀고 어른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즈음,
김세호&이상미 나무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는 유선기 선배님께서 주문진 어시장에 가서 공수해온 꽁치와 삽겹살,
묵은 김치, 좌경숙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조니 워커 블루로 차려졌습니다.
두 번째 날인지라, 분위기가 전날보다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관계도 누룩처럼 발효되는가봐요*^^*
유선기 선배님의 강원도 사투리와 노래, 명쾌한 화법을 구사하는 박영섭 선배님의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더불어숲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 이야기, 정선-강릉 번개에 대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식탁이 차려진 현관 밖 베란다에 켜져 있던 전등불을 끄니
달과 별, 사방의 산과 구름이 드러났습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환해졌습니다. 이야기 총총, 별도 총총.
이날 황정일 나무님은 떨어지는 별똥별을 두 차례 보았습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지*^^*

이번 정선-강릉 번개는 어린 나무인 제가 더불어숲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함께 숨 쉬고 이야기 나누고 밥 먹고 술 마시며 자며, 서로 부대끼는 것이
더불어숲의 나무가 되는 것임을 깨닫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번개를 다시 맞으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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