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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9-01-01
미디어 작은이야기_도서출판 이레_문강선기고

 

[이 시대의 정신을 만난다] 인고의 휴머니스트 신영복

사랑의 뿌리는 신뢰와 이해로 깊어진다


 

통혁당 사건의 무기수 신영복. 그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4살의 나이에 숙명여대 강단에 섰던 촉망받던 젊은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여름, 그는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이었다.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그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제1조 2항이 당시의 구속사유였다. 청년 신영복은 두 번의 사형 언도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를 만나러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성공회 대학으로 향했다. '승연관'이라고 이름붙여진 교수 연구동 4층의 구석진 방. 신영복 교수는 거기에  있었다. 감옥에서 나오고 나서도 얼마 동안은  꼭 남의 세상에 세들어 사는 기분이었다는 신영복 교수. 이제는 그도 그런 이방인의 느낌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KBS TV에 두 번이나 출연했다. 한 번은  '정범구의 세상읽기' 또 한 번은 '국민제안'이란 프로였다. 실로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고 반 년 쯤 있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49세. 상대는 KBS 라디오의 클래식 프로를 맡고 있던 유영순 PD였다. 두 사람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그동안 주변에서는 설왕설래했다. 본인은 그것에 대해 간단 명쾌하게 이렇게 설명했다.
"출감 직전에 아내를 알았어요. 감옥에서 나올 때가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주변 분들이 늙은(?)총각을 위해 소개해 줬어요. 감옥에서 나오고 나서 곧 결혼했지요. 89년 초였어요.  어머니가 오래 앓으셨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 얘기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직도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에게 결혼은 옥내 시절의 불효를 갚는 마지막 효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신영복 교수와 유영순 PD는 결혼 이듬해에 아들 지용을  낳았다. 지용이는 지금 9살, 초등학교 2학년이다.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 전혀 꾸민 느낌을 주지 않은 무공해 자연산이다. 얼마 전에 지용이는 반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요즘에는 초등학교가 한 반에 40명 정도예요. 그런데 그 중의 35명 정도는 신세대 부모의 영향을  받고 크는 아이들 같고, 5명 정도가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우리  애는 아마 늙은 엄마, 아빠 때문인지 그 다섯 명에 속할 거예요."
신교수는 아이 얘기를 하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실은 아이한테 많이 배워요. 아, 아이들은 이렇게 세상을 알아가는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많죠. 게다가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느낌과 할아버지가 손주 좋아하는 그런 느낌을 함께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자유롭게 키우려고 하죠. 하지만 근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늘 고민해요."

 

그의 책 「나무야 나무야」에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신 교수에게 내처 물었다. 아름다운 사랑은 어떤 거냐고.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오염됐어요. 그건 원래 '생각한다', '상대를 고려한다'는 뜻이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너무 소유만 하려는 것 같아요. 이기적인 거죠. 너무 당연한 얘기인진 모르지만, 사랑이란 신뢰와 이해가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그 신뢰와 이해라는 것이 금방 생기는 건  아니에요. 오랜 세월 나무를 키우듯이 키워나가는 거죠. 어느 순간 만나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에게 하는 것도, 그 사랑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반증이지요. 나무처럼 뿌리내린 사랑에서는 말이 필요가 없지요."

 

우리 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다운 말이다. 아마 신교수 본인은 자신을 지칭하는 이 말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이다. 그의 팬이  의외로 많다. 지금까지 그의 책을 100만 명 가까운 독자들이 읽었다. 당연히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대에서는 언젠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1위가 바로 신영복 교수였다.
신영복 교수를 만나고 싶으면 일요일 낮, 서울 목동의 파리공원에 가보라. 매점  옆에 있는 등나무 밑의 벤치. 아마 신교수는 그 곳에서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주소는 www.shinyoungbok.pe.kr . 신교수의 후배가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다. 서점에 가도 만날 수 있다. 물론 책으로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지난 6월 나온 「더불어 숲」까지.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하던 젊은이들의 꿈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작은이야기(1999. 1. 창간호 도서출판 이레) - 자유기고가 문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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